엥겔지수는 외로움에 비례한다.
배경 : 나는 두류를 좋아하지만, 장류는 싫다. 특히 된장은 먹고 난 뒤 입안에 남는 텁텁함이 싫었다. 그래서 된장과 청국장을 먹지 않지만, 그 외 콩으로 만든 음식은 다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두부조림이다. 그래서 지금도 매주 두부조림을 먹는다. 이 글은 두부조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 도시락이 싫었어
요즘 청소년들은 대부분 급식을 먹지만, 나는 도시락을 들고 다니던 세대였다. 매일 점심과 저녁 도시락 두 개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밥 두 개에 반찬 하나라는 불균형한 구성이 늘 불만이었지만 어머니는 늘 바빴다. 그래서 반찬은 하루 한 가지로 통일되었다. 어떤 날은 깻잎, 어떤 날은 무생채, 어떤 날은 김뿐이었다. 나는 그런 도시락 반찬이 싫었다.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마다 한소리씩 들었다. 그렇게 남은 반찬은 화장실 변기가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찬통 안에 두부조림이 가득 담겨있었고 친구들은 그걸 맛있다며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그늘 이후 두부조림은 나의 최애 반찬이 되었다. 살짝 부친 두부를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에 졸여낸 맵지도, 짜지도 않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그 맛이 너무 좋았다.
□ 매일 먹어도 맛있어
그런 나의 취향을 아셨는지, 그때부터 어머니는 여행을 가실 때마다 두부조림을 가득 해 놓으셨다. 나는 갓 졸인 두부조림은 밥반찬으로, 식은 두부조림은 라면에 넣어 먹었다. 다른 집에서는 어머니의 부재가 곰탕으로 표현되지만, 우리 집은 두부조림이었다. 독립 후에는 내가 직접 두부조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인터넷으로‘두부가 달라붙지 않게 부치는 법’을 여러번 검색했지만 실전은 달랐다. 약한 불에 천천히 익혀도 어느새 팬에 눌어붙고 결국 두부조림이 아닌 두부스크램블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다시 두부를 굽고, 다시 졸였다. 결국 두부조림은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불 앞에서 졸아드는 두부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이 든다. 두부조림은 나에게 단순한 음식보다 성장의 기억이었다.
□ 엥겔지수는 외로움이 비례한다
두부조림 외에도 밖에서 먹고 맛있었던 음식을 재현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문득 엥겔지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2024년 우리나라의 가구당 식비 지출은 월평균 85만 9천 원으로 5년 전인 2020년보다 15만 3천원이 증가했다.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지출은 2000년 이후 꾸준히 상승했고, 엥겔지수는 2010년 26.9%에서 2024년 29.7%로 여전히 상승하고 있다. 도대체 한국은 왜 이렇게 엥겔지수가 높은 걸까? 난 그 이유 중 하나가 1인 가구의 증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음식 예능 프로그램의 확산이다.
식욕은 본능적 욕망이자, 결핍을 메우는 정서적 행위라고 한다. 보고, 느끼고, 먹는 행위는 인간의 다른 욕구, 특히 성적 욕망과 닮아있다. 따라서 1인 가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사회적으로 외로운 개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달래는 가장 빠르고 값싼 방법이 바로‘먹는 일’이다. 그래서 배달산업이 급격히 성장했고, 식료품 중심의 새벽배송과 로켓배송 시스템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올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건 단순한 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외로움이 깊어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증상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리고 언론은 엥겔지수를 사회적 불평등의 단순한 수치로만 다루고 있다. 저소득층의 생계부담을 가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수립의 지표로만 삼고 있다.
2024년 기준 가구당 식비지출 금액 85만 9천 원은 이미 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식비 44만 1,431원의 두 배가 넘는다. 그 말은 엥겔지수만으로는 소득의 양극화를 이제 더 이상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엥겔지수는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소외, 외로움 등 지금보다 더 복합한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지표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추억이 될 수 있지만, 혼자 먹는 밥은 통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