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독자와 읽어야 할 독자

출판 산업이 드러낸 가장 불편한 진실

by NaeilRnC

전자책 시대라고들 한다.

학교에는 디지털 교과서가 들어가고, 전자책 플랫폼은 늘어나고, 출판업계도 “전환”과 “혁신”을 말한다.

그런데 그 화려한 말들 사이에 너무 단순한 질문 하나가 자꾸 남는다. 전자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콘텐츠인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문제를 들여다보면, 출판업계의 속도는 갑자기 느려진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이미 전자출판물 접근성 검증, 표준화 연구, 제작 교육, 제도 홍보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시장이 알아서 잘하고 있어서 국가가 보조하는 상황이 아니라, 시장만으로는 안 되니까 국가가 직접 검증과 표준, 교육까지 떠안고 있는 상황이라는 뜻일게다.


법적 근거가 없어서도 아니다. 한국은 마라케시 조약을 2019년 9월 비준했고, 같은 해 12월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저작권 때문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 제작이 막힌다는 변명은 이미 상당 부분 약해졌다. 게다가 국립장애인도서관은 2022년 「독서장애인을 위한 전자책 접근성」 국가표준이 제정됐다고 밝히고 있고, 공공기관 발간 전자출판물을 EPUB 3.0 기반의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바꾸는 지원사업도 운영해 왔다. 법도 있고, 표준도 있고, 공공 지원도 있다. 그런데도 왜 현장은 이렇게 느릴까. 답은 단순하다. 돈이 덜 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책은 그냥 파일만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를 붙여야 하고, 읽기 순서를 설계해야 하고, 뷰어 호환성까지 맞춰야 한다. 다시 말해, 같은 전자책이라도 누구에게는 그냥 상품이지만 누구에게는 별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공익 작업이 된다.

그래서 시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법은 생겼는데, 산업은 여전히 머뭇거린다.


이 사실은 오히려 다른 장면과 붙였을 때 더 선명해진다. 브런치 출간작가의 증가는 출판업계가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2015년부터 이어져 왔고, 2025년 기준 누적 응모작만 6만 3천여 편, 수상자 336명, 수상작 359편을 기록했다. 12회 프로젝트만 해도 1만500여 편이 응모됐고, 10곳의 파트너 출판사가 각 1편씩 골라 책으로 냈다.


게다가 카카오는 제12회 출간작 가운데 다섯 작품이 출간 프로모션 한 달 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홍보했다. 물론 모든 브런치 출간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미 조회수와 구독자, 독자 반응으로 한 차례 걸러진 원고를 받아보는 셈이니 위험이 줄어든다. 출간, 상금, 마케팅까지 한꺼번에 붙는다. 이건 문화적 발굴이면서 동시에 매우 효율적인 사업 모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브런치 작가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문제는 출판업계의 속도 차이다. 팔릴 가능성이 보이는 곳에서는 민간 자본과 플랫폼이 함께 움직인다. 읽어야 할 권리만 남는 곳에서는 공공기관이 표준 만들고, 검증하고, 협약 맺고, 교육하고, 시범사업까지 한다. 민간은 어디에 더 빨리 반응하는가. 답은 너무 뻔하다.


2025년 6월이 되어서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교보문고, 알라딘이 “전자책 접근성 향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건 반가운 진전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대형 유통 플랫폼조차 이제야 본격적으로 접근성을 손대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서장애인을 위한 전자책 접근성 국가표준은 2022년에 이미 제정됐고, 관련 가이드와 지원사업도 있었는데, 민간의 본격 반응은 한참 뒤에야 나온 셈이다. 시장이 먼저 움직인 게 아니라, 공공이 계속 밀어붙인 끝에 겨우 따라온 것이다.


이쯤 되면 문제는 단순히 “출판사들이 나쁘다”가 아니다. 출판은 지금 팔리는 독자에게는 투자하고, 읽어야 할 독자에게는 지원을 미루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브런치 출간작가는 시장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속하게 연결되고, 접근성 전자책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천천히 다뤄진다. 한쪽은 “발굴”이고, 다른 한쪽은 “지원사업”이다. 이 명칭의 차이가 이미 모든 걸 말해준다. 발굴은 미래 수익을 전제한 언어이고, 지원은 수익 바깥으로 밀어낸 언어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사회가 경제적 자본과 상징적 자본 사이의 긴장 속에서 움직인다고 봤다. 이걸 적용하면, 출판업계는 경제적 자본이 보이는 곳에는 민첩하고, 상징적 자본만 남는 곳에는 굼뜨다. 브런치 출간은 독자 수요와 플랫폼 화제성, 출간 후 마케팅 가능성까지 계산할 수 있다. 반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책은 사회적 책임과 독서권 보장이라는 상징적 가치가 크지만, 직접적인 판매 수익은 제한적이다. 그러니 산업은 한쪽을 투자 대상으로 보고, 다른 한쪽은 비용으로 본다. 이건 위선이라기보다 훨씬 더 불편한 진실이다. 출판업계가 너무 정확하게 자본주의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역량 접근법으로 보면 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그는 진정한 평등이란 동일한 자원의 제공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의 보장이라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책이 존재하는 것과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화면 속에 파일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동등한 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접근할 수 없는 전자책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사실상 없는 책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그런데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여전히 그 권리를 산업의 기본값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법은 준비됐고, 표준도 제정됐고, 공공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시장은 계속 계산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의 핵심은 단순하다. 출판업계가 돈을 따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안 되는 독자를 너무 오래 ‘나중 문제’로 취급해 왔다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를 더 많이 내는 것 자체는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긍정적일 수도 있다. 문제는 ‘팔리느냐’와 ‘읽히느냐’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팔릴 가능성이 보이면 출판은 놀라울 만큼 재빠르다. 하지만 읽어야 할 권리만 남는 순간, 출판은 갑자기 신중해지고, 어렵다고 말하고,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건 출판업계의 이중성이라기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출판의 윤리가 어디까지나 수익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읽는 사람이 많으면 출판은 산업이 되고, 읽어야 할 사람이 남으면 출판은 복지가 된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준이다.


결국 전자책 시대의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책을 더 많이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더 많이 팔고 있는가. 팔리는 책에만 투자가 붙고, 읽어야 하는 책은 아직도 공공의 선의에 기대고 있다면, 그건 전자책 시대가 아니라 여전히 독서권의 계급이 남아 있는 시대에 더 가깝다.


기술은 이미 앞서 갔다. 법도 최소한의 문은 열어놨다. 남은 건 시장의 태도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태도는 너무 분명했다. 팔릴 독자는 시장이 먼저 찾아가고, 읽어야 할 독자는 아직도 지원사업의 순서를 기다린다.

그게 오늘의 출판이 드러낸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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