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과 지도자

우리나라는?

by NaeilRnC

오늘 커뮤니티에서 “이스라엘 국민 65% 휴전 반대”라는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묘하게 오래 남았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이 문장이 누구의 것인지보다 중요한 건, 이 말이 이상할 만큼 현실을 잘 찌른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은 환상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지도자만 나쁘고 국민은 늘 피해자라는 환상.
국민은 늘 선하고, 지도자는 늘 그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는 환상.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찝찝하다. 지도자는 대개 그 사회 바깥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그 사회가 키워낸 욕망의 얼굴에 더 가깝다. 이스라엘을 보면 그 생각이 더 선명해진다. 휴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과반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강경한 지도자의 문제로 설명되기 어렵다.


지도자가 군중을 끌고 간 것인지, 군중의 정서가 그런 지도자를 떠받친 것인지, 어느 한쪽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떤 순간, 국민성과 지도자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를 강화한다. 지도자는 군중의 불안을 읽고, 군중은 지도자의 언어를 빌려 자기 감정을 정당화한다. 그렇게 사회는 점점 더 과격해진다.


이 장면은 낯설지가 않다. 나는 이걸 한때 태극기부대에서 봤다. 태극기부대의 무서운 점은 강한 이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생각이 깊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움직인다. 복잡한 정책보다 단순한 적개심을 택하고, 논리보다 구호를 선택하고, 사실보다 감정을 따른다. 그래서 다루기도 쉽다.

겁을 주고, 적을 정해주고, 분노할 방향만 던져주면 된다.


한때 내 부모님도 그런 정서에 가까웠다. 나는 그걸 무시하지는 않았다. 대신 자꾸 현실로 끌어내렸다.

“노무현 때문에 부동산이 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린 부동산도 없는데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다. 그건 단순한 반박이 아니었다. 정치적 구호를 자기 삶의 계산으로 바꾸는 질문이었다.


신기한 건, 사람은 이념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막상 자기 이해관계가 걸리면 놀랄 만큼 현실적이 된다는 점이다. 최근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가 그랬다. 시장후보와 친분이 있던 아버지는, 그 후보에게 당선이 되면 그린벨트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그래서 그를 도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웃음이 났다. 이게 진짜 보수지.

보수는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 보수는 자기 재산과 자기 이익을 계산하는 태도에 가깝다.
누구를 찍어야 내 삶이 유리해지는지, 어디에 서야 내가 손해를 덜 보는지, 그걸 냉정하게 따지는 쪽이 훨씬 더 보수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광신은 예측 가능하지만, 이해관계는 훨씬 더 냉정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붙여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보다 뉴스를 성실하게 보는 사회가 아니다. 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한국인 10명 중 7명 이상이 의도적으로 뉴스를 회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유도 단순하다.

정치는 피곤하고, 뉴스는 편향됐고, 내용은 불쾌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뉴스를 안 보면 더 정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자극적인 정보로 이동하게 된다.


포털보다 SNS, 기사보다 영상, 팩트보다 해석, 맥락보다 자극.


이건 회피가 아니라 정보 환경의 하향 이동에 가깝다. 사실 뉴스를 봐야 하는 이유는 정보를 몇 개 더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흐름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스스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뉴스를 스트레스로만 여기고 밀어내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를 읽는 감각도 같이 무뎌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문해력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다. 정보를 해석하고, 맥락을 연결하고, 의도를 분별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이 약해지면 사람들은 정책을 비교하지 못하고 사람을 소비한다.

맥락을 보지 못하고 캐릭터를 본다.

구조를 따지지 못하고 감정에 올라탄다.


그렇게 정치가 바뀐다. 그래서 나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은 단순한 학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사회적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 즉 문해력과 판단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수준이 결국 그 사회의 지도자를 결정한다.


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충분히 읽지 않고, 충분히 비교하지 않고, 충분히 의심하지 않는 사회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문장은 다시 돌아온다.


이 말은 국민을 모욕하는 말이 아니다. 국민을 면책하지 않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때는 태극기만 흔들면 되는 줄 알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막상 자기 돈과 자기 땅, 자기 삶의 조건이 걸리면 놀랄 만큼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국민성은 광신과 현실감각 사이를 오가는 기묘한 혼합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도자란, 그 혼합물 위에 가장 능숙하게 올라타는 사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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