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멈춘 인간과 문해력
배경 :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EBS 문해력 테스트라는 문제가 올라왔다. 단순한 논리 문제였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오답을 선택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EBS조차 문해력과 독해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은 교육 현장에서조차 흐릿해진 읽기능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 다음의 글에서 결론으로 옳은 것은?
게시판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A가 운동선수가 아니라면 무용수이다. 그런데 모든 무용수는 흰색 재킷을 입는다. 그러나 A는 초록색 재킷을 입는다. 만일 A가 운동선수라면, 그는 미국인이거나 독일인이다. 그런데 어느 독일인도 한국 생활 경험이 없다면 김치를 먹을 줄 모른다. 그런데 A는 김치를 먹을 줄 안다. 그리고 한국 생활을 경험한 운동선수들은 모두 흰색 재킷을 입는다. 따라서 A는 ( )이다.”라는 이 문제에서 옮은 것은 무엇일까? ①독인인 무용수이다. ②미국인 운동선수이다. ③무용수이면서 운동선수이다. ④한국 생활 경험이 없는 독일인이다. ⑤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미국인이다. 이 문제의 정답은 “② 미국인 운동선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틀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1분 안에 풀어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사람들은 글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 A가 초록색 재킷을 입었으므로 무용수가 아니고, 따라서 운동선수이며, 김치를 먹을 줄 안다는 것은 독일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A는 미국인 운동선수다. 논리적으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이지만, 많은 이들이 중간에서 멈췄다. 시간 때문이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읽는 방식의 변화에 있다. SNS의 짧은 피드, 요약된 자막, 영상 속 한 줄 문장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제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훑는 것에 머문다. 그 결과, 정보는 넘치지만 이해는 얕고, 판단은 단순해진다. “그래서 핵심이 뭔데?”라는 말처럼 핵심만 알고 싶어하는 태도는 핵심을 만들어내는 사고 과정을 포기하게 만든다.
□ 문해력은 단순한 읽기 능력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해력을 독해력과 같은 의미로 혼동하지만, 두 개념은 분명히 다르다. 독해력은 글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이해의 과정에 초점을 두지만, 문해력은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고를 확장하고,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거나 적용하는 능력이다. 즉, 문해력은 이해력+사고력+표현력이 결합 된 종합적 능력이다.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아만자 사건’이 있었다. 드라마 주인공의 “나 암환자야”라는 말을 잘못 이애한 사람이 ‘아만자’가 무엇인지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린 일이다. 이는 맥락을 통해 의미를 추론하지 못한 결과였으며 이 해프닝은 언어를 상황 속에서 사고하지 못하는 문해력 결핍의 단면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 읽은 책을 사서에게 제출하라”는 말을 “책을 구매해서 제출하라”고 이해하는 일도 흔해졌다. 이는 문법과 맥락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어의 표면적 의미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사고하지 못하는 문해력의 부재가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교육방송 EBS마저 문해력과 독해력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조건 추론과 논리 판단을 묻는 독해력 문제를 문해력 테스트라고 부르는 이런 교육 방식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맞히는 기술만 가르치고, 삶 속에서 이해한 것을 적용하는 능력은 길러주지 못한다. 결국 문해력의 위기는 교육의 위기이다.
□ 자막의 시대, 생각은 짧아졌다.
우리나라의 자막방송은 1999년 시작되었고,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으로 2008년부터 본격화되었다. 이 제도는 장애인의 시청권 보장이라는 점에서 큰 진전이었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자막은 전 국민의 시청 기본 옵션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자막이 정보를 단순한 형태로 가공한다는 것이다. 긴 문장은 짧게 바뀌고, 감정의 뉘앙스과 맥락은 사라진다. 이제 사람들은 글자를 읽으면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자막은 시청을 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사고의 깊이와 언어의 풍부함을 앗아간다. 사람들은 긴 문장을 견디지 못하고, 문맥을 통해 의미를 유추하는 능력은 퇴화되고 있다. 생각 없는 글자는 공허하고, 이해 못 하는 말은 소음이 된다. 백성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어진 한글이 자막문화를 통해 생각하지 않는 백성을 양산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