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용사의 고민
꿈속 전쟁, 현실 쓸림
노곤은 어느 날 유난히 깊은 꿈에 빠졌다. 꿈속에서 그는 끝없는 복도 위를 걷고 있었다.
복도 양옆에는 문이 수백 개 달려 있었다. 각 문마다 이상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1번 괴물’
‘2번 위기’
‘3번 재앙’
‘4번 멸망 플래그’
‘5번 이벤트 보스’
노곤은 생각했다. 귀찮다. 그래서 걷는 속도를 늦췄다.
느리게 걸으면 꿈이 빨리 끝날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꿈속 규칙은 반대였다.
그가 걸음을 늦출수록 복도는 길어졌다. 문도 늘어났다.
“하아…”
그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냥 복도 벽을 발로 한번 찼다.
쿵—.
꿈속에서 울려 퍼진 그 소리는 현실에서도 이상한 효과를 냈다. 왕국 주변의 수많은 잠재적 위기,
이벤트성 재난, 연출용 보스들, 테스트용 소형 괴물들이 줄줄이 충격을 받았다.
“어?”
“어어?”
“나 차출된 거야?”
“아직 대본도 안 받았는데!?”
그들은 각자 자기가 흘러나갈 차례를 잃고 서로 뒤엉키고 부딪히다가 그냥 모조리 쓰러졌다.
성 밖 산 중턱에 있던 중간 보스 후보도 굴러 떨어져 강에 빠졌다.
강에 빠졌던 물의 정령은 갑자기 싫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꿈속 복도는 조용해졌다. 문의 글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노곤은 만족했다.
아, 이제 좀 조용하네. 그는 복도에 그냥 드러누웠다. 복도 바닥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현실에서 왕국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평온을 느꼈다.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러게요. 위기가 없는 게 불안하네.”
“그래서요, 위기 대비 회의를 했습니다.”
“위기가 없는데요?”
“그러니까요. 대비라도 해야죠.”
그들은 아무 위기도 없는 상태에서 위기 대응 훈련을 했다. 서로 뛰어다니고 숨고 소리치고 했다.
“마치… 누군가 이미 다 막아준 느낌이야.”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말은 맞았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지금 꿈에서 복도 바닥에 누워 ‘오늘 저녁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 글에 포함된 이미지는 AI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