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돌도, 소주병도 세상풍파에 갈고 닦이면 보석처럼

여행 트로이카 두 번째 이야기(feat. 군산, 울진)

by 붙박이별

# 여행 트로이카의 방학 여행 시작


여행 트로이카의 방학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 방학의 최종 여행지는 1차 군산, 2차 울진, 3차 통영으로 정해졌다. 군산은 아이들과 선유도 낙조를 보고 싶었던 엄마의 선택지, 울진은 대한민국의 아쿠아리스트 겸 어의사를 꿈꾸는 큰 아들의 선택지, 마지막 통영은 바닷가 바로 앞 펜션에서 원 없이 낚시를 하고 싶은 막내아들의 선택지였다. 저마다 원하는 장소를 선정했으니 이제 즐기는 일만 남았다. 우리의 여행은 늘 그렇듯 숙소를 잡는 것부터 시작된다.



# 숙소의 기준은 가성비


숙소의 기준은 가성비인데, 가성비라는 말속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숙소 주변에 늦게 까지 운영하는 편의점이 있는 외지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 혼자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니 너무 번화하지는 않더라도 번화가로부터 뚝 떨어져 있는 외진 숙소는 피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나보다 한 뼘이상은 커졌기 때문에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창 성장기인 아이들은 잠들 때까지 배고프다고 아우성이기 때문에 늦게까지 하는 편의점이 숙소 옆에 있는 것은 중요하다.


둘째, 침구는 무조건 하얀색이어야 한다.

호텔의 경우라면 신경 쓸 필요 없지만 일반 펜션을 갈 때는 하얀색 침구 여부를 확인한다. 경험상 하얀색 침구를 사용하는 펜션치고 청결 상태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꽤나 깔끔 떠는 주부라서가 아니라 큰 아이가 아토피를 앓다 보니 자연스레 터득한 노하우다.


셋째, 숙소 앞에 공원이나 바다 등 즐길거리가 있어야 한다.

아들을 둘이나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혼자서 아들 둘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생각해 보니 여행에서 커피숍을 가본 적이 있었던가? 아, 한번 있었다. 2020년 제주도 여행 때였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라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주문한 음료를 내려놓기도 전에 둘이서 티격태격 싸우던 아들들이 음료를 쏟는 바람에 '있는 휴지 없는 휴지' 다 모아서 바닥을 닦아주고 돌아서 나온 적이 있다. 그 이후 여행 트로이카의 여행 일정에 카페는 없다. 무조건 테이크아웃!

하루 종일 일정을 소화해도 한창 에너지 뿜뿜인 사춘기 아들은 여간해서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은 에너지를 소비할 공원이나 낚시를 즐길 바다는 필수다. 남은 에너지 한 줌까지 쥐어짠 뒤에야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든 덩치 큰 아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폭풍 검색으로 입맛에 맞는 적절한 가격의 숙소를 예약했다. 준비 끝!




# 겨울은 비수기, 여행 트로이카는 비수기 애호가


여행 트로이카는 비수기 애호가이다. 물론 즐길거리, 볼거리가 가장 풍부한 시기라는 점에서 성수기가 여행시기의 절정임에는 틀림없다. 겨울은 대체로 다른 계절에 비해 황량하거나 쓸쓸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몇몇 장소를 제외하고는 겨울은 여행의 비수기다. 하지만 비수기가 갖는 여행지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1차 여행지인 군산에 온 목적은 선유도 였다.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나 없이 군산여행을 온 적이 있었는데 선유도를 와보고 너무 예뻐서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선유도 옥돌해변에 도착했다. 관광객들로 북적였을 해변가는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갯바위에는 관광객 대신 굴과 홍합이 가득 앉아있고 물웅덩이마다 해삼과 물고기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결코 보여주지 못하는 해변의 민낯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것이 비수기가 주는 여행지의 선물이다. 해변에 앉아서 파도에 몽돌들이 구르는 속삭임을 꽤 오랜 시간 듣고 있었다. 모났던 돌이 세상 풍파에 갈고 닦여 동글동글 몽돌이 되는 모습이 우리 인생과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 예쁜 돌 고르기 내기하자."


몇 분 후에 각자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돌을 손에 올려뒀다. 큰 아들은 돌이 반은 갈색, 반은 회색인 독특한 돌을 보여줬다. 나는 밥 속에 들어있는 강낭콩 모양의 돌을 꺼냈다. 드디어 막내아들 차례, 초록색 돌이었다. 마치 보석 같은 느낌의 투명한 초록색.


"예쁘지? 내가 이겼다."


아들~ 이거 참이슬 소주병이잖아. 그래, 아무렴 어떠랴. 이쁘면 된 거지. 못난이 돌도, 소주병도 세상 풍파에 갈고 닦이면 보석처럼 빛나는 인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한 번 살아 볼만하지 않은가.



# '여행 트로이카'의 여행은 계속된다


2차 여행지는 울진이었다. 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에 돌아오고 싶지 않을'만큼 멋진 곳이었다. 마흔이 넘도록 우리나라에 가보지 못한 곳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참 얄궂다.

울진 바다는 푸르다 못해 시린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를 갔을 때 느꼈던 장엄함마저 느껴지는 푸르름이었다.

출발 전부터 낚싯대를 트렁크에 넣어 두었던 아들이 바다를 보자 조급증을 냈다. 아무 곳에서나 낚시를 하면 안 되니 자리를 살펴본다.


낚시 금지구역 팻말이 없을 것, 낚시하기에 안전할 것, 다른 낚시꾼들이 조금 있을 것.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장소를 찾아본다. 첫 번째,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귀가 떨어질 듯 추운 날씨다 보니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바닷가를 왔다 갔다 하는 아들이 안타까워 항구 구석에 낚싯대를 드리운다. 10분, 20분, 30분... 그래 잠시 잊었다. 아들은 낚시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거였다. 아들은 세월을 낚는 중이다. 조금씩 지루해지고 춥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여행은 변수의 연속,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마을 주민분이 말을 건넨다.


"뭐 좀 잡혀요?"

"아니요, 그냥 애가 낚시를 좋아해서 해보는 거예요."

"그럼, 저 쪽으로 가봐요. 사람들 많은데. 거기 가면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아, 그 만나기 어렵다는 현지인을 만난 것이다. 덕분에 추운 날씨도 까맣게 잊을 만큼 재미있게 낚시를 할 수 있었다. 낚싯대 달랑 하나 들고 간 우리에게 누군가는 통을 빌려주었고 누군가는 밑밥을 뿌려줬으며 누군가는 잘 잡는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행은 변수의 연속이다. 변수를 통해 여행은 더욱 풍성해진다. 여기서 끝인가 싶을 때,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여행 트로이카'의 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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