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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Mar 24. 2024

엄마는 넘버 3

69세 엄마의 바리스타 도전기

 

# 69세 엄마의 바리스타 도전기

 

 올해 초, 10년 동안 딸네집에서 손주들을 키워주던 엄마는 자유를 얻었다. 큰 손자의 중학교 졸업과 함께 엄마도 황혼육아를 졸업한 것이다. 모든 일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자유라는 앞면외로움이라는 뒷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엄마가 다시 본가로 돌아간 이후 두 딸(동생과 나)은 혼자가 된 엄마가 외롭지 않도록 일주일 내내 돌아가며 전화를 하고 있다.


"언니, 엄마 엄청 신났던데? 커피 배우는 거 재미있나 봐. 다음 주부터는 컴퓨터도 배운다는데?"


 어제 당번이었던 동생의 전화였다.

 "우리 엄마, 배우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평생을 가족들의 그림자를 자처하며 살아왔던 엄마였다. 어깨가 무너지도록 짊어지고 온 장바구니에는 큰딸이 좋아하는 냉이, 막내딸이 좋아하는 고기, 사위가 좋아하는 연근, 손주들 먹일 간식거리로 가득했다. 그 무거운 장바구니 어디에도 엄마의 몫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홍시도 제 손으로 사본적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낯선 곳은 혼자 찾아가지 못해서 우리가 항상 데려다줘야 했다. 여러 명이 어울리는 자리도 싫어해서 엄마의 베프는 항상 두 딸이었다. 엄마가 혼자서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 못생긴 엄마의 손


"엄마, 바리스타 수업은 어때? 재미있어?"

"응. 할만해. 근데 나 거기서 3번째로 나이 많아. 참! 너랑 동갑인 애기엄마가 있는데 우리 딸이랑 동갑이라고 말했더니 모르는 것도 잘 도와주더라고. 제일 나이 많은 사람하고는 번호 교환도 했어."

"그래? 우리 엄마가 넘버 3네. 그래도 또래가 있어서 좋네. 젊은 사람들만 있으면 어색할까 했는데..."

"오기 전까지는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해보니 별거 아니네. 재미있어."

"다음에 서울 가면 엄마가 내려주는 커피 먹을 수 있겠구먼. 잘 배워서 맛있게 내려줘."


 엄마의 목소리가 밝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일 수도 있고, 더 이상 가족의 그림자가 아닌 자신으로 살아갈 나이 든 여인에 대한 다행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  

 

"한 명씩 나와서 시연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다 보고 있거든. 그런데 처음엔 나만 손이 너무 못생겨서 창피한 생각이 들더라. 근데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증거인데 창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손이다'라고 생각하니 괜찮아졌어."

엄마가 바리스타 수업얘기를 늘어놓다가 던진 한마디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위로를 해야 할까? 응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한마디 보탰다.

"엄마, 나 서울 가면 같이 손케어랑 네일케어받으러 가자. 머리 하러 미용실 가는 것처럼."

출처 :Pixabay


# 엄마라는 이름에 밀려 희미해진 '나'라는 존재


 엄마는 우리 집에서 황혼육아를 하기 전까지 참 많은 일을 했다. 그릇공장, 레스토랑, 식당, 김밥집, 파출부... 마지막은 자그마한 슈퍼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서는 도저히 운영이 어려워 10여 년 전 슈퍼를 닫았다. 그 이후엔 우리 집 살림을 도맡아 해 주셨으니 엄마의 손은 평생을 쉰 적이 없다.

 69년 만에 겨우 설거지 통을 벗어난 손은 커피도 내리고, 컴퓨터 타자도 쳐내는 고급진(?) 일을 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 엄마의 손은 투박하고 굵어진 마디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으니 기특할 뿐이다. 엄마집으로 손 마스크 팩을 배달시켰다. 하루 10분이라도 그 고단함을 내려놓고 온전히 쉼을 갖기를 바라면서...

 


# 69세 엄마의 반란

 

 두 딸이 아니면 혼자 낯선 곳을 가는 일도, 새로운 것을 하는 것도 못해낼 것이라 여겼던 69세 엄마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혼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바리스타에 도전하고, 컴퓨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 다음에는 다른 자격증도 딸 거야. 시간이 안 맞아서 이번엔 신청 못했지만 라인댄스도 배우고..."

 엄마는 또 다음을 꿈꾸고 있다. 엄마가 어디까지 걸어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계속 걸어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엄마를 잘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낯선 곳에 가는 일도 좋아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엄마라는 이름에 밀려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졌을 뿐.

 센 언니가 되고 싶었던 나의 열망도 그것이 아닐까? 희미해진 나의 존재를 찾고 싶은 강렬한 열망.

  나는 엄마의 도전을 열렬히 응원할 작정이다. 넘버 3로 시작된 엄마가 넘버 1이 될 때까지 그 도전이 꺾이지 않도록...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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