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0으로 끝내긴 싫어

김사과 산문집 - 0 이하의 날들을 읽고

by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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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못할 것 같았던 채식을 시작했다. 이제 딱 1주일 차다. 비건은 아니고 페스코다. 한 번에 가장 철저한 단계인 비건까지 나아갈 자신은 없어서, 고기만 먼저 끊어보기로 했다. 달랑 고기 하나 끊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은 난리다. 살 빼려고 그러냐느니, 적당히 고기를 먹어야 건강에 더 좋다느니, 그런 뻔한 말들이 오간다. 비건 친구들에게 쏟아지는 질문을 쳐다보기만 하던 내가 이제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니 새삼스레 신기하면서도 피곤하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좀 관종 같지만 한결같다. “공장식 동물 사육에 반대하거든요. 이제는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좀 살아보려고요.”


말할 창구가 늘 부족했다. 발언 욕구를 직업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믿으며 근 10년을 살았더니, 말을 안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대처법을 몰랐다. 욕구는 해소되지 않고,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상태. 그 덕분에 작년 한 해 돈을 참 열심히 썼다. 피아노, 차, 카메라, 책장에 넘치는 책, 그리고 매일같이 하루 평균 3잔씩 마셔댄 4,000원짜리 아메리카노. 이런저런 취미생활을 영유하긴 했지만, 소비가 내 발언 욕구를 채워주진 못했다. 그렇게 공허함이 엄습했다.


김사과는 이런 내 모습을 소비자본주의적 징후로 분류했다. 자신의 소비가 자아에 대한 증명이라고 믿지만, 사실 이는 자본의 증식에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자기 착취’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불과 1년 5개월 전 내가 가장 경계하던 삶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변명을 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사회적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방향으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으니, 나머지 삶의 영역에서는 조금 루즈해져도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합리화했다. 내 삶은 얼마나 진정성 있었는가? 공적 영역인 회사에서는 철저하게 세상의 문제를 고민했지만, 일상의 영역에서는 그 고민을 얼마나 실천했는가? 그 지점에서 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충돌하는 모순적 주체였다. 지금의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자기만족에 그치는 퇴행적 소비 패턴의 개선이다. 사적 영역에서 정치적 실천을 이룩하고 목소리 내야만, 발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테다. 나아가 내 안의 공·사 구분을 끝장낼 발판을 만들어 정치적 주체로 사회에 당당히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를 그만 먹어야겠다는 결심은, 일상의 정치화를 달성하기 위한 나의 첫 번째 실천이다.


소비자본주의에 포섭된 일상의 모든 부분을 도려내기란 쉽지 않다. 개인의 의지로 이겨내기엔 자본주의는 벅찬 상대다. 한 부분 한 부분 시도할 때마다 그에 대한 진통이 따른다. 퇴근 후 혼밥을 할 채식 가게가 마땅찮아서 스트레스받는 것뿐 아니라, 곧 채식조차도 자본주의에 포섭당할 것이다. 채식 자체를 트렌드화 시켜서, 소비자들이 채식의 힙한 이미지를 사도록 만들 날도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그때마다 경계해야 한다. 내가 얻고자 하는 가치가 어떤 맥락 속에서 달성될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자본에 잠식당했는지. 그런 점에서 김사과의 산문집은 약간은 성기고, 약간은 러프한 언어를 사용한, 문화정치학 교양서다.


채식을 하겠다는 결심 이후, 내 삶의 곳곳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1년, 매일 아침 스타벅스에서 책을 보았던 나는 무엇을 위해 그곳에 앉아있었나? 세상의 부조리함을 드러낼 언어를 공부했는가? 자기만족에 그치는 학문적 도취를 위함이었나? 혹은 스타벅스에서 매일 아침 책을 보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싶었던 것인가? 나는 그 모든 것의 애매한 경계선상에 있지는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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