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의사 파업보다 중요한 것
슬라보예 지젝 - 팬데믹 패닉을 읽고.
팬데믹 패닉 - 슬라보예 지젝 지음 / 강우성 옮김 / 2020 / 북하우스
지난 5월, 56명의 입소자가 생활하는 프랑스의 한 공공 요양병원에서 5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후 나머지 입소자와 사회복지사들은 검사를 받지 못했다. 사회복지사들은 마스크도 없이 계속 일해야 했다. 검사가 이뤄진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심지어 일부만 검사를 한 후, 그중에 확진자가 나오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확진자로 간주하는 식이었다.
지젝의 이번 신간을 읽고, 얼마 전 읽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 호에 실린 이 사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의 주장을 잘 뒷받침하는 사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젝은 ‘팬데믹 패닉’에서 착취당하는 새로운 계급이 출현했음을 주장한다. 간호사, 요양 병원의 사회복지사 등의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 지탱에 반드시 필요한 노동을 하고 있지만, 과도하게 긴 노동시간에 반해 턱없이 처우 수준이 낮다는 점이다. 그 결과 해당 직업군은 흑인, 여성 등 소수자의 비율이 높다. 현 체제는 이들을 착취함으로써 유지되고 있으므로, 현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를 도입하여 착취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지젝의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주의란, 시장에 의한 수요 공급의 조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재화나 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조정하는 체제다.
지젝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은 성공적이지만 동시에 문제점이 많은 국가다. 수출 통제, 마스크 5부제 등을 통해 마스크 시장을 안정화시켰고,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역학 조사를 통해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저지했다는 점에서는 ‘성공’이다. 지젝의 공산주의가 현실에서 잘 구현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반면, 성공적인 방역의 기저에 의료진 및 재난 담당자의 과잉 노동이 깔려 있었음은 개선되어야 할 지점이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특정 직업군에 대한 노동 착취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가 현재 주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은 게 중 평가절하가 심한 직업이다. 위험 일선에서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일함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임금이 낮다는 점에서, 착취의 정도가 훨씬 높은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지속될 경우, 현장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 하락이 발생할 테고, 향후 지원자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대 인력 확충’이라는 문제에 사회 전반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현 상황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의사 확충은 중요한 문제다. 인구 대비 의사 수 등의 통계를 볼 때, 한국에는, 특히 지역에는 의사가 부족하다. 그러나 의사의 경우 금전적 보상이 따르는 직업이기에 의사 지원자가 절대적으로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간호사의 경우는 어떠한가? 간호사는 이전부터 살인적 노동 강도와 태움 등의 인권 문제가 번번이 제기되어왔던 직군이다. 코로나 19 이후 업무량의 폭증까지 감안하면,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착취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의 경우에는 간호사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그간 수많은 노인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들이 확진을 받은 사례에서, 직군 간 애매한 경계선상에 있는 이들의 노동 여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 가능하다. 심지어 임금 역시 의사나 간호사에 비해 훨씬 낮은 직종이지 않은가. 즉, 오늘날 한국 사회의 주요한 착취 계급은 최일선에서 돌봄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 직업군이다. 그들에 대한 가치 재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한국 사회는 누군가를 착취함으로써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는 형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다.
새롭게 착취를 당하는 계급의 출현에 대한 지젝의 분석은, 감염병에 대처하는 전 세계 각지의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를 날카롭게 드러냈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나아갈까. 한 가지는 분명한 듯하다. 다시금 창궐하는 코로나 확산세에 파묻혀, 이 문제가 거론되지조차 않는 상황이 와선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