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책이, 채식 바이블인가요?

제레미 리프킨 - 육식의 종말 후기

by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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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채식이란, 내게 윤리적 차원의 문제였다. 공장식 축산이 동물의 생명권을 어떻게 박탈하는지에 대한 성찰이자, 오만한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로서 자신 이외의 생명을 마구잡이로 짓밟아온 역사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런 내게 책 속의 리프킨은 ”네가 모르는 게 많다“며 다그쳐댔다. 육식은 윤리적 문제만 존재하는 장이 아니라고, 인류 역사의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의 피를 흘리게 하고, 누군가를 짓밟음으로써 계급을 나눠온 역사라고 말하는 듯했다.


리프킨이 말하는 ‘역사’를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기가 주식이었던 서유럽인은 신대륙 개척을 통해 소를 키울 넓은 평원을 발견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소 종을 아메리카로 들여왔고, 그들의 주식인 클로버를 재배했다. 클로버는 머지않아 특유의 번식력으로 식물 생태계를 장악했으며, 서유럽인들은 미국 중서부의 드넓은 초원을 차지하기 위해 아메리칸 버펄로와 원주민을 학살했다. 이윽고 그 땅을 차지한 소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사료를 먹어치웠는데, 이는 수많은 기아가 생존하고도 남을 양이었다. 그뿐 아니라, 소가 엄청난 규모의 물을 마셔대면서 전 세계의 물은 부족해져 갔다. 소가 자라는 땅(아메리카, 동남아, 오세아니아)은 굽으로 내려찍으면서 토양이 단단해졌고, 그 결과 수분이 부족해지는 동시에 미생물이 사라지면서 사막화를 가속시켰다. 소떼가 내뿜는 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소를 공장식으로 사육하고 도축하는 공장에서는 수많은 노동자가 피가 흥건한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일하며 고통받았다. 이 모든 과정의 위에는, 고기를 선호하는 서구인들의 식습관을 지속적으로 유지, 강화함으로써 자본을 확장하기 위한 기업가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 과정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 축산 업계가 최종 소비자와 물리적 거리를 떨어뜨리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소비자가 포장된 스테이크용 고기의 탄생과정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빼앗은 덕택이었다.


이처럼 근대 이래 육식의 역사는, 인간이 ‘소’라는 생명을 마음대로 앗아간 역사일 뿐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써의 ‘소’를 증식시키기 위해 수많은 인간과 생태계를 유린한 역사이다. 그렇게 흘린 수많은 피와, 사라져 간 생태계의 본모습을, 소비자로 하여금 상상할 능력을 앗아간 ‘농락의 역사’다. 그런 점에서 ‘육식의 종말’이라는 리프킨의 명명은 막시스트 스타일의 작명이다. 계급적 착취와 농락으로 인해 특정 계급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를 박탈당했으니, 계급 혁명을 통해 축산업계에 저항해야 한다. 그 혁명이란, 모두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리프킨의 논리를 쭉 따라오다 보면, 무언가 허전하다. 근 십 년 전에 이 책이 나오고 나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의 논리에 감명받아 저항을 결심했던가? 채식 담론이 정작 힘을 받는 것은, 반려 동물을 기하급수적으로 기르는 현 세태와 더불어 동물의 권리를 인간이 함부로 빼앗을 수 있냐 하는 성찰이 나오고 나서가 아니었던가...? 리프킨이 말하는 거대 담론은 너무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반면 나와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목숨은 개인에겐 너무 가까운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고기를 거부하겠다는 논리 몇 줄을 머릿속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좋은 교재임에도, 앞으로 채식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지침서가 될 순 없을 것 같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윤리적 문제로 축소시키고, 가장 중요한 비중은 ‘거대 담론’에 몰아넣는 과거 막시스트들의 패턴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책 말미에서야 최근 나오기 시작하는 담론에 대해 조금씩 언급하지만, 그것으로 채식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보기에는 무언가 허전하다.


이 책이 가져다준 가장 큰 교훈이라면, ”동물권은 윤리적 담론“이라는 기존의 틀을 부술 논리가 필요함을 깨닫도록 한 점이다. 동물권이라는 문제가 윤리적 투쟁에만 머물러야 하는 장인가? 윤리적인 논쟁 지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러티브가 거기서 멈춰 선 안 된다. 나와 함께 사는 개, 고양이의 목숨이, 나아가 모든 동물의 목숨과 권리가 어떻게 전 지구적인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는지에 대한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동물권은 담론 투쟁의 영역에서 ‘중요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고, 채식을 지향하겠다는 목소리에 힘이 더 실릴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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