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소녀 전유진
아들과 포항을 가게 되었다.
종영한 지 한참이 지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너무 재밌게 봐서
촬영지인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를 가게 되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서울이요"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드라마 촬영지가 어디고 시장에서는 꼭 들려서 먹으라고 친절히 말해 주신다.
가끔 택시를 타면 기사님과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게 된다.
대부분 정치 이야기로 시작해서 경제 이야기로 끝나게 되지만
이렇게 여행을 하게 되면 구경거리와 맛집을 알려 주신다.
운이 좋으면 인터넷에는 없는 지역 맛집을 추천받기도 한다.
기사님은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느닷없이 현역가왕 보았냐고 물어보시는데
사실 나는 경쟁 구도의 예능을 즐겨 보지 않는 스타일이다.
포항시 동해면을 지나가니 여기저기 현수막이 붙어 있다.
포항 여고생 전유진이 현역가왕전에서 우승을 하고 일본가왕전과 대결을 한단다.
이제는 트로트 한일전을 한다니... 일본이랑 많이 친해졌구나
그리고 또 다른 곳을 가기 위해 탄 택시도 현역가왕 전유진 이야기이다.
식당에 가도 시장에 가도 포항 사람들은 전유진을 엄지 척한다.
어찌나 자랑스러운 것일까
그날 밤 숙소에서 호기심에 유튜브로 확인해 보았다.
<옛 시인의 노래> 원곡 1980년 한경애
<소녀와 가로등> 원곡 1977년 진미령
아들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17살의 어린 소녀가 당시의 감성과 분위기로 노래를 부르니
옛 추억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더라
<소녀와 가로등>의 작사, 작곡은 요절 가수 장덕이다.
이 노래를 만들었을 때가 중학교 2학년이란다. 당시의 신인 가수였던 진미령에게 소녀 작곡가는 이 노래를 주고 서울가요제에 참석한다.
참고로 당시 진미령도 19살이었다.
70년 80년 당시의 차가운 거리를 가로등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던 소녀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노래였다.
이처럼 트로트란 대개 애절한 노래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 여러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일본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된 트로트는 민요를 섞어 대중가요로 발전하고 나라 잃은 설움을 표현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70,80년의 사람들을 위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트로트라는 장르 보다 대중가요, 유행가로 발전했다.
그래서일까 당시에 가게나 택시 안에서 라디오로 대중가요가 참 많이 흘러 나왔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도 애절한 노래는 추억과 사연이 있어서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감동을 하게 된다..
일본강점기에 일본의 영향을 받아 유행했던 트로트는 한이 서리고 애절함에 더 깊어져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1883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일통상장정 이후 일본인이 조선으로 와서 살았던 곳이다
포항 돌고래라는 별명을 가진 포항소녀가 부르는 대중가요는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들려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