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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정 Jan 27. 2024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영화 <바람>

대한민국 1990년의 평범한 가정의 아침

아버지는 이미 조간신문을 펼치고 거실에 앉아 계신다.

이제 막 깨어난 정국이는 (아버지는 막둥이 정국을 짱구 박사라고 애칭 한다) 이른 아침에 모두들 자기 일에 바쁜 가족들을 둘러보고 있다.

어머니는 식사준비를 누나는 거실을 청소하고 있으며  형은 이미 세안을 마치고 정국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오늘 정국에게는 고등학교 첫 등굣날인데 걱정이 매우 크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명문고에 진학하지 못한 것보다 부산일대에서  폭력으로 소문이 자자한 학교의 생활이 더욱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친 것이다.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던 찰나 다행이었던 것은 어릴 적부터 알던 동네형이 복학생으로 이 학교를 같이 다니게 된 것이다. 정국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안도한다.

그날 이후 정국은 약육강식 같은 고등학교의 생활에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잔뜩 허세 가득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 지낸다.

정국이 놓고 간 도시락을 들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날 반 친구들이 우습게 볼까 봐 어머니를 매몰차게 보내버린다.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국은 미안함으로 바라보지만 또다시 남들 눈을 의식한다.

함께 등하교를 하는 동네형은 이유도 없이 폭력을 휘둘러 구설수에 오르게 되자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불법서클에 가입하게 되는데 정국에게는 학교생활에 있어 커다란 후광이 돼버린다.

영화 <바람>은 정국 (별명 짱구)의 배역을 맡은 배우 정우의 자전적인 영화이다.


폭력으로 얼룩진 학창 시절


당시의 중 고등학교에서는 폭력이라는 것은 암묵적인 하나의 문화였다.

마치 폭력이 내리사랑인양 선생님들 마저 필수품은 사랑의 몽둥이(?)였으니까

특히 운동부에서는 선생님 보다 선배가 하늘이어서 인사법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선배에게 깍듯이 대하는 예의가 시작이 되어 학교가 허락하지 않은 불법서클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게 된다.

홍콩영화를 보고 자란 청소년들은 후배들에게 조폭식 인사를 받는 것은 마치 남자의 로망이 된 것이다.


“인생은 바람과도 같은 것이야”


극 중 유치장 안에 갇힌 취객의 말처럼 정국은 어깨에 힘을 잔뜩 넣은 선배의 말 한마디, 행동마저 멋지게 보인다. 한번 사는 세상 멋지게 살아보자. 그것이 정국에게는 큰 꿈이 된다.


몸은 어른처럼 컸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같은 내면에 권력은 너무도 달콤하게 다가온다.

이쁜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수컷들의 싸움도 절대적인 우위에 놓이게 되고 후배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 놓이자 더욱 기고만장해지는 자존감

그러나 선배들은 권위에 위반하는 것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영화 <바람>은 폭력서클의 카리스마를 보여 주고 있지만 제대로 된 액션 활극은 전혀 없다. 그저 허세 가득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이 전부인 것

폭력의 시대에도 사랑은 있었다


가정에서도 형의 권위는 대단하다. 정국의 평범한 아침식사 모습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형은 정국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것 마냥  훈계한다. 누나는 그런 형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어머니는 막내인 정국을 감싸기 바쁘다. 80 90년대의 가정사는 가부장적이었다. 그런 형이 군대를 가자마자 정국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행동한다.

시간은 흘러 3학년이 된 짱구는 평범한 학교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을 때 즈음. 흡연한 것을 아버지에게 들키게 된다.   화가 난 아버지는 분에 못 이겨 정국의 뺨을 때린다. 폭력에 가담하여 경찰에 끌려가던 날도 화를 안 내시던 아버지가 이처럼 화를 내시다니...

뺨을 맞은 정국은  힘없는 아버지의 매질에 마음속에서 바람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갑작스레 쓰러지고 아버지의 낡은 구두에는 점차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도시락을 들고 오시던 어머니의 어눌한 뒷모습에서 보인 것처럼 목욕탕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날이 갈수록 쇠약해진 모습을 보는 정국의 마음은 또다시 안타까운 바람이 든다.


영원할 것 같은 가족의 시간


"우리 짱구박사 아빠 기다렸나? 통닭 기다렸나? “

"당연히 아빠 기다렸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하며 들고 온 기름 가득 묻은 누런 봉투 속 통닭을 보이며 정국을 업고 오르던 계단이

너무 그립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하게 병원으로 가보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 옆 구석에 앉아 슬피 우는 정국의 눈에는 늘 아침에  깨어나면 볼 수 있던 아버지의 근엄함 보다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게 보인다.

폼나게 살고 싶던 청춘의 바람은 덧없이 흘러가는 시절 속에 이별을 마주하게 된다.


폼과 낭만이 영원할 것 같던 10대의 마지막인 졸업식날.

교정은 더 이상 로망이 아니었다. 더 큰 사회를 마주하게 된 철부지들은 비로소 인생을 배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다.

인생은 바람 같아서 때로는 봄바람 같고, 때로는 폭풍이 될 수 있고 산들바람이 될 수도 있다.

바람 잘날 곳 없는 세상살이에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은 우리네 부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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