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 Sep 05. 2020

24살,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

딴짓의 시작

나는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손재주가 좋고 만드는 걸 잘하나 싶지만 그렇진 않았다. 다만 사람과 사람들이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이건 나의 딴짓 프로젝트가 길게 이어질 수 있었던 필연적인 천성이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딴짓은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전공 공부를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었지만, 1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위해 나는 병무청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군 복무에 대해서 지극히 일반적인 생각을 가졌던 나는 신체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육군 간부 모집 책자를 하나 받아 나왔다. 큰 의미 없이 받아온 책자를 집에 던져두었는데, 휴일에 다시 우연찮게 책자를 펴보면서 군대라는 걸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기존에 신체검사 결과, 현역병 입영 대상이었던 나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부산 거주 학생들이 선호하는 부대인 53사단(부울경 지역)으로 배정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모집 책자에서 본 ROTC란 제도가 자꾸 눈에 밟혔다. 현역병보다 약간 긴 2년 4개월을 의무복무 하나, 간부로 입영해서 다양한 경험과 공무원에 준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ROTC 학군사관후보생에 지원했고, 여러 가지 테스트 끝에 합격했다. ROTC 후보생은 합격 후, 대학 3~4학년 2년 간 후보생 생활을 거쳐 졸업 후 소위 계급으로 군 입대를 하는 프로세스였다.


처음 후보생 생활을 시작해서 학군단 집체교육을 받으면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깡패 사관학교라도 들어간 것처럼 고된 훈련과 통제의 연속이었다. 그때 당시는 험한 말도 하도 많이 들어서 그 후 정신적으로 단련된 부분도 크지 않나 싶다.


여하튼 나는 치열했던 2년 간의 후보생 과정을 마치고, 정훈장교로 임관하게 됐다.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군 장교들도 학교 선생님들이 담당 과목이 있는 것처럼 주특기가 있다. 정훈 병과인 나는 군 조직 내에서 역사 안보관 같은 교육과 부대 상황에 대한 언론 대응이 주 업무였다.


임관 후 자대 배치 전, OBC(Officer Basic Course)라고 해서 병과학교에 가서 4개월 간 교육을 받는데 나는 성남, 당시 위례 신도시에 위치한 육군 종합행정학교로 향했다. 교육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기존에는 군복을 입으면 항상 몸이 고됐는데, 여기서는 머리가 고됐다. 국제 정치론부터 역사관 등 온종일 이어지는 교육과 실습에 다시 수험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규수업 후 저녁에 개인 시간을 가지려면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점수를 얻어야 했기에 정말 생존을 위해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4개월 간의 교육을 마치고 나는 경북 경산에 위치한 제2수송교육단 정훈공보장교로 배치를 받았다. 처음 지휘실습을 위해 자대에 갔던 순간을 잊을 수 없는데, 부대는 마치 거대한 운전면허 시험장 같았다. 다만, 차가 전부 군용차일 뿐이었다. 지프차로 유명한 소형 레토나부터 2.5톤 트럭, 대형 버스까지 수없이 많은 군용차들과 교육생들 사이에서 부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랬다. 이 부대는 운전병 특기를 받은 교육생들이 기초훈련을 마친 뒤 후반기 교육을 오는 곳이었고, 기간병들은 조교였다. 약간 논산훈련소 조교 같은 느낌이랄까. 자대에 배치받은 뒤부터는 바쁜 일과가 이어졌다. 나는 부대의 지휘관 참모 역할을 해야 했기에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부대 동향에 대해서 누구보다 빨리 파악해야 했고, 이른 아침부터 국방일보부터 중앙지까지 신문 3~4개는 읽어가며 주요 이슈를 체크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행정분야의 간부였기에 내가 본격적으로 바쁜 시즌은 특별 정신교육이라는 교육이 시작되는 주였다. 한 달 넘게 전 부대원 대상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먼저 간부들 대상의 교육부터 해서 기간병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첫 교육이 사실상 나의 평가 무대였다. 초급간부로 가보면 사실 계급만 높지 부대 현실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에 부대원들이나 타 간부들이 알게 모르게 견제를 많이 했다. 그래서 이러한 시선을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결국엔 실력이 중요했다.


첫 교육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았던 거 같다. 회사 생활하면서도 안 하던 야근을 이때는 많이 했다. 군대의 교육자료라는 게 사실은 형식과 틀이 정해져 있고 목적 지향식의 교육이라서 자료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면 딱딱하고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 개의 메시지라도 대상에 따라 어떤 형태로 전달하면 좋을 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안보현안 등 최대한 근래의 이슈를 활용해서 좀 더 와 닿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그 결과, 나는 조금씩 인정받을 수 있었고 더욱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떤 능력이 있어서 무언가를 했다기보다는 책임감이라는 게 가져다주는 막중한 힘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부족한 나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부대 단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