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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Sep 10. 2020

노조까지는 아니고

회사 직원협의체 활동기

기업을 이루는 주체는 크게 경영진, 직원, 투자자, 파트너사 등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내부 고객인 직원과 경영진의 소통은 원만한 기업 운영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있는 기업들은 노동조합이란 형태로 노조에서 직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경영진과 협의를 해나가기도 하고 때론 투쟁을 하기도 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과거 직원 사주제로 출발해서 노동조합 대신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협의체인 '하나투어 발전협의회(일명, 하발협)'라는 것이 있었다. 노동조합만큼 체계적이거나 힘이 강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직원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조직문화와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건의하고, 회사 발전을 도모하는 조직이었다.



[직원협의체 운영규정 중]

제 1 조 (명 칭)
본 협의회의 명칭은 하나 발전 협의회(이하 '협의회'라 칭한다)라고 한다.


제 2 조 (목 적)
본 협의회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①우리 사주 회사로 출범한 하나투어의 VISION 2020을 달성함에 있다.
②하나투어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고자 직원들의 주인 의식 고취 및 직원들의 복지에 중점을 둔다.
③회사의 주요 정책 및 안건을 협의한 후 경영진에게 건의하며 경영진의 주요 정책 결정을 견제함을 목적으로 한다.



직원들 투표에 의해서 선출직으로 1년 간 임기로 운영됐는데, 나는 입사 2년 차 사원 때 하발협에 지원했다. 나름 회사에 대한 애정도 있었고 내가 하는 직무 외에 회사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컸던 거 같다. 하발협 전체 위원은 부서를 대표하는 인원과 남녀 사원 각각 대표 등으로 해서 총 9명으로 이루어졌는데, 나는 남자사원 대표로 출마했다. 사실, 해당 카테고리는 단독 출마여서 사내 인트라넷 상의 찬반 투표에 의해서 투표를 진행했고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하발협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활동하는 방식은 사내 하발협 카페가 있어서 직원들로부터 안건을 접수받거나, 각 하발협 위원들이 정기회의 시 준비된 안건을 내고 내부 논의 하에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안건들은 분기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경영진에게 건의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나는 경력이 얼마 되지 않던 사원 시절에 했던 활동이라 처음에는 직원들에게 필요한 사안들을 많이 건의하고, 제안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게 좋지 않나 생각했는데, 막상 활동해보니 예상보다 난관이 많았다.


일단 과거 선배 기수에서 진행했던 안건들의 현황을 꼼꼼히 살폈다. 당시에 그런 안건들이 어떻게 진행됐었는 지 통과된 이유는 무엇이고, 통과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안건들의 히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현실적 여건이란 부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다. 예를 들어 복장 규정 관련하여 당시에는 매주 금요일과 매월 25일 월급날만 캐주얼데이라고 해서 자유 복장이고 그 외의 날엔 정장 차림의 복장을 유지했는데, 노타이 변경 건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 것에 있어서 진행 시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고 조직문화 차원에서 실익이 무엇일 지에 대한 논의를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주장을 하는 데 있어서 논리나 근거에 대해서 많은 준비를 했던 거 같다. 나는 당시 회사 문화에 대한 경험은 적었지만 같이 활동하는 선배들이 회사에 대한 애정이 많았기에 다양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많이 나눠볼 수 있었다.


여행사 특성상 명절 연휴에 공항이나 사무실 당직 근무를 설 때가 있는데, 명절 연휴 간의 당직근무비를 근로기준법 기준에 따라 통상임금의 50% 추가로 가산해서 반영해달라는 안건, 긍정적인 사내 문화 조성을 위한 포춘쿠키 이벤트 제안, 직원 해외 인솔 출장 시 인솔자 출장비 증액 건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고, 이러한 의견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규정 확인과 타사 사례에 대한 조사들이 이루어졌다. 나도 당시에 근거 마련을 위해 친구들과 지인들을 통해 타회사의 규정을 열심히 묻고, 수집했다.    


이러한 안건 개정과 더불어 하발협 활동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됐던 부분은 회사 조직 내에서 상대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었다. 조직이라는 게 아무리 좋은 취지와 문화가 있다 해도 사람이 이루어가는 조직이다 보니 때때로 불합리한 일들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미흡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특히나 내가 있는 회사는 타회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직원들이 많은 회사였고 학력에 따른 채용형태도 다양한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오해와 갈등이 쌓이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때론 이러한 고충에 대해서 접수받고, 중재 역할을 했던 기억들도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전국 각지에서 직원분들이 사내 메신저로 의견도 많이 주셨는데 덕분에 당시에 한 번도 살펴보지 않았던 총무/인사 사내규정을 항목 별로 참 여러 번 꼼꼼히 살펴봤던 거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활동을 마무리할 때쯤 느꼈던 건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도 규정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수가 공감할만한 체계적인 근거와 협의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구성원에 대한 따뜻한 관심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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