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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톰 Sep 02. 2015

체 게바라

이 남자를 알고 싶어 하는 분들 에게

Che Guevara/체 게바라는 문어발같은 자본주의의 횡포에 저항하고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찾기위해 노력한 아르헨티나 태생의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혁명도 사회주의도 다 사라진지 오래지만 오로지 Che 만 살아있다고 할 정도로 이념과 국가를 떠나 그가 전설적인 혁명가로 남아있는 이유는 사르트르 조차도  '20세기의 완벽한 인간이다' 라고 표현할 만큼 실존주의의 휴머니즘과 닮아있는 혁명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뜨거운 인간애가 명하는데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자신을 기다리는 고행의 길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테레사 수녀님과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의 실천자가 아니었는지.

아직까지 미국에서 조차 사그러들지않는 Che의 열풍과 함께 우리의 거리에서 간혹 Che의 얼굴이 프린팅된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10, 20대를 보면 진정한 혁명의 아이콘인 남미의 한 혁명가를 닮고 싶어하는 그들 나름의 열망이라고 생각하고싶다.

그는 사랑이 가득한 소년이었으며 평등을 주장하고 기득권 층의 뻔뻔함에 반감을 가지며 모험에 도전하는 의식있는 청년 의사 였다.

Che는 라틴 아메리카의 전역을 탐험하면서 지옥과도 다름없는 구리 광산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
생산한 모든 것을 약탈당하는 불쌍한 농부의 운명론적 체념들을 경험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세상을 다시 만들고픈 꿈을 꾸고 인간을 늑대처럼 억압하는 폭력에는 혁명의 힘으로 맞서는 수 밖에 없다라고 결심하게 된다.

사전적 의미는 어떠할지 모르지만 Che에게 있어 혁명이란 '인간의 숭고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정의의 폭발적 분노'는 아닐런지 추론해본다.
단 이데올로기라는 틀이 이를 억압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군부의 사욕과 구별 될것이다)

Che 는 27살때 피델 카스트로와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극도의 빈곤과 구걸로 연명하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을 제국주의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합의한다.

독재자 바티스타의 퇴진을 목표로 한 쿠바혁명을 돕는다라는 명분아래 피델과 합류하고,게릴라는 민중의 전위대라는 Che의 표현대로 게릴라전을 예술의경지로 끌어올리며 25개월만인 '59년 1월 3일 아바나에 입성한다.

그가 모국 아르헨티나 대신 쿠바를 선택한 이유는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억압받는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했으며 피델과의 만남 그리고 쿠바를 가장 열악했던 한 대상으로 생각한 것 같다.

피델을 도와 쿠바의 영웅이된 Che는 자신을 향한 '해방자'란 칭호를 '민중을 해방시키는 것은 오직 그들 자신이다' 라는 말로 일축해버린다.

쿠바의 시민권을 부여받고 전권 대사 자격으로도 군복을 벗지 않는 파격을 좋아했으며 게릴라출신으로 토지 개혁위원장,국립은행총재, 산업부 장관등으로 흡혈귀같은 토지사유제의 종말과 의료법 개혁등 몇몇 사안을 제외하곤 정치적 행로는 순탄하지 않았다.

단촐한 집에서 살았고 적은 급여를 고집했으며 옷장은 낡은 군복 몇벌외 텅비었고 다른 혁명동지들 보다 작은 차를타고 다녔던 그는 사르트르와의 긴 대화후 '혁명의 근원은 국민에게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데 있었지 선험적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라는 말을 이끌어내며 혁명의 도덕성과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쿠바는 오고 양키는가라'는 라틴 아메리카 대학생들의 구호는 마르크스 주의자로서 Che가 내린 혁명의 정당성과 도덕성에서 비롯되었다.
자발적 노동에 대한 수호자로서 스스로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으며
체코 등의 동구권과 중국 소련 등을 돌며 군사적 경제적 현안을 위해 노력하던 Che 는
'쿠바에서의 할일은 끝났다' 라는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모든 혁명은 종국에 부폐한다' 라고 하지만 그는 부폐할 틈도없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음 혁명지를 찾아 떠난 것이다.
 '제2의타잔이 되는 것,흑인 사이에서 흑인들을 지도하고 보호하는 백인이 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라는 나세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자본주의로 부터 가장 억압받는 땅 콩고로 향하지만 나세르의 말처럼 아프리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콩고에서의 활동은 실패로 끝나고 다시 압제의 땅 볼리비아의 혁명에 참가한다.

여기서도 Che가 이끄는 53명의 혁명군은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들은 외국인 보다. 볼리비아인이 혁명대장이 되길 원했고 내부의 분열과 농민 노동자들과의 연대도 실패한채 산악지역을 전전하다 1967년 CIA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독재 정권에 의해 총상을 입은채 포로가 된다.
Che 의 영향력을 두려워하여 레인저 특수부대까지 투입한 미국의 지시에 따라 Che는현장에서총살되고 시신이 훼손당한채 혁명의 역사는 끝이난다.

Che를 유명하게 만든 건 청동을 갈아 만든 별을 단 베레모 때문이 아니요. 대사의 자격으로도 전세계를 누빈 낡은 올리브 그린색 군복때문도 아니며
긴 수염과 잘 생긴 외모 덕분도 아니다.
이 책의 속 표지엔 내가 2002년11월24일 이 책을 읽은 것으로 낙서되어 있다. 기억엔 없지만 남미의 지도 까지 끼워져 있는 것으로 봐선 정독한 것같다.
아마도 그 땐 Che에 대한 호기심 때문 이었는지
Che Guevara에게 있어 '이념은 단지 인간의 존엄성에 다가가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했을 것 이라는 추론까지 도달하진 못했던 것같다.

Che의 행위와 심경을 다 요약하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함께한 그는 휴머니즘의 전도사였으며 목표를 위해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투사이며 의학 박사이며 네루다의
시를 사랑한 시인이기도 하다.

난 Che가 우리나라에서 특히 금기시 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았다고 해서 그의 인간애까지 폄하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요란하게 티셔츠로 칭송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그 자체로 이해하고 평가되기를 바란다.
공산주의 앞에 반자만 붙으면 깡패 김두한도 협객이 되는 나라가 아닌가.

다시 읽게 된 책을 포함하여 책만으론 십분의 일도 그를 이해했다고는 생각치않는다.
다만 단문으로 표현되는 몇몇 구절만으로도 헐벗고 굶주린자들에 대한 그의 애정은 읽을수가 있었다.
 'Che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하겠습니까 ?'라는 단순하고 확실한 질문과 실천하는 삶을 통해 신념을 밝혀나가는 그를 보면서 '나는도대체 뭘하고 있는가' 라는 가슴 아픈 자성의 소리를 들었다.

대상이 무엇이던 간에 불의에 대항하고 인간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을 잊고 살아왔다는게 부끄러워지며 잠시 20살의 나와
같이 이 자리에서 궁지에 몰린 토론을 하는 듯한 생각이 든다.
혁명가이기 이전에 평론과 일기,어록을 통해 본 인간 Che Guevara 는 멋있다.
단지 술은 한방울도 마시지 않는다는 치명적 약점을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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