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게다가 잘 쓴다는 것

33년 작가 지망생의 중구난방 글쓰기 도전기

by psyche

첫 글을 이렇게 어마무시한 주제로 시작하게 되다니. 스스로의 어떤 용기랄지 혹은 객기랄지 모를 이 행동에 감탄 중이다.

이 글은 글쓰기를 좋아하고, 가끔은 글을 잘쓴다는 얘기도 듣지만, 글을 생계수단으로 삼기엔 용기가 부족하며 또한 그만큼의 자신감조차 없는 평범한 직장인의 글이다. 앞으로 쓸 내용도 그런 고군분투에 관한 푸념과 상념, 아주 가끔은 만족감과 고양감이 될 것이며 그러므로 매우 중구난방 빙글빙글일 것이다. 내 글이 자주 그렇듯이.


내가 기억하는 내 글쓰기의 시작은 소설이었다. 강제로 쓰게된 소설과 같은 밀린 방학일기 같은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인터넷에 연재했던 소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시대를 풍미한 인기 가수의 팬픽과 이젠 완전히 다른 형태로 하지만 그 알맹이만은 굳건히 명맥을 유지 중인 '인소'가 운명처럼 내 방 PC에도 찾아왔다.

나는 주로 슬픈 소설을 썼다. 주인공들은 시련과 함께 내 이야기에 등장해 애매한 실연으로, 다분히 열린 결말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어물어물한 기억을 분석해보자면 그 때 당시 나는 매년 짝사랑하는 애가 바뀌는 평범한 초딩이었으므로 그닥 깊이 있는 슬픔은 아니었을 것이다. 순정만화든 팬픽이든 인소든 닥치는대로 읽어댔던 그 이야기들과 캐릭터들이 모방의 경계에서 복사되고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겠지.

그 때 썼던 글들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다. 가장 마지막으로 그 글들의 파편을 발견했을 때가 10년 쯤 전으로, 당당히 [습작]이라고 적힌 1MB짜리 '플로피디스크'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직접 읽어볼 수는 없었다. 파일을 열어볼 수 있었더라도 아마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하.


한번도 까놓고 말한 적이 없어서 주변인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나의 소설쓰기는 그 후로도 간헐적으로 죽 이어졌다. 그 때마다 글쓰기가 얼마나 즐거우면서도 괴로운지, 글을 쓰는 나의 동기가 무엇이고, 나는 어떤 것이 두려워서 글쓰기를 망설이는지 숙고했다. 깊은 고민은 내 손가락을 굳게 만들었고 뭐든 자랑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내 입을 다물리게 했다.

그렇게 어떤 주기로 나는 썼다가 지웠고, 쓰다가도 포기하길 반복했다.


좀 재수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재능이란 양날의 검이다. 그것이 뚜렷한 천재성을 띄는 재능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글을 쓰는 것만큼 나를 몰입하게 만드는 행위가 없지만, 그 결과물에 낙담하게 하는 것 또한 없다. 이렇게 재미없는 걸 누가 읽어? 하는 '남의 눈치'까지 보게되면 이제 재능은 재앙이 된다. 차라리 아예 관심과 열정만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걸. 왜 또 잘 쓰는 바람에 이다지도 날 괴롭히는지.


희한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나는 우연히 글을 계속해서 써야하는 상황에 놓인 적도 없었다. 글은 그래서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희뿌연 그림자 같은, 이루지 못한 꿈이나 그 엇비슷한 과거의 영광, 손에 잡히지도 잡을 생각도 없는 이상적인 어떤 것이었다. 아주 가끔씩만 내 귓가에 내려앉아 속살거리는. 그럴 때면 꿈결에 행복해지듯 잠깐이나마 써내리고 싶어지는 문장들이 속에 다글거리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다시금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억지로 글을 생계로든 어떤 다른 이유에서든 써야했다면 스킬이야 늘었겠지만 아주 재미를 다 잃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나라면 이제 나는 AI가 대신 글을 써주는 시대까지 절필하겠다고 선언했을지도. (그런 시대가 벌써 성큼 다가왔지만서도)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출판을 해보거나 기고를 해본 적도, 공모전에 참여하거나 꾸준히 연재를 해본 적도 없어서, 브런치에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내가 지금 걷는 이 길을 걸었을 누군가, 걷고 있을 누군가, 앞으로 걷게될 누군가가 이 글을 보면서 아주 잠깐 추억에 젖고 위안을 얻고 두려움을 거두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야. 그것도 지금의 내겐 훌륭한 동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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