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02_배가 고픈가, 님이 그리운가

무슨 사투리처럼 들리는 뻐꾸기 울음소리

by 김홍성


산판 길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험해진다. 온몸이 땀에 젖는다. 아침을 거른 탓인지 갈수록 힘겹다. 같이 굶었지만, 김남석(31세) 씨의 걸음은 가볍다. 지게에 진 서말 쌀이 솜이나 되는 듯 사뿐사뿐 물을 건넌다.

박근숙(25세) 씨도 남편 못지않게 잰걸음이다. 산에서 쓸 잡동사니를 담은 정부미 자루에 멜빵을 해서 짊어졌지만, 어느새 물 건너 고목 둥치 밑에서 표고를 따고 있다.

남석 씨 내외와는 어젯밤 신세를 진 대개인동 차건일(49세) 씨 집에서 6년 전에 만나 친해졌다. 함께 그들의 산막에 가 보기로 한지도 벌써 3년. 내년 또 내년 미루다가 이제야 따라가는 중이다.


물을 열 번쯤 건넜을까. 물소리가 희미해지더니 햇살이 따스한 양지가 나온다. 산비탈 밑에 옛날 화전 터가 있다. 남석 씨는 풀이 드물고 편편한 곳에 지게를 내려 작대기로 버티어 놓는다.

근숙 씨도 등에 졌던 자루를 풀고 찬합을 꺼낸다. 우리가 떠날 때 차건일 씨 부인이 급히 장만해 준 점심이다. 뚜껑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난다. 들기름으로 무친 취나물 반찬에 흰밥이 소복하다.

남석 씨는 집터 뒤에 있는 샘에 가서 양재기로 샘물을 떠 온다. 우리는 샘물에 밥을 말아먹는다. 갈증도 심했거니와 아침을 거른 탓에 꿀맛이다. 적막한 산중에서 묵묵히 밥을 떠먹고 있자니 어디서 뻐꾸기가 운다.

뻐꾹뻐꾹 뻑뻐꾹 뻐꾹 ....... 무슨 사투리처럼 들리는 뻐꾸기 울음소리.


“저 놈이 배가 고픈가, 님이 그리운가.”

남석 씨가 밥숟갈을 들고 이렇게 우스운 소리를 하자마자 신기하게도 뻐꾸기 울음이 뚝 그친다.

“저 놈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들었나 왜 울다 말아, 싱겁게.”

“싱겁긴 누가 싱거워요. 보따리만 주면 잃어버리고 다니는 소영 아빠가 싱겁지.”

어제 남석 씨가 깜빡 잊고 홍천 버스터미널에 두고 온 된장 보따리를 염두에 두고 하는 근숙 씨의 말이다. 남석 씨는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잃었다는 사실도 금방 잊는다. 그걸 추궁하면 ‘거 누가 잘 먹겠는 걸’하고는 그만이다.

뻐꾸기가 울던 숲 속에서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석 씨는 산비둘기 우는 내력도 알고 있다.

“에미 죽고, 새끼 죽고, 에미 죽고, 새끼 죽고...... 이게 산비둘기 우는 내력이래요. 노인들한테 들었어요. 에미 죽고, 새끼 죽고... 어때요? 산비둘기 우는 곡조와 비슷하지 않아요?”

산에서 살더니 별 걸 다 배웠다 싶어 남석 씨를 한 번 더 쳐다본다. 6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다르다. 그때만 해도 그늘이 많던 얼굴이 이제 아주 깨끗해졌다.


남석 씨는 이곳 방태산(1,444미터)의 한니동이라는 곳에서 나서 5세 때까지 자랐다. 다들 먹고살기 어려웠던 50년 대 말에 아버지 김윤기(67세)씨가 솔가 해서 입산, 한니동에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한니동에는 전쟁의 흔적이 즐비했다. 전쟁 때 버려진 총기의 총열로 부뚜막 솥걸이를 했던 일, 철 모를 냄비로 쓰고, 철모 속의 파이버를 샘물 푸는 바가지로 썼던 일, 튼튼한 탄띠로 소의 굴레를 씌웠던 일 등을 남석 씨는 용케 기억하면서, 지금도 방태산 지역에서는 인민군의 박격포나 총검 등이 발견된다고 했다.


5세 때 부모를 따라 방태산 한니동을 떠난 남석 씨가 다시 방태산에 들어온 것은 25세 때였다. 홍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학교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한 남석 씨는 군복무 중에 위장병이 생겼다.

전역 후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했지만 별 차도 없이 날마다 여위어 갔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남석 씨를 대개인동에 데리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한니동을 떠난 후에도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이따금 방태산 옛터에 들어와 치성을 드리곤 하면서 대개인동 개인 약수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남석 씨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개인약수가 있는 대개인동의 차건일 씨 집에서 여름 한철을 요양했다. 병이 호전되자 하산했다. 같은 마을 처녀였던 근숙 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위장병이 다시 재발하는 바람에 신혼살림을 아예 개인산 차건일 씨 집 뒷방에 차렸었다.


차건일 씨 집에는 남석 씨처럼 요양을 온 사람도 많았지만 약초/ 나물/ 버섯 등의 산림부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기숙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석 씨 부부는 약수를 먹으러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부산물을 채취하다가 3년 전부터는 아예 산막을 치고 본격적으로 산림부산물을 채취하게 된 것이다.

“이상한 병이에요. 홍천 집에서는 죽 한 그릇도 못 떠넘기고 앓던 사람이 산에만 들어오면 남의 곱절 씩 먹고는 산이 좁다고 뛰어다녀요. 그러니 저도 집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산에 따라다니면서 밥을 해 주는 게 더 보람이 있어요.”


이들은 여섯 살 된 딸 소영이를 홍천 집에 두고 왔다. 돌 지나서부터 작년까지는 줄곧 산에 데리고 다녔는데 동네에 친구가 생긴 올해부터는 아무리 달래도 따라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도 근숙 씨의 손은 바쁘다. 근처에서 잠시 뜯은 참나물과 모시대 나물이 한소쿠리나 된다.

참나물은 데쳐서 무쳐 놓으면 고추 잎 무친 것 같고, 모시대는 상처가 나면 흰 녹말이 흘러나오는 나물이다. 곰취, 떡취, 미역취, 전욱취가 다 같은 나물이지만 도회지 사람들이 곰취나 전욱취를 좋아하기 때문에 주로 곰취나 전욱취만 뜯는다고 했다.


화전 집터 근처에는 약초도 많이 눈에 뜨인다. 밟으면 더덕 냄새가 나는 덩굴이 여성들에게 좋다는 만삼이고, 벌써 대가 굵고 잎이 퍼진 것이 당귀다. 이런 약초들은 예전에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심었던 것들이지 싶다.

다시 가파른 능선 길을 쉬엄쉬엄 한 시간쯤 올랐을 때 남석 씨가 비탈로 내려선다. 비탈길 양 옆이 온통 취나물 밭이다. 군데군데 노리대와 당귀 포기도 보인다. 그쯤에서 남석 씨가 지게 작대기로 가리키는 곳에 산막이 보인다. 심마니들의 은어로 ‘모둠’이라고 부르는 이 산막은 작은 비닐하우스 모양이다.

“우리 집 어떻습니까. 저 건너편 구룡덕봉 밑에 막을 치고 살던 심마니 할아버지가 터 좋다고 바꾸자던 데예요.”


산막 친 자리는 개인산(1,341미터) 8부 능선쯤이다. 그런 위치에서 샘을 찾은 게 용하다. 방태산(1,443 미터)과 구룡덕봉(1,388미터)이 마주 보인다. 과연 심마니가 탐낼 만한 곳이지 싶다.

“산이 소잔등처럼 펑퍼짐하면서도 듬직하지요. 심마니 할아버지가 그래요. 산이 참 기름지다고……. 기름지다는 건 먹을 게 많다는 뜻이지요.”

들이 기름지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산이 기름지다는 말은 오늘 처음 듣는다. 과연 심마니의 제자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남석 씨가 말하는 심마니 할아버지는 나도 만난 적이 있다. 4년 전 이른 봄, 구룡덕봉 쪽에서 능선을 타고 오다가 바로 이 개인산 정상에서 그 노인을 만났다. 내린천 상류 마을인 광원리 쪽에서 올라왔다는 그 노인은 막을 칠 비닐과 쌀자루를 짊어지고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노인에게서 나물 이름 하나를 똑똑히 배웠다. 그게 얼레지 나물이다.

“봄이 되기 무섭게 잔설을 뚫고 나옵니다. 워낙 작고 어려서 다른 풀들이 나오기 전에 얼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보세요. 벌써 꽃을 단 놈도 있네요. 이 나물은 열매 맺기 전에 따서 말려요. 봄나물 중에 제일 비싼 나물입니다. 이파리를 따 내면 이렇게 하얀 즙이 나옵니다. 이게 녹말입니다. 겨우내 굶주렸던 토끼들도 이 풀로 허기를 채웁니다.”


노인은 얼레지뿐만 아니라 이 산을 구석구석 알고 있는 듯했다. 얼레지가 나올 때면 입산해서 첫눈이 내리는 초겨울에 광원리 마을로 철수하는 산중 생활을 한 지가 7년째라고 했던가. 농토도 없고 슬하에 자손도 없는 생활보호대상자라는 노인은 정부가 주는 구호양곡을 타러 갈 때 외에는 마을에 잘 안 내려간다고 했다.

노인은 적적한 것이 홀가분해서 좋다고 했다. 나물이나 버섯 따다가 쌀 좀 넣고 죽 끓여 먹고 먼 산 바라보고 있으면 도통한 듯 마음이 편안하다고도 했었다. 생활보호대상자나 극빈자라기보다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어떤 인격이 느껴지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 노인이 산삼을 찾아다니는 심마니인 줄은 후에 남석 씨를 통해서 알았다.


4년 전, 남석 씨는 바로 그 노인의 산막에서 기거하며 산을 배웠다. 남석 씨가 즐겨 쓰는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을 알아야 먹고 산다’는 말도 그 노인에게서 배운 말이었다. 노인은 올봄에도 구룡덕봉 밑 산막에 올라왔었으나 구룡덕봉 일대가 예년과 달리 번잡해졌다며 막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른다고 했다.

짐을 풀고 막 안팎을 정리하고 샘을 치운 다음 근숙 씨는 쌀자루를 허리에 매고 취나물을 뜯으러 나선다. 남석 씨와 나는 산비탈 곰취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박새풀이라는 키 큰 독초 사이사이에 이미 씨주머니가 달린 얼레지들이 보인다. 남석 씨 내외는 1주일 전인 5월 23일까지 1개월 동안 동네 할머니 세 분과 함께 이곳에서 얼레지 나물을 뜯었다.


생나물 3천 근쯤을 뜯어 삶아서 말린 것이 6백 근. 근당 6천7백 원씩에 팔아 4백만 원을 받았는데, 동네에서 모셔온 할머니 세 분 인건비와 부대비용을 제하니 2백만 원이 남았다고 한다. 심마니 할아버지 막에서 독립해 스스로 막을 치고 본격적으로 나물을 채취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한 달 동안 말이 아닌 고생을 했다고 남석 씨는 말한다.


봄이라지만 눈 오는 날이 많았고,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일쑤인 악조건 속에서 막을 치고 먹고 자며 작업을 해야 했다. 또한 말린 나물을 하루 두 차례씩 지게로 져서 산 아래로 나르느라고 땀을 물처럼 쏟고 다녔다고 했다. 하산해 있던 지난 1주일 동안에도 쉬지 못했다. 1주일 동안 3천 평쯤 되는 논밭에 파종하고 모내기를 마치자마자 다시 입산한 것이다. 메뚜기도 한철이지만 취나물도 한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딱 열흘만 지나면 취나물도 쇠서 못 먹어요. 날이 좋아야 나물 말리기가 좋은데 일기 예보를 들으니, 장마가 일찍 온답니다. 그래도 장마 전선이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한 열흘 걸릴 거예요.”

남석 씨가 멀리 계방산 남쪽 하늘을 살피면서 날씨를 걱정한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계방산 능선은 오대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약수산으로 이어졌다가 구룡령으로 떨어져 점봉산으로 치솟아 있다. 점봉산 너머로 설악산 대청봉이 보인다. 개인산은 백두대간의 주능선에서 서쪽으로 쑥 빠져나왔기에 백두대간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강원도의 여러 산 중에서 설악산은 국립공원이기도 하거니와 바위가 많아 봄나물이 개인산만큼 흔치 않다. 오대산이나 계방산, 또는 점봉산에도 개인산 못지않게 나물이 많지만, 국립공원 지역이기 때문에 산림부산물을 채취하는 데는 여러 가지 규제가 따른다.

결국 이 개인산 일대에서 나는 나물이 상인들에 의해 ‘설악산 명물’ 또는 ‘오대산 특산물’로 팔린다고 했다. 개인산에는 남석 씨의 산막 외에도 대여섯 군데에 산막이 있어 이른 봄부터 나물을 채취한다. 이들은 나물 철이 지나면 버섯을 따거나 당귀 등 약초를 캐고 구렁이를 잡기도 한다.


산 밑에서 차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구룡덕봉으로 이어진 비상 도로로 봉고차가 내려가고 있다. 광원리나 조경동 쪽에서 올라와 구룡덕봉 주변의 나물을 뜯고 내려가는 사람들이다. 올해 이 도로의 통제가 풀려 구룡덕봉 일대에는 많은 나물 꾼이 몰린다는데, 그중에는 수십 명씩 품을 사서 차로 올라오는 상인들도 있다. 심마니 노인은 그들이 싫어서 구룡덕봉의 산막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남석 씨네 산막으로 내려오니 근숙 씨는 나물죽을 쑤고 있다. 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그게 끓을 때쯤 참나물, 모싯대, 표고, 취나물 등을 뜯어 넣고는 고추장을 풀어 간을 맞춘다. 그 사이 남석 씨는 산판 때 넘어져서 썩은 나무 둥치를 도끼로 패서 산막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비록 비닐 막사일 망정 설 고래를 파고 구들을 놓은 것이다.


나물죽에 나물 반찬이다. 근숙 씨는 어느 틈에 명이와 누리대까지 뜯어다 반찬을 했다. 생 줄기를 통째 손에 들고 심이 들어 있는 껍질을 벗긴 후 고추장을 찍어서 먹는 누리대는 누릿한 빈대 냄새가 난다. 그래서 누리대 또는 노리대라고 한다. 이걸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양양 지방에서 모내기 새참을 내놓을 때 소고기 반찬은 없어도 되지만 누리대가 안 보이면 일꾼들이 투덜댄다고 할 정도로 인기 있는 나물이다. 비위가 약해서 처음에는 마다하던 사람도 일단 맛을 알고 나면 자다가도 입맛 다실 정도로 입에 당긴다.

명이는 일종의 야생 마늘이다. 단군 신화의 곰이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먹은 마늘이 바로 이 명이였을지도 모른다. 이걸 씹으면서 명을 이었다고 해서 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나물은 울릉도에서도 많이 난다. 울릉도 명이는 맛이 순하지만 이곳 명이는 맛이 강하다. 잎과 함께 꽃대를 마늘종 먹듯이 고추장 찍어 먹는다.


명이, 누리대, 참나물 무침, 모싯대 무침을 찬으로 걸쭉하고 얼큰한 나물죽 두 사발을 먹고 나니 서산 하늘이 벌겋다. 그새 해가 진 것이다. 방태산 위에 첫 별이 돋을 즈음에 우리는 산막으로 들어가 눕는다. 밖에서 보면 둘이 자도 좁겠다 싶은데 막상 셋 다 들어와 누우니 한 사람쯤 더 누워도 될 것 같다.

어디서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네 음절의 높은음이 두 소절씩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울음소리를 내는 이 새의 이름은 무얼까. 소쩍새도 아니고 뻐꾸기도 아니다. 남석 씨에게 물어본다.


“홀딱벗구 새라고 하데요. 들어 보세요. 홀딱 벗구, 홀딱 벗구 하는 것 같지 않아요?”

참 우스운 새 이름이다. 그렇게 들어서 그런지 정말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하는 것 같다.

“서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에도 더워서 홀딱 벗고 잔다면서요?”

“에이 싱거운 소리 그만 하구 자세요.”

윗목에 누운 근숙 씨가 핀잔을 주자 남석 씨는 ‘그럴까’하며 베개를 고쳐 벤다.

방구들이 뜨뜻해진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살만하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여전히 홀딱 벗고 새가 울고 비닐 밖 서쪽 하늘이 아직 불그스레하다.(1992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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