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징어잡이 배 장원호 승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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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부터 저동항은 몹시 부산스럽다. 야간조업을 마친 오징어 배들이 앞을 다투며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선착장에 바짝 붙어 있는 어업협동조합 위탁판매장 앞에 배를 댄 어부들은 열심히 오징어 상자를 내린다. 선착장에서 서성이며 배를 기다리던 어부의 아내들도 상자 내리는 일을 거든다. 갈매기들도 그 주변을 날며 끼룩끼룩 수선을 떤다.
배에서 내려진 오징어는 중개인에 의해 그 자리에서 경매에 부쳐진다. 싱싱하고 알이 굵은 상품_上品 한 상자(20 마리)에 1만 4천 원에 매매된다. 초저녁에 잡아 물이 가기 시작하는 오징어는 1만 원에 매매된다.
울릉도 연근해에서 당일바리로 잡아 오는 오징어들은 거의 마른오징어로 가공된다. 시장 어물전에서 볼 수 있는 물오징어는 대부분 원양어선에 의해 잡힌 냉동 오징어로 보면 된다.
상인들이 사들인 오징어는 바로 옆의 작업장으로 옮겨져 부인들에 의해 즉시 할복된다. 몸체를 가르고 창자를 빼는 손놀림이 매우 빠르다. 바다에서 잡아 올린 오징어는 가능한 한 빨리 할복해야 선도를 유지한 채 건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복이 끝난 오징어들은 바닷물로 씻는다. 작업장에는 깨끗한 바닷물이 나오는 수도관이 여러 개 있지만 물량이 워낙 한꺼번에 밀어닥칠 때는 모자란다. 수도관을 독점하려다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세척된 오징어는 대나무 꼬챙이에 스무 마리씩 꿰어져서 경운기를 개조한 차에 실려 각 가정의 건조대로 옮겨진다. 위판장 옥상의 건조대로 옮겨지는 것들도 있다.
위판장 옥상의 건조대에는 벌써 오징어들이 널려져 있다. 부인들이 거기서 오징어의 다리가 서로 붙지 않게 떼어준다든지 귀가 몸체에 붙지 않게 펴준다든지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잘 말려진 오징어의 도매시세는 보통 한 축에 2만 원 정도라고 한다.
어느새 해가 떠오른다. 눈부신 바다를 등지고 오징어 배들이 계속 앞을 다투며 부두로 돌아온다. 이미 선착장에 도착한 배들은 빈자리만 생기면 서로 밀치면서 배를 댄다. 오징어 상자가 내려지고 상인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동트기 전보다 훨씬 활기차다.
이런 야단법석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들이 들어오는 먼바다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부인도 있다. 햇빛이 눈에 부셔 손을 이마에 대고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는 틀림없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어부의 아내다.
어째서 늦을까, 배가 고장이라도 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조바심치는 표정이던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진다. 남편이 탄 배를 발견한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막 방파제를 돌아 들어온 배, 해를 등진 뱃머리에 서서 밧줄을 들고 있던 어부의 실루엣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얼마나 정든 모습이면 실루엣만으로도 남편을 알아볼까.
배가 가까이 오고 눈길이 마주쳤지만, 그들은 무덤덤하다. 손을 흔든다든지, 반갑다고 소리 지른다든지 하지 않는다. 호들갑을 떨면 불길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그녀는 다만 남편이 오징어 상자 내리는 일을 묵묵히 도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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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지나자, 부두는 한산해진다. 귀항 중에 고장이 났거나 제법 멀리 나가서 늦게까지 조업했던 배들도 거의 다 들어온 것이다. 그래도 할복하는 부인들과 건조장에 올라간 부인들의 일손은 여전히 바쁘다.
크고 오래된 정자나무가 있는 부둣가 공원에 가본다. 매미, 쓰르라미가 눈부시게 울어 마치 한적한 농촌에 온 것 같다. 어부들 몇이 정자나무 그늘의 긴 의자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고 그 반대편 그늘에는 막걸리를 마시는 젊은 어부들도 있다.
이들은 울릉도 사람이 아니라 고성군 거진읍 사람들이다. 몇 해 전부터 오징어 철이면 울릉도로 건너와 오징어 배를 타노라고 한다. 이들뿐 아니라 약 6백 척에 가까운 울릉도 오징어 배의 어부들은 대부분 부산, 포항, 묵호 등 육지의 동해안 사람들이라고 한다. 선장이나 선주 그리고 선원의 일부만 울릉도 주민인 셈이다.
긴 의자에서 잠자던 어부 한 사람이 깨어나 막걸리판에 끼어든다. 약 20년 전에도 오징어 배를 탄 일이 있다는 이 늙수그레한 어부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는 옛날 경험을 들려준다.
"세월이 좋아졌지, 좋아졌어. 내가 처음 탄 배는 목선이요, 기관만 쇳덩어리였소. 화장일을 맡았어요. 밥 하는 일 말이오. 그때 가스가 어디 있어요. 장작을 때서 밥 했다고요. 이 배가 어찌나 기관 고장이 자주 나는지 툭하면 뱃머리에 올라가 러닝셔츠를 벗어서 흔들었어요. 그렇지요. 구조 요청이지요. 그래도 그런 배로 원양도 나갔어요. 대회티라고 아주 멀어요. 그런 데서 한 달씩 있다가 육지에 오면 흙투성이가 되도록 땅에서 뒹굴고 싶어 져요."
좀 더 긴 사연이 있을 법하여 한 잔 더 권했으나 이 늙은 어부는 한사코 사양하다가 일찍 자리를 뜬다. 조용한 곳을 찾아 한숨 더 자려는 눈치다. 그가 멀리 가자, 젊은 어부가 한마디 거든다.
"저 양반 요즘 술 잘 안 먹데. 작년만 해도 길바닥에 누워서 오줌 싸질러 놓고 자는 꼴을 여러 번 봤는데, 새색시 얻었나…."
"거 정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요즘에는 술 먹는 사람 정말 보기 힘들어, 하긴 술 인심도 그만큼 각박해졌지만 말이야."
"어이, 우리도 인제 한숨 자자고, 밤에 졸지 말고 말이야."
"그러자고."
젊은 어부들은 정자나무 그늘에 길게 눕는다. 두어 시간 후에 오징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참인 나그네도 배낭을 베고 그들 곁에 눕는다. 매미, 쓰르라미의 울음소리가 새삼스럽게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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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가 채 못되어서 장원호는 출항 준비를 마쳤다. 사무장 김태욱(41세) 씨가 어선 통제소에 입출항 신고서를 제출하러 간 동안 선장 김철남(33세) 씨는 선원들과 함께 기관과 장비를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장원호는 28톤급, 연근해 채 낚기 어선 중에서는 대형이다. 30톤이 넘으면 1개월씩 원양을 다니기도 하는 원양 채 낚기 어선으로 분류된다. 장원호는 각종 첨단 장비를 다 갖추고 있다.
짙은 안갯속에서도 배의 위치와 목적지를 찾아낼 수 있는 레이더와 항법 장치, 조류를 따라 움직이는 어군탐지기, 울릉도의 무선국이나 인근 어선들과 육성으로 송수신할 수 있는 라디오 송수신기, 그리고 자동으로 오징어를 채 올리는 일본제 조상기도 4대나 갖추고 있다.
사무장 김 씨가 경찰과 함께 온다. 경찰 입회하에 승선인 명부에 등재된 인원과 실제 승선한 인원 14명을 일일이 대조한다. 각종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인원 확인이 끝나자, 선원 두 사람이 각각 부두의 말뚝에 매어진 굵은 밧줄들을 푼다. 시동을 걸어두었던 엔진이 힘차게 돌아간다. 배 주변을 맴돌던 갈매기들이 놀라 끼룩끼룩 소리 내며 날아오른다.
방파제 밖으로 빠져나온 장원호는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리고 속력을 올린다. 좋은 날씨다. 바람은 부드럽고 파도는 잔잔하다. 어부들은 슬슬 선실에 내려가 잠을 잔다. 밤새도록 조업하려면 잠을 충분히 자 두어야 한다. 갑판에 기대어 어구를 손질하는 어부들의 표정은 숙연하다. 장난치며 무어라고 떠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해는 큰 바다다. 태평양의 파도가 밀려오는 곳이라서 울릉도 근해라 할지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언제 기상이 변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이기에 그들의 표정에는 불안과 함께 숙연함이 비친다.
어둑해질 무렵, 그러니까 약 2시간의 항해 끝에 선장은 어장에 왔음을 알린다. 선장실의 어군탐지기에 오징어 떼가 포착된 것이다. 선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보통 '물풍'이라고 부르는 물닻을 내린다. 거대한 낙하산처럼 생긴 이 물닻은 배를 조류 위에서 안정시키는 구실을 한다.
물닻이 내려지자, 선장은 발전기를 돌려 집어등을 켠다. 갑판에 세로로 두 줄씩 늘어선 집어등은 모두 1백 개. 갑판이 대낮처럼 밝아진다. 등 가까이 가면 거기서 나오는 열로 몸이 후끈후끈해진다. 오래 쬐면 햇볕을 쬘 때처럼 얼굴이 검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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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등 불빛 아래서 어부들은 각자의 어구를 뱃전에 설치한다. 오징어 배에는 세 종류의 어구가 있다. 보통 '산자꾸'라고 부르는 것은 한 개의 추에 약 20개의 오징어 낚시를 줄줄이 매단 40~80미터 길이의 줄을 바다에 던진 후 손으로 잡아채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여기서 좀 발전한 것이 물레다. 줄을 손으로 잡아채는 것을 물레가 도와준다. 그러나 물레도 줄을 풀고 감는 일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기계 혼자 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가 이른바 조상기이다. 장원호의 후미에는 이 조상기 네 대가 저 혼자 작동한다.
낚싯바늘도 세 종류가 있다. 산자꾸 낚시는 형광 물질을 입힌 큰 멸치 크기의 대(미끼 구실을 한다) 끝에 날카로운 낚싯바늘을 우산 살처럼 촘촘하게 박아 넣었다. 대에 공기를 주입하여 곧추서게 만든 공기 낚시도 바늘을 박아 넣은 모양은 같다. 또 조상기나 물레에서 쓰는 롤러 낚시는 대를 짧고 둥글게 만들어 기계가 줄을 감고 풀 때 걸리적거리지 않게 했다.
이렇듯 세 종류의 낚시를 뱃전에 설치한 어부들은 각자의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들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한다. 군용 반합에 밥을 싸 온 어부도 있다. 시험 작업에서 잡힌 오징어 몇 마리는 즉석에서 회가 된다. 나무젓가락 반토막 굵기로 썰어진 오징어회가 쫄깃하면서도 달다. 됫병 소주의 마개도 땄으나 다섯 홉 정도가 남겨진 채 뚜껑이 닫힌다. 술을 마시면 졸음이 온다고 다들 삼가는 눈치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물레 낚싯대를 잡은 어부는 오직 물레질에만 열중하고, 산 자꾸 낚시를 잡은 사람은 낚싯줄 채는 일을 반복한다.
낚시에 오징어가 걸리면 줄이 채일 때 힘이 더 가는 게 느껴진다. 섬세한 감각이라서 초보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숙달되면 몇 마리가 걸렸는지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선원 이창희(29세) 씨는 묵호 출신 총각. 18세 때부터 10년째 오징어 배를 탄다. 그가 산자꾸 낚시를 걷어 올리자 알이 굵은 오징어가 따라 올라오며 물을 쏜다. 낚싯바늘이 다리에 걸려 있다. 오징어는 갑판에 떨어진 후에도 10개의 다리를 뻗으며 물을 쏘려는 듯 퍽퍽 소리를 낸다.
금방 올라온 오징어는 검붉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빛이 어려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빨랫비누처럼 허연색으로 변해 간다.
이 씨는 다시 줄을 던진다. 묵직한 추가 달려서 꽤 멀리 반원을 그으며 바다에 떨어진다. 이때 집어등 불빛은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낚싯바늘은 물에서 튀어 올라왔다가 떨어지는 열대어들 같다. 줄이 웬만큼 가라앉자, 이 씨는 다시 줄을 채는 작업을 반복한다. 두 발을 적당히 벌리고 서서 힘차게 챈다.
사무장 김 씨는 뱃머리에서 물레질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세 해째 오징어 배를 탄다. 대구 출신인 그는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노사 문제로 퇴직한 후 머리도 식힐 겸 설악산에 가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울릉도에 간다는 바람에 따라왔다가 오징어잡이를 시작했다.
그에 의하면 오징어잡이는 대개 일시적인 직업이다. 현재 오징어잡이 어부 중에는 전교조 해직 교사도 있고, 지난해에는 휴학한 대학생 두 명이 6개월 동안 오징어를 잡아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서 돌아갔다고 한다.
그들은 얼마나 벌어갔을까? 초보자도 오징어 철 6개월을 꼬박 일하면 5백만 원 이상을 번다. 어느 10년 경력자의 경우는 작년에 1천5백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징어 배를 타는 젊은이는 그리 많지 않다. 오징어 배 어부들의 평균 연령은 50세라고 한다. 장원호의 경우는 평균 40세이지만 평균 60세가 되는 어선들도 상당수 있다는 선장 김 씨의 말이다.
한밤 내내 장원호의 갑판은 변화가 없다. 간혹 낚싯줄이 엉켜 그것을 풀 겸 담배를 피워 물고 쉬는 어부들이 있었고, 사무장 김 씨가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와 여럿이 먹은 일, 그리고 이따금 고등어나 다랑어 떼들이 배 주변을 배회하는 일 외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어부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빛이 짙어가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그네도 자꾸만 지친다. 지루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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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밤의 오징어 배를 바라볼 때가 생각난다. 도동의 한일다방 이층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수평선을 가득 메운 그 휘황한 불빛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황홀해했던가. 섬을 삥 둘러선 오징어 배들의 불빛은 섬 전체를 은성한, 야회장처럼 꾸며 주기에 충분했다.
하현달 뜬 것을 보고 선실에 내려가 눕는다. 몸 전체에 바다의 율동이 느껴진다. 깊이 잠들었다가 장원호가 운항하는 것을 느끼고서야 갑판으로 나온다. 장원호는 집어등 불을 끄고 항구를 향해 속력을 내고 있다. 어느새 조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다.
수평선에 해가 떠오른다. 이제 막 떠오르는 붉은 해를 등지고 담배를 피우는 어부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들의 발치에는 온밤을 지새운 엄숙한 노고의 대가인 오징어 상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새벽 4시부터 알이 굵은 오징어가 줄지어 올라왔다고 한다. 지난밤이 대조금 하현달이 뜬 음력 23일 밤이라 은근히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졌다고 사무장 김 씨는 말한다.
장원호 어부들은 밤 동안 모두 2백70 상자의 오징어를 잡았다. 한 상자에 스무 마리씩 들었으니 모두 5천4백 마리다.
멀리 울릉도가 보이고 뱃전에 갈매기가 날아와 끼룩 댄다. 갈매기 울음소리는 오늘따라 섬사람들의 옛날 사투리처럼 들린다.(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