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들의 군무와 아이들의 꽃배

- 태국 푸껫 섬 집시 마을의 로이가통 축제

by 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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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남쪽 섬 푸껫 근처에 집시 마을이 있다. 옛날에는 이 섬 저 섬 유랑하며 생계를 잇던 바다 집시들이 정착한 마을이다. 관광 안내 책자에도 간략하게 소개된 이 마을은 푸껫 읍에서 동쪽으로 10리 상거에 있다. 1994년 11월 중순 무렵에 나는 이 마을에서 하루를 보냈다.


마을의 아침은 강렬한 햇빛과 짙은 나무 그늘에 잠겨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보름 넘게 떠들썩한 관광지만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마주친 그 고요는 아주 생소했다. 비록 순간이었지만, 마을은 이방인의 틈입을 거부하는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나는 되도록 천천히, 그러나 어정쩡한 기분으로 마을 한가운데로 난 길고 널찍한 마당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가면 갈수록 마을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커다란 정자나무들 아래 드리운 그늘은 짙고 드넓었다. 그늘에 놓인 평상에는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뚱뚱하고 못생긴 아줌마들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해 버릴 수도 있는 여자들. 이들이 바로 이른바 ‘바다 집시 여인’ 즉 해녀였다. 바닷물 속 깊숙이 자맥질해서 잡아 온 조개의 껍질을 까는 여인, 파인애플 껍질을 벗기는 여인, 파인애플을 잘라서 보글보글 끓는 찌개에 넣는 여인도 있었다. 더러 눕고 더러 앉아 쉬는 여인도 보였다. 그녀들은 그러나 이방인의 출현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개가 지나가도 한번 바라보련만 그녀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저들의 눈에는 내가 전혀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는 투명 인간으로 이 마을에 들어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었을 때, 바다 쪽 나무 그늘에 사내 둘이 보였다. 그들은 생나무 줄기로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통발을 엮고 있었다. 그들 역시 이방인의 출현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제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스와릿돈 차우!”

나는 손바닥에 적어 온 이 고장 아침 인사말을 사내들에게 건네어 보았다. 그제야 사내들은 나를 바라보며 씽긋 웃었다. 무뚝뚝하지만 사납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사진 찍고 싶다는 시늉을 했더니 또 한 번 씽긋 웃어 보였다. 다른 반응은 없었다.

바다를 향해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집들은 통풍과 벌레의 침입을 고려했는지 모두 지상 1.5 미터 정도 높이의 누대 위에 앉혔다. 지붕과 벽은 양철판으로 막았고 빼꼼한 창문이 있으며 문 앞은 마루를 깔았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게 되어 있다.

바다에 연한 앞줄의 집들은 더욱 단순한 구조다. 거의 원두막 같다. 사방 벽은 물론 바닥으로도 통풍이 될 수 있다. 대나무를 쪼개어 잇댄 발 형태의 벽과 바닥을 통해서 채로 친 듯 곱고 서늘한 바람이 그 집안에 물결치고 있을 터였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무명 포대기로 만든 요람을 밀며 아기를 재우는 여인이 있었다.


집 뒤 해변에는 야자수들이 듬성듬성 하늘 높이 서서 큰 빗 같은 잎사귀로 솨아- 솨아- 바람을 빗질하고 있었다. 그 아래 네 여인이 있었다. 팔베개하고 모로 누운 여인, 두 팔꿈치를 땅에 괴고 엎드린 여인, 다리를 뻗은 채 야자나무 등걸에 등을 기댄 여인, 그리고 그 옆 야자나무에 기대서 무릎을 안고 있는 여인.

두 여인은 아주 뚱뚱하고, 두 여인은 그런대로 균형이 잡힌 몸매였다. 두 여인은 소매 없는 블라우스 차림이지만 다른 두 여인은 상체가 거의 드러나는 통치마 한 겹만 둘렀다. 윤기 나는 까무잡잡한 피부는 아주 건강해 보였다.

고갱이었던가. 타히티라는 섬의 여인들을 그린 프랑스 화가. 그 그림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마을 여인들과 고갱이 그린 타히티 여자들은 같은 종족인 것 같았다. 원초적 야성미를 풍기는 종족 말이다.

솨아- 솨아- 시원한 소리를 내는 바닷가 야자수 그늘에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늘어져 있는 여인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시늉을 했더니 환하게 웃었다. 꾸밈없이 넉넉하고 착한 웃음.

파도가 찰싹이는 긴 모래사장에서는 여인들이 갯지렁이를 잡고 있었다. 그녀들은 조그만 플라스틱 통과 큼직한 컵 한 개씩을 휴대했다. 플라스틱 통에는 바닷물과 함께 생선 내장이나 대가리 또는 꽁지 같은 게 들어 있었다. 파도에 모래가 씻길 때 이 비린내 나는 물을 한 줌 퍼서 모래에 끼얹으면 모래 속에서 갯지렁이가 모래알만 한 주둥이를 내밀었다. 그걸 순식간에 잡아챘다. 찰나에 나왔다 들어가는 모래알 속의 모래알 같은 갯지렁이 주둥이를 나 같은 이방인들은 분별하기조차 어려웠다.


큼직한 컵에 하나 가득 갯지렁이를 잡고 일어선 아낙네는 한 겹 통치마가 다 젖었다. 찰싹이는 파도에 젖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비 오듯 흐르는 땀에 젖어 무명 통치마 한 겹은 몸에 착 달라붙었다. 원시 시대에 풍요와 다산을 빌기 위해 흙을 빚어 만들었다는 토우(土偶) 뭴렌도르프의 나부상을 연상시키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커다란 젖가슴, 커다란 엉덩이, 커다란 배…….

그녀는 바닷가 자기 집 문 앞에 있는 커다란 물통으로 걸어가더니 큼직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쯤 그렇게 물을 뒤집어쓴 후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나서 무명 통치마 밑자락을 모아 쥐고 물을 짰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다음에는 빨랫줄에 널어 말린 통치마를 걷어입는데, 자세히 보니 그 통치마라는 것이 단순하기에 그지없다. 밑이 터진 커다란 마대 같다. 끈이나 고무줄 같은 건 아예 없다. 그걸 머리부터 뒤집어쓰고서 속에 입었던 젖은 치마를 다리 사이로 빼내어 물통 위에 걸쳐 놓고 새 치마 윗부분을 젖가슴 위로 오게 하여 잘 여몄다. 그다음으로는 빨랫줄에 걸려있던 손수건만 한 하얀색 팬티를 걷어 한 손에 말아 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방의 사내가 아까부터 자신의 목욕과 갱의를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정말 투명 인간처럼 햇빛과 그늘 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잠시 후 그녀는 밖으로 나와서 빨래를 널어놓고 식구들을 데리고 배에 올랐다. 갯지렁이를 미끼로 낚시를 나가는 것이었으리라.


배가 수평선 멀리 나아간 후 어린이 둘이 조그만 배를 타고 내게로 노 저어 왔다. 땅에서 세발자전거 타듯 바다에서 보트를 타는 아이들답게 놀라운 솜씨로 노 저어 왔다. 그런데 그 배는 보트가 아니라 그냥 애 둘이 누우면 꽉 찰 스티로폼 판에 불과했다.

다시 마을로 들어가 좀 더 어슬렁거려 보기로 했다. 마을 맨 끝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그 동산 아래에는 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이 있다. 식당 앞 공터에는 백 명쯤 드러누워도 넉넉한 그늘을 드리워 주는 아주 커다란 정자나무들이 대여섯 그루 서 있다. 그리고 군데군데 평상들이 놓여 있다. 그중 한 평상에는 두 여인이 있었다.

복날 우리나라 시골 정자나무 밑 평상에는 깡마른 노인이 목침을 베고 누웠기 십상이지만 이곳 집시 마을 평상에는 살집 좋은 집시 여인들이 늘어져 있었다. 한 여인이 다른 한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두 여인은 모두 얼굴에 땀띠 분 같은 하얀 가루를 발랐다. 무릎을 빌려 주고 앉은 여인은 누운 여인의 머리카락 속에서 이를 잡는 중이었다.

사진 찍겠다는 시늉을 하니까 씩 웃었다. 찍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으니 맘대로 하라는 뜻일 터. 가까이 찍고 멀리 찍고 요렇게 찍고 조렇게 찍어도 도무지 개의치 않았다. 그녀들 옆 땅바닥에는 개도 한 마리 늘어져 있었다. 적막한 한낮, 이방의 사내가 여자들을 흘끔거리며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의당 짖어야 마땅한 개건만 어찌 된 일인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일 년 내내 여름, 일 년 내내 오뉴월, 일 년 내내 뭐 늘어지듯 늘어지는 계절 탓인가. 개도 사람을 닮아 도무지 태평하기 짝이 없었다.


마을 어귀에서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서양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차는 그냥 한 바퀴 돌아서 나가 버렸다. 어쩌면 그들도 내가 이 마을에서 맨 처음 마주친 고요, 이방인의 틈입을 거부하는 듯한 그 완벽한 이질감 때문에 그대로 나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널찍한 마루가 깔린 공회당이 바다를 향해 자리 잡고 있었다. 마루 저쪽 끝에는 발이 아주 큰 처녀가 모로 누워 씩씩 숨을 몰아쉬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공회당 앞마당에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나무가 가장 넓고 짙은 그늘을 드리웠고 거기 큼직한 옹기 항아리들이 줄지어 엎어져 있었다. 무슨 항아리인지 궁금했지만 우선 낮잠 좀 자기로 했다.


한숨 자고 나니 오후였다. 오토바이 옆에 좌판을 단 찐빵 장수가 왔다 갔다. 역시 오토바이 옆에 좌판을 단 과자 장수도 왔다 갔다. 고무줄로 주둥이를 묶은 비닐봉지 주스를 쟁반에 담아 팔러 다니는 부인, 망고와 파인애플을 쟁반에 담아 팔러 다니는 부인도 있었다.

찐빵이나 과자 장수는 외부에서 들어왔다 나간 장사치들이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마을 부인들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부인들은 장사를 한 게 아니었다. 돈을 받고 물건을 주었지만 그건 축제 날 손수 장만한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 방법이었다.

오후 3시쯤, 공회당 마루에 무료히 앉아 있자니 건너편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서 음식을 만들던 여인 중 한 여인이 나를 손짓해 불렀다. 찌개를 끓여 놓고는 먹으라는 것이었다. 돼지고기, 생선, 고추, 감자, 그리고 파인애플을 아주 많이 잘라 넣고 끓인 잡탕찌개였다. 찌개에 파인애플이라니! 거부감이 들었지만, 오전 내내 유령 취급을 받던 나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먹어보니 맛있었다. 맛있게 먹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여인들이 즐거워했다. 잘 먹는다고, 더 먹으라고, 더 주라고 한 마디씩 떠들며 웃는 여인들. 아, 이제야 내가 인간 취급을 받는구나 싶었다.


푸껫 시내에서 노선버스가 왔다 간 오후 4시쯤, 어디선가 남정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회당 앞 옹기 항아리들을 하나씩 메고 어디론가 갔다. 아주 큰 것은 수레에 실어 가기도 했다. 용무늬가 새겨진 항아리들. 무슨 항아리일까. 항아리 속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시큼한 게 아무래도 술 냄새였다.

영어를 할 것 같은 한 사내에게 물었더니 과연 술 항아리라고 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이야기를 더듬더듬했다.

“오늘은 1년에 한 번 벌어지는 ‘로이가통 축제’가 있는 날이다. 오늘 우리는 이 항아리에 술을 담근다. 해질 때쯤 제사를 지내고, 달이 뜰 때쯤이면 댄스파티를 연다. 그리고 달이 높이 떠오르면 아이들은 소원을 빌며 바다로 꽃배를 띄운다. 여자들은 춤을 추고, 아이들은 꽃과 촛불과 향을 실은 작은 배를 달빛 바다로 띄워 보낸다. 그걸 꼭 보고 가기를 바란다.”

보우(BOW)라고 자기 이름을 말해 준 사내, 그 사내는 이따 또 만나자며 술 항아리를 안고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사라진 골목에서 한 여인이 노래를 부르며 나왔다.


“로이 로이 가통... 로이 로이 가통...”

그녀는 두 여자아이를 앞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머리에 쟁반을 이고 있었다. 쟁반에는 작고 예쁜 꽃배들이 있었다. 여인은 아이들과 함께 꽃배를 팔러 다니는 것이었다. 꽃과 초와 향이 실려 있는 작은 배. 촛불을 싣고 향을 피우며 달빛 바다를 향해 남실남실 떠나가는 꽃배. 상상만 해도 멋진 광경이었다.

해 질 무렵, 마을 끝 동산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남자들이 사각형의 제단에 삥 둘러 촛불을 밝히는 동안 여자들은 맥주와 장춘약주라는 이름의 중국 약주와 콜라 등을 양동이에 섞어 한 컵씩 음복하는 아주 단순한 절차의 제사가 끝났다. 나는 아까 만났던 보우의 집에 초대되어 그 집 물통의 물로 목욕한 뒤 저녁밥을 먹었다.


공회당 쪽에서 앰프 소리가 들릴 때 밖에 나가 보니 마을 사람들이 공회당 마루에 대형 스피커와 앰프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는 어서 춤판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가 그 축제의 유일한 이방인인 나를 손짓해 불렀다. 여기서 부르고, 저기서 부르고,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부어 주는 술.

이윽고 달이 떠올랐다. 사람 키 높이의 대형 스피커에서 귀가 먹먹할 만큼 커다란 음악이 울리고 마당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춤판을 주도하는 건 여자들 쪽이었다. 남자들은 대개 평상에서 술을 마셨다. 음악이 고조되고 율동이 빨라졌다. 원무를 도는 집시 여인들의 얼굴과 목 그리고 등에 땀이 흘렀다. 원무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덧 크고 둥근 보름달이 둥 두렷이 떠오른 바다에는 촛불이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바다로 꽃배를 띄워 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떤 꽃배는 멀리 떠나가지 못하고 파도에 밀려 되돌아오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불 꺼진 꽃배를 머위 위로 쳐들고 해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또 어떤 아이는 촛불 켠 꽃배를 조심스럽게 밀며 멀찍이 헤엄쳐 나가기도 했다.

달빛 가득한 바다. 작은 궁전처럼 촛불 밝히고 남실남실 떠나가는 꽃배들. 소원을 비는 아이들의 속삭임은 찰싹이는 파도 소리와 뒤섞이고 공회당에서는 왠지 슬프게 들려오는 앰프 소리. 마냥 그렇게 모래 위에 퍼질러 앉아 있고 싶었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두툼한 손을 얹었다. 내게 저녁밥을 준 보우의 아내였다. 그녀가 내게 그 뚱뚱한 몸을 귀엽게 흔들어 보였다. 그녀는 ‘여기서 뭐 해요? 저기 가서 춤이나 추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잠시 후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여인들의 소용돌이 같은 원무에 휩쓸렸다. (1994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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