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속에서 들려온 노래 3/4

- 1972년 봄부터 가을까지 미군 사격장 부근 목장에서 겪은 일들

by 김홍성

탄피로 지은 집과 산 동백 숲 속의 큰 구렁이

우리가 점심을 먹는 장소는 대체로 세 군데쯤 되었다. 그중 하나는 소들을 몰아넣기 좋은 억새밭 기슭의 샘가였다. 새벽밥을 먹고 나와 소를 몰고 종일 걸었으므로 점심은 늘 달았다. 기장을 섞은 흰쌀밥, 형수가 산비탈에서 직접 캔 나물 무침, 그리고 막장에다 지진 풋고추…….

항고 뚜껑으로 샘의 물을 떠 마시고, 항고를 헹구고 나서는 심심풀이로 더덕이나 당귀를 캐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속에 물이 찬 굵은 더덕을 서너 뿌리 씩 캐기도 했다. 보통은 캐자마자 씹어 먹었지만 때로는 더덕 술을 담느라 항고에 넣어 목장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동백이 우거진 너덜지대가 있었다. 너덜을 이룬 바위들 밑에서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낮잠을 자기도 좋은 곳이었다. 형은 산 동백꽃의 향은 독해서 오래 맡으면 죽는다며 말렸지만 나는 오히려 그 향이 좋아서 산 동백 꽃그늘이 바람에 일렁이는 너럭바위 위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그렇게 낮잠을 즐기던 어느 날,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문득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어떤 얼굴이었다. 금빛을 머금은 초록 바탕에 주사처럼 붉은 무늬가 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박힌 두 개의 예리하게 빛나는 눈과 마주친 극히 짧은 순간이 지난 뒤에는 내 허벅지보다 굵은 몸통이 너럭바위들 뒤로 사라지는 것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나는 그 몸통의 꼬리까지 완전히 바위틈으로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에야 멈추었던 숨을 쉴 수 있었다. 내가 숨을 멈춘 시간이 몇 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몸통이 엄청나게 길고 굵은 구렁이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너덜지대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산에서 삐져나온 바위 밑에 샘이 또 하나 있고, 그 샘에서 다시 길을 따라 숨차게 오르다 보면 억새 능선 밑에 외딴집이 있었다. 이 집의 굴뚝은 포탄 껍데기들을 연결한 것이었다. 장독대에 놓인 몇 개의 장독도 모두 포탄의 탄두 거나 껍데기였다. 지붕을 이룬 철판 쪼가리들도 모두 일종의 포탄 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펼친 것이었다.

이 같은 자재들은 모두 이 집 식구들이 민둥산 근처에서 수집하여 운반한 것들임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당시의 나보다 훨씬 어린 아들 삼 형제를 둔 내외가 이 집에서 화전도 하면서 고철을 수집하며 살았다. 장날이면 온 식구가 바랑이나 지게를 지고 장에 다녀오곤 했다. 나는 점심때 일부러 이 집까지 올라가 된장찌개나 김치를 얻어먹기도 했는데, 하루는 이 집에서 기르는 염소의 젖을 한 대접 얻어먹고 심한 설사를 하기도 했다.

아마 이 집주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산동백이 우거진 너덜지대에 사는 그 큰 구렁이는 수컷이며 본래 짝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짝은 오래전 어느 때에 그곳으로 작전을 나와 막영을 하던 일개 소대 규모의 군인들이 총으로 쏴서 죽였다. 구렁이가 어찌나 컸던지 소대용 국솥 하나로 모자라 두 개의 솥에다 나누어 삶아 먹었다고 하는데, 그날 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소대 병력의 군인들이 거의 모두 돌과 흙더미에 파묻혀 죽었다고 했다.


민둥산의 앰뷸런스와 치누크

치누크가 사격장에 날아온 날이 생각난다. 치누크는 깻망아지처럼 생겼으며 프로펠러가 앞뒤로 두 개나 달린 헬리콥터다. 커다란 트럭이나 장갑차도 쇠줄로 매달고 날아다닌다. 그날의 치누크는 앰뷸런스를 매달고 날아왔다. 흰 바탕의 원 안에 붉은 십자가를 그린 적십자 마크도 선명한 앰뷸런스였다. 치누크는 그 앰뷸런스를 여러 민둥산들 중에서 제일 왼쪽 민둥산 꼭대기에 내려놓고 돌아갔다.

우리는 그때 소를 풀어놓고 쉬면서 치누크가 하는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우리는 앰뷸런스가 거기 놓인 이유에 대해서 제각기 다른 주장을 폈으나 사격 연습의 타깃일 것이라는 누군가의 추리가 맞아떨어졌다. 치누크가 돌아간 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다른 헬리콥터들이 나타났다. 우리 소들에게 기관총을 쏴댔던 헬리콥터들과 같은 종류였다. 아연 긴장했지만 지난번처럼 우리를 향해 낮게 내려오지는 않았다. 만일 그 대여섯 대나 되는 헬리콥터들이 우리 머리 위로 낮게 내려온다면 우리 소들은 모조리 미쳐 날뛸 것이었다.

헬리콥터들은 굉음을 쏟아내며 그 민둥산 위로 날아가 앰뷸런스를 향해 기관총을 쏴댔다. 헬리콥터들이 완전히 돌아갔다고 판단된 후 나는 민둥산 위의 그 앰뷸런스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또 다른 헬리콥터들이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만류하는 형의 말도 일리가 있어 그날은 참았다. 다음 날인지, 또 그다음 날인지 나는 앰뷸런스가 있는 민둥산을 향해 올라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돌가루가 날리고 화약 냄새가 짙게 스며 있는 민둥산......, 암반이 드러난 비탈은 채석장처럼 스산했다. 형체가 뭉그러지고 납이 물고기 부레처럼 삐져나온 총알이 누군가 먼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에 눌려 있었다. 좀 더 올라가서 그 발자국을 낸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금속탐지기로 땅 속에 박힌 포탄을 탐지하기 위해 올라온 사람이었다. 그는 두 귀에 리시버를 꽂고 있었다. 탐지기에서 땅 속으로 보낸 전류가 금속에 닿을 때 나는 특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땅 속 어느 정도 깊이에 어떤 종류의 금속이 얼마나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예민하게 감지한다고 했다.

그의 생업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지만 그가 너무 열중하고 있어서 말은 못 붙여 보았다. 민둥산 위는 운동장처럼 편편했고, 앰뷸런스는 그 가장자리의 벼랑 옆에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애당초 바퀴도 엔진도 운전대도 없는 껍데기 앰뷸런스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총알구멍으로 벌집이 되어 있었다. 지붕과 엔진 덮개를 비롯한 사방의 적십자 마크는 총알구멍이 더욱 촘촘하게 뚫려 있었다.

아무리 쓸모없는 차 껍데기라고는 하지만 선명한 붉은 십자가를 향해 기관총을 갈긴 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들인지 궁금했다. 나는 우리 소들을 향해 기관총으로 공포탄을 쏘아 대며 낄낄거리던 놈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적개심이나 증오는 물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일상적으로 하는 연습처럼 장난 삼아 실전에 임하는 자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내 꿈에는 우리 소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며 낄낄대는 미친놈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오곤 했다. 꿈에서 그들이 쏘는 기관총은 공포탄이 아니라 실탄이었고, 실탄인 줄 알았는데 공포탄이기도 했다. 우리 목장 종우소들이 헬리콥터들이 쏴대는 실탄을 맞고서 옆구리가 열십자로 터지더니 거기에 붉은 선지가 맺히는 꿈도 꾸었다. 내 손에도 기관총이 들려 있었고, 이제 가까이 온 헬리콥터를 향해 사격을 해야 하는데 총알이 나가지 않아 낭패하여 어쩔 줄 모르다 꿈에서 깨기도 했다.


모포부대

대규모 기동훈련에는 비행기뿐 아니라 자주포나 탱크 또는 장갑차까지 왔다. 또한 포병들과 보병들이 따라왔다. 그들은 덕재 고개 남쪽에 진을 쳤다. 그들 병력들이 진을 치기도 전에 무슨 레지스탕스나 첩보원처럼 나타나는 민간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미군들을 직접 상대하면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이었다. 미군 헌병들은 이들이 진지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모포부대라 불리는 사람들을 철저히 단속했다. 모포 부대는 남녀혼성조직이었다. 보통 여자 한두 명에 남자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남자는 미군들에게 대마초나 환각제를 팔았다. 여자는 성을 팔았다.

미군 헌병은 이들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사격장으로 올라오는 고개를 지프를 타고 다니며 순찰하다가 이들을 발견하면 지프에 태워 고개 밑에다 내려놓고 다시는 접근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만일 다시 접근하면 곧장 우리나라 경찰에 인계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그러나 그들 모포부대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생업은 법이나 윤리보다도 신성한 것이었다. 그들은 굽이굽이 이어진 고개 길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서 올라왔다.

내가 그 길 초입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는 방금 산에서 내려온 미군 헌병의 지프가 내려놓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지름길로 안내했다. 지름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로 땔나무꾼이나 나물꾼들이 다니는 길이었다. 그 길은 가끔 가팔라졌다. 최소한 사십은 넘었을 약간 뚱뚱한 여자는 쉴 때마다 손목에 질끈 묶은 노란 손수건을 풀어 굵은 목에 흐르는 비지땀을 훔쳤다. 여자를 끌다시피 하면서 내 뒤를 따라온 남자는 깡마르고 눈매가 사나웠다. 그리고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였다.

우리는 떡갈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그들은 의정부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이 주로 가는 사격장은 전곡 쪽에 있으며, 덕재 사격장은 그날이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다른 팀들은 주로 이 길을 이용하며 이미 미군들의 진지 가까이 접근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다른 팀들이 이런 지름길이 있다는 정보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분개하기도 했다.


비 맞으며 줄 서 있는 미군들

대규모 기동훈련이 여러 날 계속되던 어느 날 비가 몹시 내렸다. 사격장 출입은 통제되어 있었고 소들은 목장 옆에 조성한 목초 밭에 풀었기에 목동 두 사람이 각각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과 사격장 넘어가는 길목을 지켰다. 나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소들을 지켰다. 판초 우의를 걸치고 바위 처마 밑에 혼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노라니 무료한 가운데 처량한 생각도 들었다.

소들은 찬비 맞는 등에 더운 김을 피워 올리며 열심히 풀을 뜯어먹었다. 빗소리와 도랑을 흐르며 모래를 굴리는 물소리 속에서 이따금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풀숲에는 노란 산 나리꽃이 고개를 숙인 채 비를 맞고 있었다. 내 발 밑에는 개미들이 열을 지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기도 했다.

산중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 점심때가 되자 박 씨가 교대해 주러 왔다. 나는 목장으로 올라가 점심을 먹는 대신 여우 고개 주막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기로 작정하고 마을로 내려갔다. 박 씨는 나더러 돌아올 때 막걸리 반말과 담배 한 보루를 사 오라며 안주머니에서 비닐 주머니를 꺼냈다. 비닐 주머니 속에는 담뱃갑이 있었고 돈은 담뱃갑 속에 돌돌 말려서 끼워져 있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가 저만치 외딴집 마당에 낯선 남녀들이 있었다. 그 집은 고철을 주워 생계를 잇는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다. 사람이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는 집이어서 낯선 남녀들이 서성이는 게 눈에 뜨인 것이다. 혹시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을 뿐 그들이 바로 모포 부대일 거라는 생각은 못 해 봤다.

한 손에 막걸리 반말을 들고, 판초 우의 속 겨드랑이에는 담배 한 보루를 끼고 목장으로 돌아오는 진흙길 위에는 여전히 빗방울이 세차게 튕기고 있었다. 사위가 컴컴했지만 그것은 밤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늘에 드리운 검은 비구름 때문이었다. 산모퉁이를 에돌자 저만치 외딴집이 나타났는데, 아래위 두 개의 방문 앞에 두 줄로 늘어선 수 십 명의 미군들이 보였다.

줄 서 있는 미군들은 판초 우의를 쓰고 비를 줄줄 맞고 있다가는 한 명씩 방에 들어갔다. 한 사람이 나오면 또 한 사람이 들어갔다. 들어갔다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 오두막에 무슨 볼 일이 있는지가 의아하여 한참 바라보았지만 짐작이 안 갔다. 그러다가 생각났다. 내가 내려올 때 그 오두막 앞에서 서성이던 남녀들, 그리고 며칠 전에 산 밑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올라온 남녀. 그 둘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모포부대! 모포부대가 임시로 세를 내어 성매매 업소로 이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미군들이 늘어선 줄은 길어지면 길어졌지 전혀 줄어드는 기미가 안 보였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한 여성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미군을 계속해서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 의문을 목장에 돌아와 목동끼리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에서 제기했다. 의문은 윤 씨에 의해서 풀렸다. 윤 씨에 의하면, 그런 경우에는 배 위에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 손에 콩기름을 바르고 앉아서 펌프질을 해주는데, 바쁠 때는 미군 두 놈을 양쪽에 눕혀 놓고 양손으로 동시에 펌프질을 한다고 했다.

윤 씨는 또 미군 중에는 이상한 놈들도 많다면서 어떤 놈은 사정하기 직전에 '마미'를 찾는다고도 했다. 마미? 마미는 엄마 아닌가? 어쩌면 애인 이름이 마미일지도 몰랐다. 나는 지난번에 산 밑에서 같이 올라왔던 모포부대의 늙은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그때 박 씨가 윤 씨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윤 씨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씩 웃고는 막걸리 사발을 들었다. <계속>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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