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에 여기서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와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 한탄강에 놓여 있는 철근 콘크리트 잠수교를 우리는 아우라지 다리라고 불렀다. 오늘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 보니 아우라지로 접근하는 도로는 보이는데, 거기에 놓였던 잠수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1킬로미터 하류에 궁신교라는 새로 생긴 교량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아우라지 다리는 영원히 잠수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지도에서 궁신교는 인근 병영을 거쳐 가는 병사들이 자살 바위라고 불렀던, 홀로 우뚝 솟아 한탄강을 내려다보는 바위 봉우리 옆에서 강 건너 신답리 공병대대 쪽으로 이어져 있다. 네이버 지도에는 자살 바위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근처에 '리버사이드 모텔'이 표시되어 있다. 내가 공병대대 본부 중대에서 졸병 생활을 하던 당시에는 고압선이 강을 건너가고 있었을 뿐 자살 바위 일대에는 다른 아무런 시설도 없는 들판이었다.
한탄강은 철원 북방에서 깊은 협곡을 이루며 뱀이 기는 것처럼 구불구불 남서쪽으로 흘러오다가 전곡을 지나 임진강에 합류하는 강인데 포천 땅의 영평천이 흘러와서 한탄강에 합수하는 지점의 지명이 아우라지이다. 다리는 거기서 1백 미터쯤 하류에 놓여 있었기에 마을에서도 아우라지 다리라고 불렀다.
나는 아우라지 다리가 아직도 거기 있는지 다음에 혹시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확인해 볼 작정이다. 그러나 일부러 찾아가서 확인해 볼 생각은 없다. 있거나 없거나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 아닌가? 내가 그 다리를 건너다니던 시절은 40여 년 전이지만 아우라지 주변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군 복무 중에 거기서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 한 번은 벼락에 감전되어 실신했었다. 그때 나는 사단 각 예하 부대에 무연탄을 보급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날은 밤부터 폭우가 내려서 전날 저녁에 타다 놓은 식은 짬밥을 꼭두새벽에 먹고 판초 우의를 뒤집어쓴 채 길을 나섰다. 그날 나는 의정부에 있는 군수 지원사령부 산하의 대광리역 저탄장에 가서 철책 부근 연대에서 온 트럭에 무연탄을 실어 줄 수 있도록 불출증을 끊어 줘야만 했다. 사단 예하 부대 전체에 비상이 걸린 상태여서 작업모 위에 철모를 쓰고 판초 우의 겉에 탄띠를 둘렀으며 총은 총신이 땅으로 향하도록 거꾸로 메고 아우라지 다리로 가는 비탈길을 내려갔다.
아우라지 다리는 잠수교여서 장마철에 물이 불어나면 물속에 잠겼다. 난간이 없었다. 난간을 설치하면 장마철에 떠내려오는 묵직한 통나무 등에 의해 난간이 부서지거나, 난간에 걸려서 거센 물살의 하중이 다리를 떠밀어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높이 20cm 정도의 정육면체에 가까운 시멘트 돌출물들을 교판 가장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돌출물들도 물에 쓸려 오는 물체에 부딪쳐서 성한 것이 드물었다. 그러나 이 돌출물들이 최소한의 난간 구실을 하기는 했던 것 같다. 잠수교의 폭은 대형 트럭이 돌출물들을 건드리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정도, 길이는 약 50미터 정도였다고 기억된다.
잠수교가 놓인 지점의 양안은 모두 경사가 급한 비탈길이었다. 장마철에 도로가 젖으면 차바퀴가 헛돌았다. 겨울에 눈이 쌓이고 녹을 때도 차량 통행이 어려웠다.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이 잠수교와 주변 도로는 인근 군부대 병력에 의해서 늘 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정비 되어야만 했다. 신답리 들판에 자리 잡은 우리 공병대대에서 사단 사령부로 가는 지름길은 이 잠수교를 건너는 길이었다. 또한 신답리 쪽에서 버스터미널이 있는 전곡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뿌연 물안개가 퍼지는 폭우를 맞으며 아우라지 다리를 건너 궁평리 쪽 비탈을 오르는데, 길을 타고 쓸어 내려오는 물이 점점 많아진다 싶을 때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겁이 났다. 나는 철모를 썼을망정 총을 거꾸로 메고 있으니, 나에게 벼락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비탈 위에 떨어진 벼락이 물길을 타고 내려와 총구가 땅을 향해 있는 내 총신을 때려버렸다. 앗 하는 순간에 나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참 후에야 나는 천둥소리를 들었고, 이어서 내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을 느끼며 깨어났다.
시간 계산을 해 보니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은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 그 비탈에 쓰러져 있었던 것 같다. 물길을 타고 내려오면서 흩어지는 벼락에 감전되었기에 죽지는 않았다. 총도 멀쩡했다. 영영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잠시 넘어졌던 사람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길을 걸었다.
궁평리에 가서 버스를 탔으며, 전곡에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대광리역의 저탄장에 갔다. 군수 지원 사령부에서 저탄장에 파견 나와 있던 선임 하사에게 내가 벼락을 맞고 기절하는 바람에 한 시간 이상 늦었다고 말했더니 그는 내가 변명하는 줄 알고 웃었다. ‘벼락 맞았으면 뒈져야지 어떻게 살아났느냐’라는 것이었다.
비는 그쳤고 철책 쪽 연대에서 속속 도착하는 트럭들은 무연탄을 퍼담아 싣고 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훈장을 받았어야 마땅했다. 벼락을 맞고 쓰러졌음에도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기에 벌떡 일어나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아무도 내가 벼락 맞는 걸 보지 못했으니, 소용이 없었다.
2
두 번째 죽을 뻔한 사건은 병장이 된 겨울 혹한기에 일어났다. 간이 커져서 저녁 점호를 마치면 혼자 궁평리 마을 가게에 나가서 전화도 하고 호빵도 사 먹고 소주를 마시면서 부대로 돌아온 일이 몇 번 있었다. 신통한 안주도 없이, 걸으면서 병째 들고 급히 마신 술이어서 아우라지 다리가 저 밑에 보일 때쯤이면 취기가 올랐다.
고요한 밤에 혼자 아우라지 다리를 건너자면 다리 바로 밑으로 큰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무섭기도 했다. 나는 동행이 있기나 한 듯이 큰 소리로 이 새끼 저 새끼 욕도 하고 군가를 부르기도 했다.
아우라지 다리 중간에 하류 쪽을 보고 걸터앉아 멀리 있는 여울에서 섬세하게 부서지는 달빛을 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달빛이 부서지는 여울의 물소리는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처럼 들렸다. 여울 아래 딴 세상이 있고, 그 세상 아이들이 철없이 놀고 있다는 상상도 했었다. 그러다 아이들 엄마다 싶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사고가 난 날은 혹한기 야영 훈련을 마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이날은 낮에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저녁이 되면서 찬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입이 얼고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그래도 소주 생각이 간절했다. 두 손으로 시린 귀를 감싸고 걷는 중에 구멍가게 앞에서 소주병들을 잔뜩 안고 나오는 사람을 만났다. 우리 부대에서 방위 근무를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낮에 한탄강에서 동면 중인 개구리를 한 양동이나 잡아다가 튀김을 하고 있으니 몸보신할 겸 한잔하자고 붙들었다.
그를 따라 어떤 허름한 집에 들어갔다. 들어갈 때만 해도 딱 한 마리에 딱 한 잔만 마실 각오였다. 그러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불룩한 배가 툭 툭 터진 개구리튀김 앞에 둘러앉은 동네 사람들이 한 잔씩 권하는 대로 받아 마시다 보니 여러 잔 마셨고, 얻어먹고 그냥 나오기가 미안하여 나도 가게에 가서 술병을 안아다 놓았다. 그러고 그냥 나왔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또 앉아서 마셨다. 점호는 이미 끝났을 테고, 주번 사관에게는 병영 외곽에 보초 서러 나간 것으로 보고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얼큰해질 때까지 마시고 일어섰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서서 걷자니 잠시 휘청했다. 그러나 밖에 나와 찬바람에 휩싸이자, 정신이 또렷해졌다. 하늘에 총총 박혀 있는 별들이 아우라지 가는 길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장갑을 꼈는데도 시린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웅크린 채 걷다가 귀가 시리면 다시 귀를 감싸기도 했다. 북두칠성 아래 한탄강 건너편 공제 선이 보이고 그 밑으로 뚝 떨어진 강물이 허옇게 드러났다. 전에 벼락에 감전되어 쓰러졌던 비탈길을 내려가서 아우라지 다리로 접어드는 사이에 다시 취기가 올라왔다.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취기였다. 그러나 다리 가운데쯤에서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사내 때문에 아연 긴장했다.
키가 나보다 한 뼘씩은 더 커 보이는 그들은 다리 가운데 장승처럼 딱 버티고 서 있었다. 군인 복장이었는데 모자부터 허리까지 위장망 같은 것을 얼기설기 걸치고 있었다. 서해안에 침투한 간첩들이 북쪽으로 도주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때여서 도피로를 차단하기 위해 매복 나왔다가 돌아가는 다른 부대 병사들이라고 생각했다. '수고하십니다' 하고 지나가려는 순간 그들은 나를 잡아챘다. 한 놈은 내 목을 감고 다른 한 놈은 내 다리를 잡아서 번쩍 들었는데 동작이 어찌나 빠르고 힘은 얼마나 완강한지 꼼짝달싹할 수 없이 제압되었다. 너무 놀라서 악 소리도 못 질렀다.
혹한기에는 아우라지 다리 주변의 강물이 꽁꽁 언다. 그러나 물살이 센 교각 부근에는 소용돌이가 일어서 얼음이 얼지 않았다. 거기만 얼지 않아서 큼직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나를 거꾸로 들어서 그 구멍에다 욱여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3
얼음장이 워낙 두꺼워서 박치기는 헛지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지쳤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얼음장 밑을 흐르는 강물을 따라 얼마간 떠내려간 듯하다. 그러다가 얼음이 얇아지는 여울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어서 단말마의 힘으로 뿌드득 일어섰을 것이다.
내 기억은 박치기 중에 끊어졌다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면서 자갈밭으로 기어오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나는 자갈밭에 기어 올라가 털썩 주저앉아서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좀 고르고 나니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괴기영화에 자주 나오는 그 ‘위위위위잉’ 하는 소리는 내 머리 위 하늘에 아득하게 걸린 기다란 고압선을 스치는 바람 소리였다. 초승달이었을까, 그믐달이었을까. 어쨌든 찢어질 듯이 웃는 냉혹한 마귀의 입 같은 달이 하늘에 있었다. 달이 나를 놀리고, 바람 소리는 겁을 주는 상황에서 나는 와들와들 개 떨듯 떨었다.
앞을 보니 여울물이 소리 내며 흐르고 있었다. ‘이 인간’은 방금 얼음장 밑을 떠내려오다가 그 여울에 이르러 얇아진 얼음을 깨고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 이렇게 앉아 있다가는 얼어 죽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인간은 일어서야 했다. 일어서서 걸어야 했다. 여울을 건너고 비탈길을 올라야 했다. 그런데 일어서지지 않았다. 잠시 앉아 있는 사이에 물속에서 물을 줄줄 흘리며 나온 바지가, 그러니까 이 인간의 두 다리와 엉덩이가, 자갈밭에 딱 얼어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털실로 짠 두꺼운 동 내의를 입었기 때문에 체온이 바지를 녹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추위가 그토록 혹독했다는 얘기다. 얼어붙은 자갈밭에서 떼기 좋게 돌출된 돌멩이 한 개를 간신히 떼어낸 다음 그것으로 얼어서 딱 달라붙은 엉덩이 밑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조금씩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일어났더니 온몸이 다시 와들와들 떨렸다. 이가 딱딱 마주쳤다. 입이 얼고, 손이 시리고 귀 시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개 떨듯 떨면서 나는 악을 써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시팔 조팔 하는 쌍욕만 나왔다.
야! 이 개 시팔놈들아, 야 이 개 조카튼 새끼들아, 니기미 시팔 개 조카튼 .....
남들은 다 자는 거룩하고 고요한 밤에 강물이 밀어서 강 가운데 생긴 몇 평 안 되는 자갈밭에서 그 인간은 그렇게 욕을 해 대면서 몸에 열을 낸 후 여울로 내려섰는데, 그 앞에 흐르는 물의 깊이를 몰라서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딜 수가 없었다. 방금 그 물에서 죽을 뻔했다가 살아 나온 자가 다시 그 물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뒷걸음으로 원위치. 와들와들 떨면서 다시 쌍욕 내지르기. 쌍욕 시리즈를 백 번도 더 내질렀을 때쯤에 분명히 사람이다 싶은 그림자가 건너편에 나타났다. 살려 달라고 도와 달라고 애걸복걸했는데도 그 그림자는 그냥 우두커니 섰다가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는 악이 바쳐서 소리를 질렀다.
야, 이 개새끼야 니가 사람이냐 야, 이 시발눔아 사람이 사람 놔두고 그냥 가냐 야, 이 개새끼야 야, 이 개 쌍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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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나룻배만 한 자갈 섬에 표류하여 오도 가도 못하고 개 떨듯 떨다가 동태가 되느니 눈앞의 여울을 건너보기라도 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악을 써서 욕을 해 대는 중에 오기가 발동했다. 오기의 힘으로 한 발 담그기도 무서웠던 여울물에 두 발을 다 담갔을 때 물은 오히려 따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서 깊을 것이라고 여겼던 곳에 이르렀을 때 또 한 번 악을 써서 오기를 불러낸 후 걸음을 옮겼다. 물의 깊이는 겨우 무릎 위를 스치는 정도였다. 물살은 빨랐다. 바닥의 조약돌들은 미끄러웠다. 이가 딱딱 마주치도록 온몸이 덜덜덜 떨렸다. 간신히 여울 건너편 땅에 도착했다. 살았다고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내무반의 페치카 옆에 가기 전까지는 아직 산 것이 아니었다.
와들와들 떨렸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아래윗니가 쉴 새 없이 딱딱 마주쳤다. 바지 무르팍이 다시 얼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욕을 해 댔다. 나를 얼음 구멍에 처넣은 놈들을 향해서, 건너편에 와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냥 돌아간 놈을 향해서, 그리고 군대 생활을 하면서 당한 온갖 수모를 향해서 욕설하면서, 욕설을 구령 삼아서 계속 뛰었다. 약 3킬로에 달하는 부대 정문까지 그렇게 욕을 해 대면서 뛰었나 보았다.
공병대대 정문 위병은 1중대 상병이었다고 했다. 상병은 저 먼 데서 누가 악을 쓰면서 부대를 향해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위병조장인 하사에게 보고했다. 하사는 다시 위병 장교인 소위에게 보고했다. 그들은 악을 쓰면서 달려온 자가 본부 중대 병장임을 확인하고 정문을 통과하도록 그냥 내버려뒀다. 위병 장교였던 1중대 신임 소위가 누구냐고 묻기는 했지만 '본부 중대 말년 병장'이라고 했더니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
내무반 불침번에 의하면 내무반에 들어서자마자 젖은 옷을 활활 벗어 던지면서 페치카 옆 침상으로 가서 걸터앉더니 덜덜덜 떨면서 군화를 벗고 바지를 벗었다. 알몸으로 모포를 여러 장 뒤집어쓰고는 덜덜덜 떨면서도 구시렁구시렁 시발 조팔 욕을 했다. 불침번이 팔다리를 주물러 줬다. 자다가 깬 몇몇이 교대로 주물렀다. 그렇게 주물러서 재웠다는데 나의 기억은 쌍욕을 구령 삼아 기계적으로 달리던 데서 끊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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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천이 흘러드는 아우라지 다리 위쪽에는 해마다 장마가 지고 나면 모래와 자갈 등 골재가 쌓였다. 우리 공병대대에서는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여 골재를 채취하고 전방 방벽 공사장으로 수송했다.
선임 병사들은 졸병 때부터 이 골재 채취 현장에 차출되어 부단히 삽질했던 터라 삽질이라면 이골이 나 있었다. 그들 선임 병사가 덤프트럭 적재함에 삽으로 퍼서 던지는 모래는 삽 모양 그대로 새처럼 날아가 적재함의 모래 위에 사뿐히 앉으며 쌓였다.
신병들 눈에 그것은 거의 신공이었다. 선임 병사들은 신병들 앞에서 그런 신공을 몇 번 보여 주고는 더 이상 삽질을 하지 않고 감독만 했다. 더러는 천렵을 나온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고기를 잡고 매운탕과 소주를 얻어먹기도 했다.
투망질의 대가 박 씨는 대체로 공병대가 작업을 끝내고 철수할 때쯤 강변에 나왔다. 그의 신공은 공병대 선임병들의 모래 한 삽 신공을 능가했다. 비록 한 손으로 던지고 한 손으로 추스르는 투망질일망정 그것은 예술이었다.
그는 오른쪽 팔이 없다. 팔꿈치 위에서 잘렸다. 오른쪽 눈은 실명했고, 오른쪽 귀는 들리지 않았다. 깡이라고 부르는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사제 폭발물이 손에서 터졌기 때문이었다.
사고가 나던 날 그는 여느 때처럼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자살바위 부근에서 떼를 지어 올라오는 누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깡의 심지에 불을 댕길 담배를 피워 물고, 오른손에는 깡을 들고 있었다. 누치 떼가 나타나면 깡의 심지에 담뱃불을 붙여서 누치 떼를 향해서 던질 만반의 태세를 갖춘 것이었다.
이윽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누치 떼가 발밑에 보이자, 그는 깡의 심지에 담뱃불을 붙였는데 그 뒤를 따라오는 더 많은 누치 떼를 보고 욕심이 나서 멈칫멈칫하다가 손에서 깡이 터졌다. 하나, 둘, 셋을 세고는 바로 던져야 하는데 욕심 때문에 수칙을 잊었다.
누치는 생김새가 잉어와 비슷하지만, 등줄기를 빼고는 전체적으로 희다. 그리고 어른 허벅지만 한 놈들이 몰려다닌다. 맛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커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어종이었다.
사고 후 몇 년 뒤부터 박씨는 깡을 포기하고 오직 투망질만 하는 어부가 되었다. 누치처럼 큰 고기는 못 잡아도 참마자 모래마자 같은 쫄깃하고 별미가 나는 어종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역을 앞둔 가을날 초저녁 달밤에 투망질 하는 그의 뒤를 따라다닌 날이 있다. 한 손일망정 그의 투망은 헛손질이 없었다. 한 눈일망정 물밑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세심하게 사려서 반만 남은 왼쪽 팔에 걸쳤다가 던지는 투망은 정확하고 신속했다.
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에 투망을 끌어당기면 달빛도 끌려왔다. 투망을 헤치면 모래마자가 퍼덕이면서 달빛을 부서트렸다. 그를 따라다니는 내 허리에는 구럭이 두 개 달려 있었다. 한 구럭에는 초고추장 단지와 소주병 몇 개, 다른 한 구럭에는 그가 잡은 물고기를 담았었다.
그는 모래톱에서 투망을 헤쳤다. 파닥이는 모래마자의 배알을 손톱으로 따서 훑어내고 비늘도 대충 벗기고는 바로 초고추장을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내가 존경을 담아 따라주는 소주를 쭉 빨아 당겼다.
6
아우라지 다리 위쪽에 '페이로다'라는 공병 장비가 파견을 나올 때가 있었다. 페이로다는 1인용 침대 넓이의 욕조 같은 삽이 달려 있어서 그것으로 강변의 모래를 퍼서 덤프트럭에 실어 주었다. 페이로다는 아무리 많은 트럭이 몰려들어도 지치지 않는 괴물이었다. 페이로다가 욕조 같은 바가지 삽으로 모래를 퍼서 트럭의 적재함에 퍽퍽 쏟아낼 때는 선임 병사들의 삽질 신공이 빛을 잃었다.
페이로다는 연료가 많이 소모되는 장비여서 여름 장마 이후 골재가 많이 퇴적되면 강변에 상주하면서 일했다. 페이로다 운전병은 공병학교 출신의 병장이었다. 그는 작업을 끝내면 소대에서 가져다주는 쌀과 부식으로 직접 취사했다. 떡밥을 묻혀서 강물 속에 교묘히 담가 놓으면 오고 가는 물고기들이 들어가 갇히는 어항을 털어서 잡어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하고, 마을에서 김치를 얻어다 먹기도 했다. 잠은 페이로다를 세워두는 약간 높직한 공터에 텐트를 치고 잤다.
어느 날 저녁에 아우라지 다리를 지나다 본 바에 의하면, 그날도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페이로다가 강변의 모래사장에 그냥 있었다. 그리고 병장이 텐트 안에서 매트리스와 담요를 어깨에 메고 나오는 게 보였다. 뭘 하려고 저러는지 보니 그는 페이로다의 바가지 삽 속에 매트리스를 깔고, 모포를 깔았다. 잠자리를 만든 게 분명하다 싶을 때 페이로다 옆에서 나타난 여자가 바가지 삽 속에 깔아둔 침구에 들어가 눕는 것이었다.
병장은 페이로다 운전대에 올라가 시동을 걸고 여자가 들어가 누운 욕조 같은 삽을 서서히 들어 공중에 올렸다. 거기서 자고 아침을 맞으면 한탄강 강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올 것이었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허공에 누워있는 여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여자의 애인인 병장은 페이로다의 시동을 껐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나와 미끄럼틀 기어오르듯이 공중 침대를 향해 타잔처럼 기어올랐다.
아아, 달밤이었다. 허공에 쳐들린 페이로다에 요람처럼 매달린 바가지 삽은 달빛에 데워지고 있었다. 페이로다 병장의 신공이 얼마나 부럽고 경탄스러웠으면 40여 년 전 그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겠는가? 그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으나 여기에 밝히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