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는다고 숨은 곳이 바로 마을 한가운데였다.
우리 5사단 사령부는 경기도 양평 부근에 있었다. 사단장은 김복동 소장이었다. 자대 훈련을 마치고 배속받은 공병대 본부 중대 내무반에 걸려 있는 사단장의 사단 훈령 제1호는 '무자비한 교육 훈련'이었다. 장교도 부사관도 사병도 모두 정기적인 유격 공수 훈련을 받았다. 사단 예하 36연대에는 공수 교육장이 따로 있었다.
태권도, 사격, 구보 능력 측정에서 부대 기준에 못 미치는 병사들은 외출 외박이 금지되었다. 우리 공병대나 이웃의 통신대 같은 사단 직할대의 구보는 주로 남한강변의 자갈투성이 비포장도로에서 이루어졌는데, 완전군장을 하고 8킬로미터를 45분 이내에 뛰어야 했다. 탈진해서 쓰러지기 싫으면 뛰기 전에 미리 군대 수저로 한 두 수저의 소금을 퍼먹어야 했다. 각 내무반에는 왕소금을 가득 담은 세숫대야가 있었다.
사격 연습은 M16 소총으로 하는 '전진무의탁 사격'을 했다. 표적은 한 사로에 세 개가 있었는데 언제 어떤 게 튀어나올지를 몰랐다. 가까이는 50미터, 멀리는 250미터, 그리고 그 중간쯤에서 갑자기 올라오는 표적. 병사들은 총을 들고 엉거주춤 서 있다가 표적 라인에서 어느 것이든 올라오는 것을 보면 일단 세 걸음을 전진하여 엎드려 쏘아야 했다.
표적은 불과 2-3초 동안만 나와 있다가 숨어 버리기 때문에 민첩하지 않으면 명중시키기가 어려웠다. 각개 병사는 모두 20발을 쏴서 18발 이상을 맞춰야 합격이었다. 불합격한 병사들은 심한 기압을 받은 후 다시 사로에 올라가야 했다.
거의 날마다 이런 고된 훈련을 하면서 40명 남짓한 소대원 전원이 합숙하는 내무 생활을 했다. 훈련보다는 내무 생활이 더 고되었다. 밥 타오고, 식기 닦고, 내무반 안팎을 청소하고, 양말 팬티라도 좀 빨 틈이 났다 싶으면 부대 내의 잡다한 일을 하는 사역을 나가야 했다.
밤에는 불침번 서고, 동초 서고, 페치카 당번하고, 고참의 라면 심부름하고, 기압 받고, 그러는 틈에 간신히 양말이며 팬티를 빨아서 널어놓으면 눈 깜작할 사이에 없어졌다. 빨래하기 귀찮은 고참이 제 것은 둘둘 말아서 아무 데나 버리고 졸병들이 빨아 넌 것을 집어다가 입었다.
나중에 1중대로 간 아우도 본부 중대에서 대기병으로 지내던 시절에는 같은 내무반에서 함께 박박 기었는데, 고참이 아우 보는 데서 지독한 수모를 주었다. 특히 두 기수 위 고참의 학대가 아주 심했다. 어떤 고참은 내무반 침상에서 강간 시범을 보인답시고 내 팔을 꺾어 엎어 놓고는 내 엉덩이에 제놈의 성기를 문질러 대기도 했다.
제대를 앞둔 자들은 단체로 외출 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침상에 누워 있는 우리들 머리 위에 오줌을 갈기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자는 척해야 했다.
이런저런 수모와 모욕을 참고 견디던 어느 일요일에는 Y가 면회를 왔는데 면회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는 PX(병영 안에 있는 매점)의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사역을 마치고 나서야 주번 사관으로부터 외출을 허락받았다. 외출증을 품에 넣고 위병소로 달려갔지만, Y는 기다리다 지쳐서 면회를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혹시나 하고 양평 버스 터미널까지 나갔다가 허탈하게 돌아온 후에는 PX에서 진을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진은 아주 독했다. 더구나 급히 마신 탓에 몹시 취해서 간이 커졌다. 새 술병을 땄다. 새 술병의 술도 급히 마셨으므로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취해버렸다.
졸병이 갈지자로 걸을 정도로 취해버렸으니, 고참들이 우글거리는 내무반으로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저탄장에 들어가 탄 더미 꼭대기에 누워 한숨 자고 났지만,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자와 작업복에 붙어 있는 계급장이며 명찰을 모조리 떼어 탄 더미 속에 파묻고, 군번도 파묻고, 고참의 라면 심부름 다니던 철조망 개구멍을 기어 나와서는 홍천 방면으로 가는 도로변 야산의 능선을 따라 걸었다.
동해가 보일 때까지 무조건 걸어 볼 작정이었다. 동해를 본 후에 뭘 어떻게 할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능선 길에서 민간인들과 몇 번 조우했지만, 그들은 계급장과 명찰이 없는 군복에 모자를 삐딱하게 제쳐 쓴 나를 탈영병이라기보다는 특수부대 요원으로 알았을 것이었다.
산길을 걷는 중에 밤이 되고, 너무나 피곤해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무덤가 잔디밭에서 다시 한숨 자고 깨니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물이 있나. 할 수 없이 산 아래로 내려갔다. 민가 외딴집 마당에 펌프가 보였다. 펌프질 소리가 나면 집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펌프 밑에 있는 대야에 조금 고인 물을 대야 째 들어서 마셨다. 문득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보였다. 순간 군복을 벗고 민간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빨래를 걷어 안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려는데 '도둑이야!' 하고 소리 지르는 여자가 있었다. 놀라서 정신없이 뛰었다. 빨래 뭉텅이는 어디다 던졌는지 모르겠고,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뛸 수도 없었다. 그때 저만치 집채만큼이나 커다란 퇴비 더미가 보였다. 그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서 잡풀 더미를 뒤집어쓰고 숨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자다가 깨니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했다. 어떤 신선한 냄새가 내 코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너무 신선하여 비릿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토마토 줄기 냄새였다. 나는 토마토 줄기 더미를 얼굴에 덮어쓰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내 삶이 아주 싱그러웠던 어린 시절에 처음 맡았던 토마토 줄기 냄새를 맡고서야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 토마토 줄기 냄새를 심호흡으로 마시고 뱉으면서 내가 처한 현실 점검을 시작했다.
총기를 들고나오지 않은 건 잘한 짓이고, 몇 놈 쏴 갈기지 않은 것도 잘한 짓이긴 한데,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일을 더 크게 만들지는 말아야겠는데 부대로 돌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때, 어둠 속 어디선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슬리퍼 같은 것을 질질 끌고 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숨어 있는 높다란 퇴비 더미 밑에서 ‘쐐 -’ 하는 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그건 분명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서 오줌 누는 소리였다.
여자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문 닫는 소리가 들린 지 얼마 안 됐는데, 내 머리 위에 있는 나무 꼭대기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그것은 볼륨을 한껏 높인 확성기에서 나오는 ‘새마을 노래’였다. 내가 기껏 들어가 숨은 그 퇴비 더미는 마을 이장 집 마당에 쌓아 놓는 공동 퇴비장이었다. 내가 숨는다고 숨은 곳이 바로 마을 한가운데였다. 마을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 전에 철수해야 했다. 퇴비 더미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어스름하게 보이는 야산을 향해 뛰었다.
하늘은 어느새 짙은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고, 별들도 빠른 동작으로 속속 철수하는 그런 새벽이었는데, 마을을 벗어나 언덕배기를 넘으니 내 눈앞에 두 줄기 철길이 빛나고 있었다. 청량리와 영주를 잇는 중앙선 철길이었다.
부대의 철조망 잎에서 보초를 서다 보면 열차가 칸칸이 불을 밝히고 달리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 열차를 보면서 나는 제임스 딘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처럼 그 기차 지붕 위에 오도카니 앉아서 서울로 향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때처럼 눈 앞에 두 줄기 철길이 새벽 여명에 반짝이고 있었다. 서쪽으로 가면 우리 부대가 있는 곳이고, 동쪽으로 가면 동해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길은 점점 뚜렷하게 보이는데,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
만일 철로를 베고 눕는 일을 선택했더라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겠지만 나도 모르게 철길을 따라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서쪽. 즉 우리 부대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렸다. 날은 점점 더 밝아 오고, 철로 변에 늘어선 사단 각 예하 부대 연병장에서는 아침 점호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힘찬 구령과 군가가 철로 변 야산 골짜기 곳곳에서 계속 울려 나왔다. 새벽 공기 속에 강렬한 파장을 일으키는 그 우렁찬 소리는 내가 밤새 뒤집어쓰고 있던 초록색 토마토 줄기만큼이나 싱그러웠다. 나는 구슬땀을 뿌리며,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