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다 어깨뼈 부러진 아들 하는 말이~

엄마! 나 할머니 볼 수 있게 됐어!

by 이작가야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캐나다학생팀 대 한국학생팀 친선 축구경기'를 하다가 쇠골이 부러졌다.

엄마가 돌아가신 해였으니까 약 5년 전쯤이다.

엄마는 손자 하나 (우리 아들), 손녀 둘 (언니 딸)을 두셨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엄마는 낮에 셋을 다 돌봐주셨다.

특히 아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았으니 그 사랑이 깊고도 깊어 정말 유난했다.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쯤 일이다.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다.


''진짜, 엄마 너무 하는 거 아냐?''

''왜 또? 무슨 일이야?''

''아니 완전... 계모도 이렇게는 안 하겠어.''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구?''

''애들이 지금 집에 왔는데... 땀이 범벅이야.

아니 신호등을 몇 개를 건너야 하는데, 무거운 수박을 들려 보내셨다니까.''






당시 엄마네 집은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였고, 언니네 집은 신호등 두 개를 건너는 거리에, 그렇게 가까이 모여 살았다. 아이들은 유치원이 끝나면 할머니네 집으로 가고 저녁에 각자 집으로 간다. 가는 길에 엄마가 반찬도 들려 보내시고... 하신다.

어느 해 여름 푹푹 찌는 찜통 같은 날 엄마가 언니 딸들에게는 무거운 수박을 들려 보내셨고, 아들에게는 참기름 살살 발라 소금 솔솔 뿌린 김을 보내신 것이다.

문제는 무거운 수박 중 우리 몫도 언니 딸이 들었고 우리 집 앞에서 아들 손에 쥐어준 것이다.

편애도 편애도 그런 편애가 또 있을 까...

착한 언니가 펄펄 뛸 때는 쌓인 게 터진 것이지 결코 처음이 아니었던 게다. 아마 까칠 나였음 쌩 난리가 나고도 남았다.






나의 아들과 나의 엄마, 그러니까 할머니 손주사랑 스토리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순애보다. 그 정도를 말하면 내가 아들에게서 샘이 날 정도고 엄마를 구박할 정도였다.

아들은 할머니 집에 갔다 오면 이랬다.


''할머니네는 우리 집 보다 반찬이 없어. ''

''무슨 반찬이 없어... 할머니 원래 많이 안 드시잖아.''

''할머니가 입맛이 없으시대.''


옆에서 듣고 있던 집사님(남편)이 또 거든다.

''장모님이 애 보시느라 힘드시니 반찬을 못하시는 거지.

두고 드실 것좀 사다 드려.

아들, 일요일에 할머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은근 약이 오른다. 엄마는 꼭 손주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사위 앞에서도 그렇다.

그렇게... 집사님과 아들은 엄마라면 그야말로 벌벌 떤다.


일요일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냉면집에 간다. 일요일엔 주로 엄마를 모시고 외식을 했다. 바람도 쏘여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장도 보고... 아들이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다닌다.


''할머니 냉면 맛있었지?''


딸 부럽지 않게 자상한 우리 아들은 할머니한테는 더 자상한 손주였다.






''엄마, 할머니네 침대 사드리면 안 돼?''

''왜? 할머니가 침대 갖고 싶으시데? 이불 깔고 주무시는 거 더 좋아하시는데?''

''할머니가 누웠다 일어나면서, 바닥에 뼈가 부딪혀서 아프다고 했어.''

''아니 그건 할머니가 맨바닥에 누워서 그렇지... 너무 말라서 그런 거야. 이불 깔면 괜찮아.''

''아닌데? 할머니가 침대에서 자면 안 아프다고 했는데.''

'아니 엄만 또 웬 침대 얘기를 애 앞에서 해. 침대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화가 난다. 엄마는 간혹 그렇게 손주를 앞세워서 내속을 뒤집는다. 착한 사위는 그 말을 들은 날, 내손을 잡아끌고 장모님 침대를 사드렸다.


잔뜩 골이 나있는 내게 아들이...

''엄마,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침대값 줄게.''


뭐 이런... 침대를 사드리고도 나는 유치원생 손주보다 철딱서니 없는 딸이 돼버렸다.






워낙 몸이 약하신 엄마가 넘어지셔서 엉덩이뼈가 부러졌다.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하는 말이 엉덩이뼈보다 더 급한 게 신장이라고 한다. 투석을 해야 할 정도로 급하단다.

엄마가 요양병원을 가게 된 건 엉덩이뼈가 부러진 그때였다.

말로만 듣던 요양병원에 우리 엄마가 가게 될 줄이야...


유치원 때 엄마, 아빠랑, 할머니 손 잡고 냉면집에도 가고 드라이브도 했던 손주는 이제 그렇게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뿐...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신 잡채밥)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병원으로 가야 한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잘 듣지도 못하는 할머니한테 쫑알쫑알거린다.

식사시간이 되니 할머니가 앉은 휠체어를 아빠랑 사이좋게 밀어드린다. 요양병원 앞 중국집에 가는 중이다.


엄마는 양장피, 탕수육, 울면, 잡채밥을 좋아하신다. 그 중 잡채밥을 제일 많이 드셨다.

손주는 탕수육에 초간장을 콕 찍어 할머니 입에 넣어드린다.

사위는 잡채에 들어있는 고기가 너무 길다고 한입 크기로 잘라드린다.

딸인 나는 두 부자가 너무 오버하는 거 같아 입을 내밀고 짜장면만 먹고 있다.


'딸인데도 엄마가 살짝 얄미운데...'


엄마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가끔은 살짝 얄밉다.

다행히 귀엽게...






5년 전 이맘 때다. 정확히는 10월 25일 저녁.

병원에서 보호자 호출이다.

늦게라도 오라니 얼마나 놀랐는지...

밤 10시 반에 약속을 했는데 11시에 의사를 만났다.

엄마에게서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동맥박리증'이다.

혈관 내부 파열로 인해 혈관벽이 찢어져 생기는 질환이란다.

문제는 언제 파열될지 모르고, 예방책도 없으며,

파열 시 그 고통이 말로 할 수없다는 것이다.


무슨 그런 괴상망측한 병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받아들이자, 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캐나다에 있는 아들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먼 땅에서 어찌할 수 없는 아들이 얼마나 슬퍼할지 생각하니 입이 안 떨어졌다.

남편은 갑자기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할머니 얼굴도 못 보니 알리자고 한다...





''아들... 잘 들어. 할머니가 갑자기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병이 생겼어... 혹시...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어.''


날벼락같은 소식을 들은 아들은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렇게 아들이 운 적은 처음이었다.


며칠 후 아들이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이제 괜찮아. 할머니가 혹시 돌아가신다 해도 천국에 가실 거니까 슬프지 않아. 나 멘털 꽉 잡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니 엄마 맘 잘 추슬러.''


아들이 어느새 커버렸다. 딸인 나를 의젓하게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아들이 어릴 때 난 몇 번 안아줬는지, 업어줬는지 기억이 안 날정도다. 그야말로 거저 키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엄마가 키운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할머니 사랑이 그럴 법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받아들이고 마음을 추스르면서 시간이 흘렀다. 엄마도 특별한 증상 없이 잘 지내시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캐나다학생팀과 한국학생팀 대 친선 축구경기를 하다가 아들이 어깨뼈가 부러졌단다.

아들은 키가 크지 않은데, 하필 아들이랑 부딪힌 녀석은 키가 2미터가 넘는 장정이었다니...


한국이었으면 바로 119에 실려가서 수술을 했을게다.

전 세계적으로 수술을 젤 많이, 잘하는 나라, 한국이다.

캐나다는 다르다.

아들이 병원에 가니... 너무 아픈데도 그냥 집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단다.


결국 한국에 와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 엄마, 이건 수술하게 돼서 하는 말인데...

어깨를 부딪혀 쓰러지면서 제일 먼저...

'와, 나 할머니 보러 한국 가겠다. 어깨뼈 잘 부러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들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좋게 좋게''






아들은 한국에 와서 무사히 수술을 받았다.

어깨에 철심을 박았다.

회복을 하는 동안 한국에서 지낸다.

요양병원에 할머니도 자주 찾아뵌다.

어깨에 깁스를 한 상태지만 다행히

회복도 잘 되고 있다.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날도 아들은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잘 보내고 있다.


그리고,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비록 어깨는 깁스를 하고 있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덕담을 나누며

맛있는 떡국을 먹는다.


''엄마, 떡국 진짜 맛있다.

역시 이여사 솜씨 쏴라 있네.''

''그렇지 좀 더 먹을래?''


아빠가 훅 들어온다.

''더 먹을 정도는 아닌데 ㅋ''


우리 집 대화다.





한참을 까르르까르르...

아침 식사가 끝났다. 그리고,

마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울리듯

핸드폰이 울린다.

언니 전화다.


''어, 새해 복 많이 받으셔.''

''엄마...

돌아가셨어...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이야.''


.....





1월 1일 설날 아침 엄마가 떠나셨다.

12월 31일 연말 망년회 하라고,

설날 아침 떡국도 먹고 오라고,

기다려주신 게다.


아침 식사도 하시고 주무시다 돌아가셨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하는 손주까지

어깨뼈는 비록 부러졌지만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게 됐으니

더 감사할 일이다.


아들은 어깨 깁스를 했으니

힘든 일은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신발정리를 담당했다.

한 손으로 집게를 들고 한시도 쉬지 않고

신발정리를 하니 조문객들 칭찬이 이어진다.


''아들 쉬엄쉬엄 해.

어깨 덧나면 큰일이야.''

''아이고 하나도 안 힘들어.

엄마, 나 다시 생각해봐도 어깨뼈 잘 부러진 거 같아.''

''으이그 그래 엄마 생각엔...

아들이랑 충돌한 그 캐나다 장정 녀석, 아무래도

할머니가 보낸 거 같아.''


어깨뼈가 부러진 일이 잘된 일이 라니...

아직도 아들은 어릴 때 할머니가 선물해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다...



ㅡ그 해 10월이 생각나는 10월에...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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