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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May 11. 2021

소고기 육수 당근 죽

생각을 한 번만 더 하면...

맛집 프로그램을 보는 중에 시선이 정지된다.

메밀 전문집이다.

'갈빗집을 하셨던 부모님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절대 음식점은 안 하겠다는 결심을 어릴 때부터 해왔다'는 젊은 주인장은 강원도 여행 중에 먹어본 '메밀' 맛에 푹 빠져 결국 메밀 국수집을 오픈했단다.


백 프로 메밀을 한 번 도정한 것과 두 번 도정한 것을 섞어 반죽을 하면 그 맛이 구수하다고 한다.


이북이 고향이신 아빠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평양냉면의 맛과 함께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메밀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메밀 맛집 주인장이 시도한 백퍼 메밀국수는 물국수와 비빔국수 두 가지가 제공이 되는데 개업 초기에 국수를 먹어본 손님 중에 많은 고객들이 '메밀국수 맛이 너무 심심하다' 혹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등등의 평을 했다고 한다. 이에 주인장은 굴하지 않고 몇 번만 더 드셔 보실 것을 권하였고 한 번 두 번 세 번 오기 시작한 손님들은 이제 찐 단골이 되어 다른 국수는 먹지 못할 정도로 중독이 되었단다.


"여보~ 저저저저저거 좀 봐. 세상에 나이도 해봐야 20대 같은데 어쩜 저렇게 똘똘할 까 믿음직스럽고 말이야.

메밀 백퍼로 맛을 내기 정말 힘든데 코로나 조용해짐 저긴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종로라는데 우린 왜 몰랐을까?"


칭찬세례를 퍼부으면서 국수를 먹어본 양 실실 웃는다.

그런데 웃음을 비집고 탁 눈에 보이는 문구...

'포장, 택배 가능'

국수는 택배가 불가능할 것이고 무슨 메뉴를 택배로 보낸다는 건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우와~ 만두전골이 택배가 된단다.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최애 메뉴 중 하나 만두다. 게다가 전골메뉴를 택배로 보내준다니...





TV에서 소개된 그 맛 그대로일까?

너무 궁금하다.

궁금증과 동시에 움직이는 손가락을 막을 새도 없이 결제 완료다.

만두 추가부터, 녹두 당면, 육수, 소고기까지 추가 주문도 가능하다.

혹시 적을지 모르니 한 개씩 추가한다.


드디어 도착한 택배박스에 진공 포장된 재료들과 조리법 안내문 한 장이 이쁘게 담겨있다.

순서에 의해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데 기대 이상의 맛이다.

육수가 어찌나 시원하고 깔끔한지 집에서 소고기 육수를 내려면 공을 들여야 하는데 세상 편하다.





배를 두드리며 맛있게 실컷 먹었는데도 소고기 육수가 꽤 많이 남아있다.

맛이 그냥저냥 보통이었으면 버렸을 텐데 도저히 버려지지가 않는다.

일단 냉장고로 고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은 뭐해먹지 하다가 메뉴가 정해지면 벌떡 일어나 행동개시다.


한 번 생각하면 아무 생각 없는 것보다는 뭐래도 보인다.

한 번 더 생각하니...


'아~~ 맛난 소고기 육수로 죽을 끓이자. 뭘 넣고 끓이면 상큼할까?'

당근이다.


하얀 찹쌀에 오렌지색 이쁜 당근을 아주 잘게 썰어 죽을 끓이면 맛있을 것 같다.

메뉴를 만들어내는 데는 선수다.

있는 재료로 휘리릭 뚝딱!


휘리릭 뚝딱이지만 정성을 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죽은 정성 없이는 정말 못 먹는 죽 된다.


소고기 육수 당근 죽!

Gooooooooooooo!



ㅡ이작가야's 소고기 육수 당근죽ㅡ

Yummy!

요리 준비!

재료 (2인분)
소고기 육수- 1l (소고기 육수 없으면 멸치 육수로~)
당근 1개
찹쌀 멥쌀 -1컵 (반씩)
대파
계란 -1개
참기름, 깨
소금 약간





Yummy!

요리 시작!

한 시간 정도 불린 쌀(찹쌀, 멥쌀 섞은 것)을 달군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삭삭 볶는다.



당근을 한 개 다 프로세서에 갈아서 착!

색깔이 너무 이쁘당!



당근과 쌀을 달달 볶다가 ~



육수와 물을 충분히 쌀이 잠기게 붓고,

센 불에서 바글바글 끓이다가~~



쌀이 퍼지면 중불로 줄여 더 충분히 끓인다.

죽이 될 때까지 ㅋㅋㅋ





미나리가 있음 딱 좋겠구만 ㅠㅠㅠ

아리마생 데스네...


색깔이라도 내게 대파를 쪼끔만 잘게 송송!





약불에서 골고루 살살 눌어붙지 않게 정성 들여 저어주는 게 포인트!





그릇에 죽을 담고 계란은 노른자를 분리해서 톡!

솔솔~~~



"어때 맛있지?"

"맛있네 뭐가 고소한데?"

"당근이쥐 당근죽인뎅 ㅋㅋㅋ뭔 맛인가 맞춰보시게."

"절대 모르지 ㅋㅋㅋ"

"물어본 내가 잘못했쥐?

어제 만두전골 먹고 남은 육수 말이야... 육수가 엄청 맛있었잖아 버리기 넘 아깝더라궁~

체에 국물만 쪼르르 밭쳐서 죽을 끓여야겠다.... 했지."

"암튼 뭐든 응용하는 건 당신이 최고야. 역시 음식도 머리야!"
"오호랏~ 웬 칭찬 바가지... 불길한 이 느낌은 뭐지?"

"음... 술이 안 깬 거지 ㅋㅋㅋ"

"우쒸!"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돌아가신 나의 엄마는 응용 여왕이셨다.

오늘처럼 죽을 만드는 건전한 응용 ㅋ은 뭐 괜찮다.


그러나...

예를 들어 물냉면을 먹을 때 엄마는 식탁에 놓인 식초 겨자만 넣지 않으시고 가끔 뭘 더 달라 신다.

"여기요... 죄송하지만 다대기(다진 양념) 있음 좀 주실 수 있을 까요?"

"다대기요? 식초 겨자만 넣으심 맛있는데요?"

식당 주인장 얼굴이 별로다.


"엄마! 꼭 다대기를 넣어야 해?"

"음식이 간이 돼야지 맹탕이잖니."


엄마 말이 맞다 그래도 다들 식초 겨자만 넣고 먹는데 엄마는 당신 입맛대로 다시 만들어 드신다.

"엄마! 주인 얼굴 좀 봐 ㅋㅋㅋ 엄마 째려보잖아 ㅋㅋㅋ"

"맛없다고 말하는 거보단 낫지 뭘 그래."


엄마 말이 맞다.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

'음식은 간이다' 


엄마 말은 늘 옳았는데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


무심코 육수를 버렸으면 참 아까울 뻔했다.


치킨을 시켜먹고 남으면 잘게 잘라 치킨카레를 만든다.

한번 더 생각을 하면 최소한 손해는 안 보는 경우가 더 많다.

한번 시켜서 두 끼를 해결하니 가성비도 최고다.

깔끔한

소고기 육수 당근 죽 

자~~~~ 알 먹었다.


음식은

추억이고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감사함이다.


그래서

음식

이야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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