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으로 이사를 한 후 삼 남매 중 막내인 남동생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병원에 근무하는 남동생은 동료들과 스케줄을 맞추어 한 달에 두세 번 휴무를 얻는다. 주로 평일에 휴무가 돌아오니 홍 집사(남편)나 내가 현업에 있을 때는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밥 한 끼를 같이 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제 우리 부부가 현업을 떠나 자유의 몸이 되니 아무 때고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지난 8월 말즈음 전원에 새로지은 주택에 입주를 한 후 맞이한 가을과 겨울에 남동생과 휴무 때마다 함께한 듯하다. 아마도 전원으로 이주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보다 후에 함께 한 시간이 훨씬 많은 듯하다.
날이 춥다가도 남동생이 오는 날은 희한하게 날이 좋다. 날이 좋으니 마당에서 불을 피울 수 있어 더 좋다.
홍 집사는 처남이 인성이 좋아 날이 좋다며 남동생이 오면 더욱더 정성스럽게 고기를 굽는다.
"미리미리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많이~~~단! 남의 복 뺏기 있기 없기 ㅋㅋㅋ"
올리브유 듬뿍 담아 마늘을 구우면 풍미가 기가 막힌다.
홍 집사가 염지한 돼지 목살은 언제 먹어도 똑같은 맛이다.
겉바속촉에 짭조름한 간이 신의 한 수에다가 고기를 워낙 잘 굽는다.
간혹 홍 집사가 휴대폰을 보고는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특히 눈치를 살살 보며 나가는 것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다는 신호다.
"아니 또 뭐유? 말 안 하고 혼자 사지 말라고 했수 안했수 으그 ㅠㅠㅠ"
"당신 깜딱 놀라게 해 줄라 한 거지! 어케 함 맞춰 볼겨?"
이거이 또 맞추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불타오른다.
"음... 알 거 같은뎅!"
며칠 전 TV를 보면서 정지 화면을 보는 듯 홍 집사의 시선 멈춤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바로...
'오로라 불멍 가루'
"우짜쥐? 나 알 것 같은데? 오로라불멍...?"
"오~~~ 딩동댕! 어케 맞췄수!"
"그니까 30년도 아니고 31년 살았으면 고정도 눈치채야쥥!"
장작과 라이터, 화로만 있으면 실컷 만끽할 수 있는 불멍이다. 예전엔 집을 떠나야만 할 수 있던 경험을 이제 집 마당에서 할 수 있으니 그게 뭐라고 행복만땅이다. 게다가 파란색, 보라색 현란한 불꽃이 눈앞에서 춤을 추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난생처음 경험한 오로라 불멍이다.
활활 타오르는 영롱한 불빛은 불꽃에 색을 입히는 '오로라 불멍 마법의 가루'덕분이다.
유해하지도 않고 심지어 고기도 구울 수 있다니 참 세상 좋다.
(사진:네이버)
안전하게 고기를 다 굽고 오로라 불멍을 하자는 홍 집사의 의견에 만장일치로 서둘러 고기판을 철수하고 오로라 불멍 시작이다.
40분 동안 불꽃을 피운다는데 한 20분? 정도만으로도 원 없이 불멍을 때린 것 같다.
밤하늘에 동그란 달도 오로라 불멍 구경을 나온 모양이다.
"와~~~ 오늘이 며칠이지? 17일이구나... 어쩐지 달달 둥근달이라니! 넘 이쁘당!"
사진을 찍자마자 달이 사라진다.
"이런 아주 밀땅 쟁이여~~~"
몇 번이나 밀땅을 하더니 달은 저 멀리 달아난다.
오로라 불멍 중 홍 집사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남동생이 슬며시 휴대폰을 보여준다.
"나도 이렇게 장바구니에 넣어뒀는데 매형이 사셨다고 해서..."
"아우 아우 이 양반들 감동일세!"
오로라 불멍 가루가 손바닥만 한 크기 다섯 봉지에 오천 원 전후라는데 한 봉지면 40여 분동안 불꽃이 핀다니 뭐 가격 대비 만족도가 굿이다. 누군가를 위해 감동을 주고픈 마음은 베리 굿이다.
불멍 내내 감사한 마음 한 가득이다.
오늘은 24절기 중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바로 '소한'이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단다. 그 정도로 추위가 매서우니 소한을 견뎌내면 어떤 시련도 겪어 낼 수 있다는 뜻에서 '소한의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하지 않는가.
누구나 힘든 시기이지만 소한의 추위를 이겨내면 따뜻한 봄날이 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희망마저 갖지 않는다면 따뜻한 봄날은 결코 오지 않을 수 도 있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에 오로라 불멍이 아련한 것은 나의 마음도 매서운 추위조차 잊게 하는 따뜻한 마음의 불꽃을 전하고 싶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