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날에 봄비가 내린다
"여보~~ 나와봐 밖에 비 온다."
'엥? 비라고? 오늘이 드디어 3월 맞지? 그럼 봄비네?'
3월 첫날에 봄비가 내린다. 봄이 오는 것만도 감사한데 선물 같은 봄비가 내린다. 현업에 있을 때 3월은 내게 반반 치킨 같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신입생이 입학을 한다. 고3까지 인생 다 산거처럼 얼굴은 누렇고 표정은 온갖 고통을 다 짊어진 듯 찌들어있던 아이들은 대학문을 열면서 다시 새내기가 된다. 1학년 첫 수업에 만나는 그 신선함에 나는 늘 3월이 기다려졌다.
영어 수업만 하면 좋겠는데 간혹 정치 경제 사회문제로 빠지기만 하면 참 답이 안 나오는 현실에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그런 3월을 참 오랜 시간 보냈던 것 같다.
집을 짓고 입주한 지 딱 6개월이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가을 겨울을 보낸 셈인데 입주하면서는 이거 저거 정착에 정리에 분주했다. 집을 지은 곳은 유난히 더 춥다는 지역이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 덕에 무탈하게 추운 겨울을 잘 보냈다. 그리고 기다렸다. 봄을 아니 3월을!
3월이 와서 그런가? 왜 밥맛도 없지? 아니 없는 게 아니라 안 먹어도 배부른 게 이런 건가 싶다. 그냥 따끈한 우유 한잔과 커피 한잔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다. 반찬 냄새 풍기지 않고 단아한 모습으로 그렇게 봄을 만나고 싶다. 추운 겨울 동안은 힐링 룸을 몇 번 열어 보질 않았다. 주택에서는 아무래도 난방비를 신경 써야 한다. 1~2월은 특히 신경 써야 하는 기간이다. 그러니 3월을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홍 집사(남편)가 어김없이 모닝커피를 내린다. 봄비가 내리니 커피 내리는 향이 더 진하게 집안에 휘감긴다.
"우왕~~~ 커피 향 직인다! 역시 커피는 당신이야!"
꾸준한 칭찬과 리엑션은 친정아빠가 내게 몰빵한 유전자 중 하나다. 아빠는 첫술을 뜨시면서 수저를 놓으실 때까지 엄마의 음식에 칭찬과 리엑션을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과 리엑션이 엄마의 맛난 음식을 평생 누리셨던 아빠의 비결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오늘은 힐링 룸에 가서 마실까?"
남동생이 데리고 온 스피커가 앙증맞다. 이은하의 노래 '봄비'가 봄비처럼 조용히 흐른다. 얼마 전 TV에서 그녀의 살아온 인생 스토리를 접한 적이 있다. 참으로 상상도 못 할 고생과 기막힌 사연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녀의 히트곡 중 하나 '봄비'는 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이제 중년을 넘어선 그녀에게 '봄비'는 젊은 시절의 그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내가 만난 2022년 3월 1일의 봄비처럼 말이다.
3월 첫날에 선물처럼 내리는 봄비가 조용히 속삭인다.
'우쭈쭈~~~지금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지요. 이제 쉬엄쉬엄 쉬어가요... 봄비도 즐기면서요.'
3월 첫날 봄비 내린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