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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Mar 13. 2018

아베는 누구인가

'책보다 더 재미있다' 금태섭의 <금씨책방> 7 - 아베는 누구인가

한겨레21 길윤형 편집장의 책 <아베는 누구인가>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수상의 평양 방문 및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은 너무나 아쉽게 놓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을 국빈 방문해서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 관계선언 –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한다. 복잡하게 뒤얽힌 한일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한일 사이의 파트너십 선언이 있은 후 한국과 일본은 각각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과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도 2002년 9월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과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만약 이때 일본과 북한 사이에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졌다면 동북아 정세는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일본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하는 상황까지 진전이 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북핵 위기가 왔을지 의문이고, 설사 마찬가지의 상황이 왔더라도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서 일본이라는 또 하나의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고이즈미가 대담하게 시도했던 북일 관계 정상화는 실패로 끝났는데, 저자가 지적했듯이 그 이유는 첫째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 W 부시의 강경한 대외정책, 그리고 북한이 과거에 저질렀던 납치 사건 때문이다.

북한은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에게 일본이 조사를 요청한 실종자 12명 가운데 8명이 사망했으며 피해자가 1명 더 있어서 5명이 생존해있다는 통보를 한다.

겨우 20여년 전에 북한이 일본 영토에서 13명의 일본 국민을 납치해갔으며 그 중에 8명은 이미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상태에서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만일 김정일이 납치 사실을 솔직히 고백을 하고 사과를 하는 것만으로(정상회담 자리에서 김정일은 납치사건에 대해 “1970-80년대 초 특수기관의 일부가 망동주의, 영웅주의에 빠져” 벌인 일이라면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처벌했”고,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음을 솔직히 사죄하고 싶다.”라고 발언했다)상황이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제정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떤 국가나 국민이 이런 사건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일본과 파트너십 선언을 이루어 낸 후 엄청난 기대를 품고 북일 정상외교를 지켜보았을 김대중 대통령이 얼마나 실망을 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고이즈미의 방북에 동행했던 아베는 납치 문제에서 강경론을 주도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굳혔고, 저자는 결국 이것을 계기로 아베가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 이후 아베는 실질적으로 납치 문제의 해결에 공헌하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납치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북아에서 우리의 첫 번째 전략적 목표를 당연히(!) 평화적 공존과 번영이라고 본다면 정말로 땅을 칠만큼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이 잃을 것을 많이 만들어줄수록 돌발적인 사태를 일으킬 동기가 줄어들 것이 아닌가.

그 후 아베는 다들 아는 것과 같은 노선을 걷는데... 보면 볼수록 과연 현재 일본과 미국, 중국이 생각하고 있는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움직이는 수순이 그러한 목표에 부합한다고 보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쨌든 할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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