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금씨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태섭 Jul 02. 2018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책보다 더 재미있다' 금태섭의 <금씨책방> 17 - 그럼에도 일본은..

그러니까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들라고 하면 다들 울분에 차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놓겠지만, 나는 교과서가 너무너무너무 재미없다는 것도 꼭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은 교과서를 그냥 외울 게 아니라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셨는데, 원리를 이해하기는 개뿔 일단 책이 너무너무 지루하고 뭔 소리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유학을 가서 놀란 것 중에 하나가 교과서들이 재미있다는 점이다. 물론 체계적으로 비교해본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로스쿨에서 가르치는 증거법 교과서도 다음에 나올 내용이 궁금하게 써놨고, 우연히 읽어본 학부 세계사 교과서도 꽤 읽을만 했다.


우리 교과서가 재미없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렸을 때는 교수님이나 선생님들이 글을 잘 못 쓰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존경하는 교수님 중에 말끝마다 "글을 쉽게 써야 한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쉽게 써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분이 쓰거나 번역하신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ㅠ,ㅠ



가토 요코의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쳐 온 교수가 '이상적인 교과서'를 써보겠다는 의도로 쓴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쉽게 읽히는 책', '중학생도 이해가 가는 글'이 실제로 어때야 하는지 조금 감이 온다.


책은 실제로 "역사연구부"라는 동아리 회원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속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해의 정도를 체크하는 방식.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글이라는 것은, 예컨대 글을 유치하게 쓰거나 유아틱한 예를 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명료하게 쓰는 것, 그리고 각각의 입장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아이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충분히 제공한다. 책은 일본이 근현대에 치른 몇 개의 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대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을 다루는데 각각의 전쟁 당시에 일본 및 상대국이 처한 상황과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무슨 거창한 '역사의 원리'나 '인류 진보의 방향'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억지스럽게 논의를 이끌어가지도 않는다. 정책 결정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인식을 가지고 어떤 결정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결정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게 된다. 마지막 편인 태평양 전쟁의 결론 부분에서 저자가 하는 얘기는 이렇다.


"우리에게는 천황을 포함해 당시 내각, 군 지도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만약 자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이 탐나서 분촌이민(일본인들을 만주로 이주시킨 정책)을 권유하는 현 공무원, 촌장 혹은 마을 사람의 편에 서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비판적인 시각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 이 두 가지 자세를 함께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결론에 이르기 전에 저자는 담담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각각의 입장을 가감없이 알려준다. 서구 식민세력에 맞서 아시아가 단결해야 하고 그 중심에 일본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 군국주의자들의 입장에서부터 반전세력이면서도 만주사변 당시에 전쟁반대의 목소리가 아닌 '만주사변으로 출정하게 된 사람들이 해고되지 않고 임금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 전국노동대중당의 처지까지. 그러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인 시각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쓰다 보니 길어졌는데, 이런 교과서로 공부했으면 정말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좋은 책. 서문에 나오는 이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요컨대 정치체제는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이 마비되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실현할 수 없는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세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오오카 쇼헤이는 또 다른 저서 <전쟁>에서 역사는 단순하게 반복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담하게도 '이 길은 전에 왔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패배주의라고 말합니다. 과거와 똑같은 현재가 진행된다면 우리가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밀린 서평, 영화평, 드라마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