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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Aug 20. 2018

잠수 한계 시간

'책보다 더 재미있다' 금태섭의 <금씨책방> 19

- <잠수 한계 시간>,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민음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한 무리로 묶는 것은 물론 편견이 될 수 있겠지만, 변호사 출신 소설가들을 가만히 보면 공통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변호사 작가는 '무죄추정'을 쓴 스콧 터로우, '더 리더'를 쓴 베른하르트 슐링크 등등인데, 대체로 소재나 배경, 플롯은 단순하고 현실적인데 등장인물들은 서로 모순되는 진술을 해서 (소설 속) 진실을 끝까지 정확히 알기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재판 경험을 통해서 너무나 많은 거짓말, 때로는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하는 거짓말까지 겪은 경험이 그런 특징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변호사 작가들의 소설 내용 자체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 보통인데, 그래서 독일의 변호사 작가 율리 체의 소설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을 읽었을 때는, '아 변호사도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있구나'하고 질투심에 불탔던 경험이 있다. 양자역학과 윤리문제를 버무려서 쓰다니.


그 후 개인적으로는 범작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어떤 소송'을 읽고, 이번에 세 번째 책인 '잠수 한계 시간'을 읽었다.



이 책은 매우 변호사스러운 책인데(일단 소재가 살인미수 사건인데다 변호사 작가들이 늘쌍 변주해대는 주제 - 같은 사건을 놓고 화자들이 서로 딴 소리를 해서 진실은 안드로메다에 있다는 라쇼몽스러운 스토리 - 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잘 썼고 재미있다.


유명한 여배우와, 책을 딱 한권 내고 백수로 지내는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 작가 커플이 스페인의 한적한 섬에 잠수 강습을 받으러 온다. 이상심리에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이 커플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잠수 강사 사이에 벌어지는 이상야릇하다면 이상야릇한 갈등을 매우 그럴듯하고 있음직하게 써놓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힘든 책.


지난 주 내내 바빴고 어제도 심야토론 출연하느라 늦게 들어왔는데 모처럼 한가한 날을 맞아 책을 다 읽고 나니 다시금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일요일 오후.




*독일어에는 '무감압 잠수 한계 시간'이라는 뜻의 단어(Nullzeit)가 있구나. 풍부한 어휘를 가진 언어는 언제나 부러움


*번역된 율리 체의 책을 검색해보니 '오셀로'라는 작가(!)가 쓴 "개가 인간과 통하는데 꼭 필요한 대화사전"이라는 책이 나온다. 율리 체라는 작가를 데리고 사는 오셀로라는 개가 쓴 책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오셀로는 내가 아는 한 유일한 변호사의 반려견 출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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