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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Sep 05. 2018

올해의 정치 책은 <위험한 민주주의> 땅땅땅!

금태섭의 <금씨책방> 21

<위험한 민주주의(The People vs. Democracy)>, 야스차 뭉크 지음,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파퓰리즘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파퓰리스트들은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를 주장하고 자신들이 국민들의 순수한 뜻을 전달하는 올바른 지도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존 정당이나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기득권 보호세력이라고 비난하고, 언론, 사법기관 등은 개혁을 방해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파퓰리스트들의 주장, 즉 '원래 민주주의란 국민 모두가 광장 같은 곳에 모여서 '직접' 통치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상적인 모습인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접민주주의를 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선출된 대표자(예를 들어 국회의원)가 국민 다수의 여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언제든지 쫓아낼 수 있어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은 직관적으로 쉽게 와닿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통쾌하게 들린다. 파퓰리스트들은 '국민의 뜻' 같이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구호로 단기간에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언론, 사법기관 등은 그 고유의 기능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지키는 데 일익을 담당해왔다. ‘다수의 의견’ 혹은 ‘국민의 뜻’을 내세운 세력이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은 사례는 나찌를 비롯해서 역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언론, 사법기관 등의 힘이 약해지면 결국 집권자의 뜻을 제어할 수단이 없어진다. 그러다보면 결국은 애초에 파퓰리즘이 내세운 것과는 달리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도 않게 된다. 즉 파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의 구성요소 중 첫 단계로 ‘자유’를 침해하게 되고 종국에는 ‘민주주의’마저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파퓰리즘에 대해서 염려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는 이렇게 파퓰리즘을 비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파퓰리즘이 발호하게 된 원인을 탐색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뭉크는 자유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조건을 세 가지로 들고 있다.


① 지배적인 매스 미디어의 존재 – 극단적인 아이디어의 유포를 막고 게이트 키퍼의 기능을 해왔다.

②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왔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③ 거의 모든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은 단일민족국가로 수립되었거나 적어도 한 민족 집단이 지배하는 상황에 있었다.


즉 뭉크는 기존의 자유민주주의가 어떠한 의미에서는 실제로 엘리트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주변적인 아이디어의 유포를 막는 매스 미디어의 기능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이주민으로 인한 갈등을 겪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번영할 수 있었다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을 비롯해서 좌우를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서 파퓰리즘이 득세하는 원인을 이 책만큼 깊이 분석한 글은 별로 못 본 것 같다. 아울러 별다른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서구식의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결함 등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


물론 언제나 어려운 것은 진단보다는 치료라서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도 일거에 파퓰리즘의 발호를 막아낼 대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냉정한 분석을 읽은 것만으로도 만족. 번역에 특별한 문제가 있지는 않은데 좀 더 제대로 읽고 싶어서 원서도 구입을 했다. 감명을 받은 나머지 이 담벼락 커버 사진으로 올리기도.


다만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단일민족체제’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 그리고 매스미디어에 의한 엘리트주의적인 요소의 작용에 관한 지적에는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올해의 정치 책'으로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를 선정함. 꽝꽝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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