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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Sep 27. 2018

올해의 추석 연휴 책 - 바르도의 링컨

금태섭의 <금씨책방> 22

- <바르도의 링컨(Lincoln in the Bardo)>, 조지 손더스 지음


1862년 2월. 남북전쟁이 한창인 미국. 링컨 대통령의 11살 된 아들 윌리 링컨이 병으로 죽는다. 윌리는 바르도(티벳 불교의 용어로 죽은 사람이 환생 전에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연옥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함)에 머물고, 아들을 잃은 링컨 대통령은 슬픔에 잠겨 밤 늦게 혼자서 여러 차례 아들의 무덤을 찾는다. 소설의 주된 내용은 링컨의 아들이 있는 바르도를 무대로 벌어지는 일들.


바르도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이 등장한다. 그 중에 하나는 이렇다.


한스 볼먼은 46세에 재혼을 한다. 날씬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머리가 빠지고, 한쪽 다리는 절고, 나무로 만든 틀니를 가진 신랑. 그에 비해 신부는 18살. 가난한 아버지와 병든 어머니를 가진 신부는 그야말로 팔려오다시피 늙은 홀아비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식 날, 술과 춤으로 벌개진 얼굴로 신방을 찾은 신랑은 얇디 얇은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신부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우리의 한스 볼먼은 여기서 이런 상황에 놓은 늙은(!) 신랑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상하고 현명한 선택을 한다. 그는 먼저 부드럽게 신부에게 자기들의 현재 모습을 설명한다.


"당신은 아름답지만, 나는 늙고, 못생기고, 한물 갔다. 우리의 만남은 잘못이다. 이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편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손대는 것을 꿈도 꾸지 않겠다."


그러면서 그는 신부에게 친구처럼 지내자고 제안한다. 밖으로는 정상적인 부부인 것처럼 행세하되, 신부는 아무런 부담없이 볼먼의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살면 된다. 그 이상은 전혀 바라지 않겠다.


그리고 부부는 딱 그렇게 산다. 둘은 그야말로 절친이 된다. 함께 웃고, 집안 일을 함께 결정한다. 젊은 신부 덕에 볼먼은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부드럽게 대하게 되고, 신부는 그들의 가정을 아름답게 꾸민다. 그러면서... 볼먼은 진짜로 행복을 느낀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신부는 자신에게 기대서 집안 일을 의논한다. 그에게 새 신부는 그야말로 축복이 된다.


자연스럽게 신부도 점차 볼먼을 좋아하게 된다. 첫날 밤 남편에게 "당신이 역겨운 건(distaste) 아니예요."라고 볼먼이 듣기에도 거짓말이 분명한 얘기를 하던 그녀는, 어느 날 저녁 볼먼의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신랑은 진짜 멋진 남자예요. 사려깊고, 똑똑하고, 친절하지요."


다음 날 신부는 수줍은 표정으로 볼먼에게 편지를 한장 건낸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당신의 친절함에 감동했어요. 저는 '우리' 집에서 너무나 행복해요."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다. "우리의 행복이 제가 아직 모르는 세계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지금껏 제가 모르는 어른들의 세계로 저를 이끌어준 것처럼 그곳에도 이끌어주었으면 해요."(19세기의 연애편지란...)


뛸듯이 기쁜 마음으로 볼먼은 진정한 첫날밤을 고대한다. 편지를 받은 날 밤 어느 정도 친밀한(?) 시간을 갖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디데이는 다음 날로 정하고 출근을 한다(볼먼은 인쇄업자라서 인쇄공장으로 출근을 한다).


극도의 흥분과 기대 속에서 그날 밤을 기다리는 볼먼의 머리 위로... 인쇄공장 천정에서 기둥이 떨어진다.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머리에 기둥을 맞은 볼먼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결국 바르도에 머물게 된 것이다.... 물론 첫날밤은 영원히 사라지고...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하는데, 무덤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온갖 불평을 접할 수 있는 책. 매우 특이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스토리가 재미있는데다가 듬성듬성(?) 쓰여진 책이라 페이지도 잘 넘어간다. 2017년 맨부커상 수상작. 연휴에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 강추.


뉴욕타임즈는 이 책을 소재로 VR을 만들었는데(https://www.nytimes.com/…/1000000…/lincoln-in-the-bardo.html) 인터넷이 느린 지역에 출장을 와서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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