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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Sep 27. 2018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금태섭의 금씨책방 20

-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E. H. 카 지음, 김병익, 권영빈 옮김, 열린책들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서는,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문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걸출한 소설가라고 하며, 또 다른 일각에서는 도대체 왜 이렇게 보수적이고 지배권력에 대한 복종을 주장하고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한 소설가가 상찬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대표적으로 마광수 교수가 그런 취지의 글을 썼다).


어쨌든 문제적 작가임에는 틀림없는데 이상하게 나는 도스또예프스끼 책을 잘 못 읽어냈다. 어려서 "죄와 벌"을 읽은 게 전부고,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몇번 시도했는데 수도원에서 등장인물끼리 지루하게 논쟁하는 부분을 넘어서지 못했다. 비교적 얇은 책인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도 읽어보려고 했는데 뭔 소린지 이해가 잘 안 가서 포기.


그러다가 페북 어디에선가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또예프스끼가 그 소설을 쓸 당시의 러시아의 사상적 배경과 맥락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는 말을 보고 조금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 포스트에선가 또 다른 어디에선가 E. H. 카가 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이 있다는 것을 듣고 구해서 읽어봤다. 현재는 절판이라 국회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대출기간을 넘겨서 독촉 메일을 받고 서둘러 읽었다.



일단 번역이 난삽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 H. 카가 이 책을 쓴 것은 1931년. 옮긴이들은 1979년에 처음 번역서를 냈고, 2011년에 개정된 번역서를 냈다는 것인데,


반대의 의미로 번역한 문장("어떤 작가의 어떤 소설도 이처럼 네댓 차례 읽고서도 명확하고 통일된 설명을 주기도 힘들 것이다."), 뭔가 단어를 빠뜨린 문장("<백치>에서 로고진이 미쉬낀을 관찰하듯이, 그 애인은 커튼 사이로 자기창을 바라보는 숨어서 남편을 관찰한다."), 그냥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장("도스또예프스끼가 그런 인물들의 심리를 검토해 볼 때, 그가 꾸며 낸 굴복감이 첫눈부터 야만적으로 폭발하는 것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별로 놀라울 게 없다.")이 속출한다.


명백한 비문이 아닌 부분 중에서도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전체적으로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번역을 해놓고 어떻게, "(개정판을 내게 되어) 당초의 묵은 태가 깔끔하게 가시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초판의 그 어색하고 억지스런 꼴은 걷어낼 수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특히 아예 뜻이 안 통하는 문장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옮긴이들 뿐만 아니라 편집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런 치명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일단 도스또예프스끼의 생애 자체가 너무나 극적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도스또예프스끼는 젊은 시절 급진적인 서클에서 활동하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까지 끌려갔다가 사면을 받고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한다. (나는 그가 최후의 순간에 극적으로 사면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러시아 황제는 애초부터 도스또예프스끼와 동료들을 사형시킬 생각이 없었는데 겁을 주기 위해서 형장까지 끌고 갔다가 사면하는 형식을 취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사형을 당할 차례였던 세 사람은 밧줄을 목에 걸기까지 했다고 한다.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나 ㅠㅠ)


평생 도박 중독이어서 극심한 경제적 곤궁을 겪었는데 결국에는 기한 내에 소설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면 장래의 판권까지 모두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친구들이 모여서 일부분씩 대신 써줄 의논까지 하다가 결국 구술로 빨리 쓰라고 속기사를 한명 구해주는데 그 속기사는 결국 도스또예프스끼의 두번째 부인이 되고 일종의 구원의 여신이 된다. 그녀는 남편이 도박장으로 가는 것을 억지로 막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옷이나 장신구 등을 저당잡혀서 노름 밑천을 대주기까지 하는데 그러면서 신뢰와 통제권을 얻는다. (다들 아시는 얘길텐데^^::)


젊은 시절의 E. H. 카는 상당히 깊이 있는 문학적 소양을 배경으로 도스또예프스끼의 주요 저작들을 날카롭게 분석하는데 마치 책을 실제로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당대에 칭송을 받았어도 큰 의미가 없는 책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깎아내리고, 반면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책에 대해서는 "현대 작가들은 30여년 후에 (도스또예프스끼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면서 그 자신을 대담하고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라는 식의 극찬을 하기도 한다.


E. H. 카가 문학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몰랐는데, "백치"의 한 대목에 대해서 내린 평가를 보면 대단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이 부분을 보자. ("백치"의 등장인물 중 폐병으로 죽어가는 16세의 소년인 이뽈리뜨가 또다른 등장인물 미쉬낀과 나누는 대화)  


'그렇다면 당신 의견으로는 내가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인가 말해주겠어요? 가장 명예로울 수 있게 말이예요. 말해 줘요.

우리를 관대히 봐주고 우리의 행복을 용서해주게, 라고 공작은 조용히 말했다.'

이것은 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위대한 대답 중의 하나이다.


사놓은 책이 산 같이 쌓여있는데 도스또예프스끼의 책들을 정주행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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