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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Oct 14. 2019

대선주자급 정치인이 질투 날 때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18 - 정치인과 공부

특권 관행 대부분 사라졌으나
자료수집·공부 지원 ‘특혜’ 남아
의정활동 큰 도움…국민에게 감사

의원들, 뜻과 시간만 할애하면
관심 분야 전문가 초청 강연이나
국외 조사 등도 비교적 쉬워
대선주자는 집중 공부도 가능

자기만족 위한 공부 아닌 만큼
의정활동에 활용돼야 의미 생겨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내부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과거 국회의원들이 누려온 특권 가운데 누가 봐도 부당하거나 시대에 맞지 않는 것들은 상당 부분 없어졌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시민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국회 내부의 자정 움직임을 통해서 부끄러운 관행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당연한 변화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아무 근거 없이 특혜를 받거나 다른 사람들이 얻기 힘든 기회를 가져서는 안 된다. 유권자의 대표인 만큼 오히려 일반 시민들과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의원들에게 주어진 권한 가운데 의정활동을 위해서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들도 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고맙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업무와 관련해서 자료 수집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받을 수 있는 전방위적인 지원이다. 몇가지 예를 보자.


휴가 때 사비로 현지조사 했지만


지난해 초에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휴가를 간 일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개혁은 시대적 과제였는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하는 나는 그 기회에 일본 법무성이나 검찰청에 방문해서 검사들과 직접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물론 일본 검찰 제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 책이나 논문은 많지만 수사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담당자와의 대화를 통해서만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업무상 자주 접촉하고 부딪히게 되는 경찰과의 관계, 피의자나 고소인 등 사건 관계자를 조사하면서 겪는 일 등은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우리 법무부와 주일대사관 쪽에 도움을 청했다.


사적인 부탁이 아니라 상임위원회(법사위) 업무와 직접 관련된 요청이니까 일종의 공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휴가 중에 하루 시간을 내어 하는 일인 만큼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했다. 불필요한 의전이나 편의 제공 등은 일절 사양하고 교통비, 식비 등 비용은 개인 돈으로 충당했다. 주일대사관에는 우리 검찰에서 파견된 법무협력관(부장검사)이 있다. 그분의 주선과 도움으로 나는 하루 동안 일본 법무성에 근무하는 최고위급 검사부터 일선에서 수사를 하는 평검사까지 만나서 시간 제약 없이 하고 싶은 질문을 다 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이 아니라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특혜라면 특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권한남용’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공식적인 기관은 국회도서관과 입법조사처가 있다. 과거에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료를 찾고 책을 읽는 의원들도 많았다고 하는데(그런 성실성으로 유명했던 분으로는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조순형 전 의원이 있다) 온라인으로 자료 검색이 가능한 지금은 국회도서관을 자주 방문하는 의원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국회도서관에 근무하는 우수한 인력들의 조사활동은 의정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국회의원이나 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입법이나 정책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주는 입법조사처도 마찬가지다. 우리 의원실도 법안을 발의하거나 정부에 정책과 관련된 질의를 할 때 두 기관에 자료 조사를 의뢰할 때가 많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계기로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기 위한 입법을 할 때는 각국의 입법례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몇주 지나지 않아 상세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은 개별 의원실의 역량만으로는 하기 힘들다.


업무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전문가들로부터 강연을 듣는 일도 많은데 이런 강연은 의원들끼리 만드는 공부 모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국회의원들은 누구나 이런 모임에 한두개 이상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지역구 활동이나 회의 등으로 시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대개 아침식사를 하면서 만난다. 의원실에는 강사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지원되는데 서로 번갈아가면서 비용을 부담한다.


모임의 규모는 다양해서 의원 수십명이 참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은 모임은 서너명에 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소규모 모임도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듣고 질문을 할 수 있다. 만나본 적이 없는 분도 연락을 해서 정중하게 초청을 하면 선뜻 오신다. 예산으로 지급할 수 있는 강사료는 어디 가서 얘기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소액이고 참가하는 인원이 적은 경우가 많은데도 그런 분들을 모실 수 있는 것은 현역 의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면 그 내용이 실제 입법이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선주자로 꼽히는 정치인들이 소위 ‘대권 수업’을 듣는 모습을 접한 적이 몇번 있는데 이런 분들은 일반 의원들보다 한층 더 짜임새 있는 교육을 받는다. 길게는 1년 가까이 경제, 사회, 외교 등 분야별로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사정을 잘 모르면 나중에 ‘한자리’ 하고 싶은 ‘폴리페서’들이 나서는 게 아니냐는 선입견을 갖기 쉽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게 될지도 모를 리더에게 필요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사명감으로 성실하게 강의를 하는 학자가 대부분이다. 당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들도 그런 과정을 거친다.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선 정치인들을 특별히 부러워해본 적은 없는데 단기간에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로부터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은 정말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의원 공부 모임이 좋은 이유


공부 모임에 참여하면 특정한 분야에 대한 지식도 배우게 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미-중 무역 분쟁의 예를 들어보자. 나는 보수적이고 미국 입장에 공감하는 전문가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중국 입장에 공감하는 전문가로부터 각각 이 문제에 대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현재 상황을 분석하는 데는 두 사람의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중국의 정치나 문화도 서구 자본주의적으로 변화하리라고 예측했었는데 현재 중국은 그런 예상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런 독자적인 특징(예를 들자면 개인의 자유나 프라이버시가 서구에 비해 경시되기 때문에 빅데이터를 이용한 4차 산업 발전에 매진할 수 있는 점 등)을 마음껏 활용해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고 미국은 이런 모습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일시적인 마찰이 아니라 건곤일척의 승부에 가까운 충돌로 보아야 한다. 상당한 세월이 지난 뒤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는 미국의 힘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중국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적당한 선에서 봉합하기를 희망하겠지만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애매한 타협은 중국에 시간만 벌어주는 셈이 되기 때문에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가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두명 모두 비슷하게 이런 진단을 내놨다.


차이가 나는 것은 해법. 보수적인 분은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여러 산업 분야에서 우리를 추월하는 단계까지 온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에 이번 기회를 활용해서 격차를 벌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적어도 몇년의 여유라도 가질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중국을 중시하는 전문가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그분도 우리가 최종적으로 중국 편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지는 않았다. 다만 중국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도 있으니 절대 조급하게 미국 편을 들지 말고 최대한 버텨야 한다고 한다.


두가지 의견 중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는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서로 다른 결론에도 이런 해법들을 들으면서 문득 깨닫게 되는 점은, 애초에 제3국인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입장 가운데 어느 쪽이 정당한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강대국인 미-중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상황 그 자체다.


이것은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갈등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될 점을 깨우쳐준다. 한국과 일본 이외의 나라들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두 나라의 입장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일 양국이 쉽게 화해하기 어려운 충돌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자신들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즉,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본에 대해 우리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은 국내적으로는 몰라도 국제적으로는 극히 제한된 의미만을 띤다. 국제관계나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관련 국가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인지에 관한 예측이라는 점을 이런 강의를 들으면서 배울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수요오찬모임’ 소속 의원들이 지난 4일 낮 국회 의원회관 식당에서 남기정 서울대 교수(앞줄 중앙)를 초청해 최근의 한-일 관계에 대해 공부하는 모습.


공부가 의정활동에 활용 안 되는 현실


국회에서 제공되는 지원은 이렇듯 다양한 분야를 대하는 안목을 키워나갈 수 있는 훌륭한 것이지만, 이런 공부는 결국 현실의 의정활동에 적용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국회의원은 세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막상 국회 상임위원회나 청문회 등은 정쟁 등으로 제대로 된 정책 질의나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충실한 지원에 힘입어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막상 국회의 회의에서는 활용하기 힘든 현실.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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