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19 - 정치인과 거짓말
친한 검사 형에게 변호사 소개
청문회 해명, 7년 전 녹취와
전혀 달랐던 윤석열 검찰총장
명백한 사과 안 하고 넘어가도
후배 감싼 ‘의리맨’ 평가도 나와
이것이 과연 사소한 문제일까
기자간담회에서 한 조국 장관 발언
의도 없어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중에 밝혀지면 적어도 해명해야
윤석열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명백히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난 일이 있다. 그는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을 비롯한 여러 청문위원들한테서 현직 검사의 형인 용산세무서장에게 후배 변호사를 소개해준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적이 없다고 답을 했다. 그런데 그날 자정이 넘어 공개된, 7년 전 기자와의 전화통화 녹음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 통화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기자에게 “중수부 연구관 하다가 막 나간 이남석(변호사)이보고, 일단 네가 대진이(=윤대진 검사)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대진이 한참 일하니까, 형 문제 가지고 괜히 머리 쓰면 안 되니까, 네가 그러면 윤우진 서장 한번 만나봐라(라고 말했어요)”라는 답변을 한다. 그는 소개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이남석이가 그냥 전화하면 안 받을 것 아냐. 다른 데 걸려온 전화는 안 받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이남석이한테 문자를 넣어주라고 그랬다고. ‘윤석열 부장이 보낸 이남석입니다’ 이렇게 문자를 넣어서 하면 너한테 전화가 올 거다. 그러면 만나서 한번 얘기를 들어봐라.” 청문회에서 한 발언과 기자에게 전화로 대답했던 내용이 180도 다르다. 어느 한쪽은 분명히 거짓말이다.
고위 공직자의 거짓말을 알았을 때
이 에피소드는 나에게 두 지점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첫째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짓말을 한번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사청문회 후보자가 될 정도로 성공적인 삶을 누렸던 사람들도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는, 선의로든 악의로든 거짓말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신랄한 질문을 던지는 청문위원들도 마찬가지다.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라고 말한다면 누구도 윤석열 총장을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거짓말이 드러나면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해명을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그간의 상식이었다.
고위 공직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는데 그냥 넘어간다면 우리 사회의 규범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법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인 검찰총장 후보자 아닌가. 그러나 윤석열 총장은 결국 거짓말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윤석열 검찰총장이 후배 검사를 감싸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의리의 총대를 멘 상남자”라는 찬사까지 나왔다. “언론에 꼭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도 들을 수 있었다.
검사들도 다르지 않았다. 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다수의 검사들이 친한 기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후배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럼 그때 윤대진이 소개해줬다고 했어야 하나”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 네티즌들 중에도 그 당시에는 윤 총장의 잘못을 덮어주어야 한다면서 이 일을 ‘사소한 문제’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른바 ‘가짜뉴스’ 문제에는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이 언론인에 비해서 결코 직업윤리의 기준이 낮다고 할 수 없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의 거짓말에는 이렇게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거짓말이 사소한 문제일까. 적어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진부한 예지만 거짓말 문제가 나오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워터게이트 사건’ 이야기다. 워터게이트는 미국 민주당 사무실에 대한 도청 시도가 발각되면서 시작된 스캔들이지만 결국 닉슨 대통령을 탄핵과 사임으로 몰고 간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은폐 시도와 거짓말이었다. 역시 탄핵 위기에 몰렸던 빌 클린턴 대통령의 경우에도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성추문 자체가 아니라 위증과 사법방해 혐의다.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막강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을 두 번이나 낙마 위기로 몰고 갈 수 있을 만큼 거짓말은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인 죄다.
근거 없는 말에 대한 책임
거짓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경우는 (청문회의 답변 내용이 진실이라면) 있지도 않았던 사실을 지어내서 기자에게 답변한 것이니까 ‘적극적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7년이 지난 지금에는 착오였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자와 통화한 그 시점에서 보면 명백히 기억과 다른 말을 한 것이다. 이것과는 다른,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봐야 할 문제가 ‘의도는 없더라도 객관적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경우’다. 최근 대정부질문에서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과 조국 법무부 장관 사이에 오간 문답을 보면 이 사례가 잘 나타난다. 당시 회의록은 이렇다.
이태규 의원 “장관께서는 후보자 시절 기자간담회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한 답변 중에서 단 한 가지의 거짓말도 없었습니까?”
조국 장관 “기자간담회와 인사청문회에서 당시에 제가 알고 있는 것, 제가 기억하는 것 그대로 답변했습니다.”
이태규 의원 “거짓말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조국 장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태규 의원 “그렇다면 거짓말 의도는 없었지만 청문회가 지나고 보니 사실과 다른 것은 있었습니까?”
조국 장관 “제가 다 따져봐야겠습니다만,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태규 의원 “본인이 답변한 중에 나중에 거짓이 드러나면 어떤 책임이라도 지시겠습니까?”
조국 장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문답 과정에서 이태규 의원은 본래적 의미의 거짓말, 즉 기억과 다른 말에 대해서는 크게 추궁하지 않는다. 사실 윤석열 총장의 경우처럼 스스로 한, 서로 다른 내용의 발언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그것보다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객관적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 발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다. 법무부 장관도 자신의 발언 중에 그런 것이 있다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긍정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 현실에서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발언이 사후에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을 때 책임을 지는 사례가 얼마나 있을까.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의도를 가지고 한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공인이 사실과 다른 말을 했을 때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것은 실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인기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서슴없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공직자나 정치인의 발언을 사후적으로 검증해서 근거 없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한 책임을 묻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야의 다툼으로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일정이 계속 늦춰지던 중 당시 장관 후보자는 국회에서 유례없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여러 시간에 걸친 기자들과의 문답 과정에서 그는 논란이 있는 쟁점들에 대해서 그야말로 단호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펀드 문제에 대해서는 운용 보고서를 흔들면서 블라인드 펀드라서 투자 내역을 전혀 알 수 없었다고 얘기를 했다. 자녀의 입시와 관련해서는 부정한 자료가 입시 과정에서 일절 제출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사안들에서 관련된 이들의 범죄 혐의가 있는지는 지금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어떤 분들은 검찰 수사나 혹은 법원의 재판 결과를 통해서 책임 유무를 따져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과연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많은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한 말이 나중에 객관적인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다면 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근거의 진위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잘못된) 답변을 한 것이라면 그에 대해 적어도 해명은 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은 결국 말로 이뤄져
다 부질없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지금 법무부 장관의 사례가 크게 문제가 되어서 그렇지 다른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여야, 진영에 따라 분명히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고 무리한 방어에 나서기도 한다. 법을 어기는 사람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검찰의 수장이 한 거짓말도 후배를 감싸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유로 비판은커녕 칭찬을 받는 상황인데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꼽혔던 분이 티브이 토론프로그램에 나와서 “진영논리가 왜 나빠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다보면 우리 편을 위해서 거짓말쯤은 해도 되는 것이 시대정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는 결국 말로 이루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시위 과정에서 놓쳐서는 안 될 장면이 있었다. 무려 21주 동안 토요일마다 대규모 집회가 열렸는데 단 한 번도 정당의 대표나 정치인이 메인 무대에서 연설을 하지 못했다. 최근 열리는 서초동 집회나 광화문 집회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활약하던 시절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인들의 말이 그만큼 믿음을 잃은 것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아닐까. 편을 갈라서 맞든 틀리든 아무 말이나 하다 보니 국가적 논쟁에서 여론을 이끌어갈 최소한의 리더십도 상실하게 된 것이 아닐까.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증폭 효과도 있다. 정치 불신의 시대라지만 국민들은 생중계되는 정치 현장을 보면서 본보기를 찾기도 한다. 거짓말이 횡행하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국회의 모습이 결국 유튜브에 차고 넘치는 ‘가짜뉴스’를 낳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국정감사로 사무실마다 불이 밝혀진 국회 의원회관을 밤늦게 나서면서 정치인이 하는 말의 무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