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의 <금씨책방> 46 -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문학동네
11월 말에 만난 올해의 베스트 책.
의심할 여지 없는 "크림 중의 크림(crème de la crème)"
물론 어느 책을 좋아하는지는 개인의 취향이니까 '꼭 읽어보시라', 라고 강권할 수는 없는 일이고 실제로 그런 권유를 받고 읽는다고 해도 사실 이 책을 좋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소설이 왜 이렇게 난삽하냐, 라든지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냐, 라고 하실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crème de la crème은 crème de la crème일 뿐.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소설의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작품.
브로디 선생은 느릅나무에 기대섰다. 약한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던 가을의 마지막 날들 중 하루였다. 나뭇잎이 소녀들 위로 떨어졌고, 그 덕에 머리며 허벅지에 떨어진 나뭇잎을 털어내느라 부스럭대며 움직일 구실이 생겨 소녀들은 기뻐했다.
"농익은 열매와 안개의 계절이군. 전쟁이 시작될 무렵 난 한 청년과 약혼했는데 그가 플랑드르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어." 브로디 선생이 말했다. "샌디, 한바탕 씻기라도 할 생각이니?"
"아뇨, 선생님."
"소매를 걷어올리고 있잖니.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올리는 학생을 가르칠 마음은 없어요. 즉시 다시 내리도록. 우린 교양인이니까. 그는 휴전이 선포되기 일주일 전에 전사했지. 겨우 스물두 살이었는데 가을 낙엽처럼 스러졌어. 교실로 돌아가면 플랑드르를, 그리고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내 연인이 전사한 지점을 같이 보도록 하지. 그는 가난했어. 에어셔에서 온 시골 사람이었지만 부지런하고 머리 좋은 모범생이었어. 청혼을 하면서 그가 말하더군. '우린 물을 마시고 천천히 걸어야 할 거예요.' 조용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휴 나름대로 시골 사람답게 표현한 거지. 물을 마시고, 천천히 걸어야 할 거라고. 로즈,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뭐라고?"
"조용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의미합니다, 선생님." 육 년 뒤 성적 매력으로 유명해질 로즈 스탠리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