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무지가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앎에서 온다
나는 웹서핑, 특히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와 매체를 통한 학습을 좋아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이론을 빠르게 접하고, 최신 용례와 트렌드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반복될수록 지식이 쌓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공허와 불안이 차오르는 느낌을 종종 느낀다. 아마도 이 느낌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만들어진 "정보를 소비하지 않으면 도태될 거야"라는 의도된 불안 때문일 것이다. 이 불안에 사로잡힐수록 '사색'과'내면화'의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고 공허함 속에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다음 콘텐츠를 멍하니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대부분의 이유는 누적된 공허와 불안을 해소하고 사색과 내면화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나는 왜 공허하고 불안했을까
이 이유는 인지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인지 발달 이론에 핵심 개념인 '스키마(도식)'에 따르면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지식에 통합(동화)하거나 기존 지식을 수정(조절)하며 이해의 틀을 넓혀 나간다. 이를 '지식의 원'에 비유해 보자
원의 내부 : 내가 확실히 아는 것
원의 둘레 : 미지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무지의 자각'범위
열심히 공부하며 스키마를 확장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미지의 세계와 접촉하는 원의 둘레 또한 커지게 된다. 즉,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구나"라는 자각 또한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부, 학습을 하다 보면 당연하게 맞닥뜨리는 개념이다. 하지만 문제는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요청하지 않은 정보까지 끊임없이 들이밀며, '자연스러운 지적 확장'을 넘어서 '강제적 확장'을 일으킨다. 이 강제적 확정은 원의 내부의 밀도를 옅어지게 만들며 동시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지는 원이 둘레 앞에서 우리를 불안하고 공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 때문에 매체를 통한 학습을 멈춰야 할까?
그렇지 않다. 매체는 뛰어난 접근성과 무한에 가까운 콘텐츠를 가진 훌륭한 교육 수단이다. 다만, 어떻게 배우느냐에 대한 방법론은 필요하겠다. 나는 물류 관리 모형을 빌려 하나의 방법을 제안해보고 싶다.
바로 JIC와 JIT라는 물류관리 모형이다.
각각 Jus-In-Case(비상대비재고)와 Just-In-Time(적시생산재고)을 뜻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재고관리에 추구하는 방식이 전자는 수요를 대비해 미리 비축분량을 생산하는데 반해, 후자는 수요가 발생하면 수요량만큼 생산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 모형을 매체를 통한 학습에 적용해 본다면 아래와 같다
JIC : 언제가 쓸모 있을 것 같은 학습
JIT :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하거나 지금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학습
매체를 통해 학습한다면 JIC형 학습은 경계해야 한다. 이 학습 방법은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권하는 방식이자 FOMO를 유발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학습이 목적이라면 JIT형 학습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장 필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끊임없이 동화와 조절을 통해 지식의 원을 밀도 높게 넓혀나갈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한 정보 소비를 줄임으로써 충만한 사색의 시간과 내면화의 시간을 벌 수 있다. 불안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앎에서 온다.
우리는 매일 정보의 홍수라는 필연적인 바다 위에 선다. 이곳에서 표류 할 것인지, 항해 할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항해를 택했다면 답은 생각보다 심플하다. 막연한 불안에 휩쓸리는 대신 내 생각의 작동 원리를 점검하고, 지금 당장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리하여 실행하면 된다. 키를 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나' 임을 잊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