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조금 떠졌다
연말정산 시즌이 왔다. 몇 주전 홈텍스에 들어갔다. 서류를 받아 연말정산 시스템에 업로드했다. 그리고 오늘 결과가 나왔다. 원천징수를 통해 올해 연봉을 봤다. 8,399만 원. 평균 세후 월 543만 원.
'월급이 올랐네. 작년에 몸이 많이 갈렸구나. 마취했으니 고통은 없겠지."
그 생각을 하며 응급실 주변을 살폈다. 오후 10시 30분, 아직 주변은 어수선했다. 이브닝 멤버들이 퇴근 준비를 했다. 앞에 있는 교수님들도 서로 인계를 주고받았다. 이송기사 선생님들은 침대를 옮기며 다녔고, 청소 여사님은 바닥에 떨어진 것들부터 피가 널브러진 중환 구역의 바닥까지 열심히 닦으셨다.
그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 주황색 옷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들어왔다. 들것에는 환자가 실려 있었다. 나는 급하게 연말정산 결과창을 껐다. 잠깐 벗어둔 마스크를 쓰고 그들에게로 향했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바로 중환구역으로 들어갔다. 산소 수치는 60%까지 떨어지고, 혈압도 70대 밖에 측정되지 않았다. 교수님은 인공호흡기 준비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보호자들과 상담을 했다.
"연세도 많으시고, 이미 와상 중이셨잖아요. 혹시 자녀분들께서 평소 연명의료중단에 대해 이야기해 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영감 몸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애들이 안 왔어요."
"지금 바로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면 나중에 다시 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바로 돌아가실 수도 있고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돼요?"
"혼자서 선택하기가 힘드시면 얼른 자녀들과 상의를 해주세요. 오래는 못 버티십니다."
80대 정도로 보이는 보호자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폴더를 열었다. 1번 다이얼을 꾹 눌렀다. 이후 자식들과 통화는 듣지 못했다. 나도 다시 자리로 얼른 돌아와 응급 초진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인계를 주고 퇴근했다. 보통 밤 0시가 지나면 어수선한 것들이 조금씩 정리가 된다. 응급실에는 방금 전처럼 생사가 오가는 환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들도 있다.
가볍게 생선을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서 온 사람들. 술 먹고 넘어져서 온 사람들. 과식을 해서 구토와 설사를 해서 오는 사람들. 번데기에 알레르기가 있는 걸 알면서도 극복하기 위해 번데기를 먹었다가 온몸에 알레르기가 올라와서 오는 사람까지.
바쁘게 일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스테이션 오른쪽 위에 있는 디지털 벽시계를 쳐다봤다. 오전 1시가 빨갛게 보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농도가 연해진 아이스라테를 한 모금 빨았다. 밍밍하다. 시계 아래에 벽거울을 봤다. 무표정한 내가 서있었다.
'왜 나는 행복하지 않지? 배부른 소리인가?'
어쩌면 배부름도 미소도 마취가 된 것 같았다. 분명 달콤해야 하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은 왜 퀭한 걸까. 옆에서 뒤늦게 연말정산 결과를 확인하는 선배 모습을 몰래 쳐다봤다. 내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연말정산은 입사 7년 차가 되었으니, 올해로 6번째다. 처음 할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파트장님이 하라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했다. 홈택스 첫 화면에서 멍하니 메뉴들만 살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선배가 친절(?)하게 도와줬다.
"야 이거 pdf로 한 번에 받기 누르고. 여기 병원 연말정산 시스템에 올리고. 그렇지. 자 보자. 아니 너 카드를 왜 이렇게 많이 썼어. 술을 많이 먹는다고? 이게 신규 주제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역시나 뭔지도 모르고 나는 그냥 하라는 대로 했다. 연말정산 예상 결과는 -200만 원 정도 나왔다.
'뭐지? 돈을 뱉어 내라는 소리인가? 내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건가?'
아까 그 선배한테 다시 한번 물어봤다. 잔소리를 들을까 무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어 뭐야? -200만 원? 너 200만 원이나 돌려받아? 신규라 연봉 얼마 되지도 않는데, 술을 그렇게 먹었으니까 그렇지. 돈이나 모아 인마! 많이 돌려받으니까 부서에 커피나 하나씩 돌리고!"
독립하고 나서 돈과 관련된 건 가족한테도 안 보여줬다. 부끄러웠다.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모습이 너무 싫었다. 싫어도 나 혼자 한다고 말할 수 없는 내가 더 싫었다. 입고 있던 옷이 홀라당 벗겨진 느낌이었다. 수치스러웠다. 안 그래도 여초사회라 말이 많이 도는데, 남자도 몇 명 없는데, 포커스는 뻔했다. 연말정산 이야기가 나오면 내 이야기가 분명 나오겠구나. 태섭이 신용카드로 얼마 쓰고, 돈 얼마 받았다고 이야기 나오겠구나. 그 생각을 한 지 10분도 안 지나서 다른 선생님에게 "야 커피 말고 햄버거 세트"라고 들었다. 그럼 그렇지.
연말정산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2년 차부터는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다. 덕분에(?) 연말정산을 일찍 마스터했다. 소득공제, 세액공제받을 것들을 연초부터 계획을 세워서 소비했다. 연봉이 늘어 갈수록 소비 금액도 늘어났기에 체크카드, 신용카드, 현금영수증, 기부금, ISA, 퇴직연금 등 여러 가지를 알차게 소비해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주담대에 대한 소득공제였다. 집도 갖고 연말에 이자도 소득공제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며 매매를 강추했다. 주변 동료 4명이 집을 매수했다. 너무 뿌듯했다. 그 힘든 과정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늘어나는 게 기뻤다. [등기방]이라는 단톡방까지 만들어서 서로의 고충과 앞으로도 자산 계획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게 감사했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연말정산 한 푼에 집착하고, 동료들과 [등기방]을 만들어 자산 계획을 세웠던 건 일종의 보상 심리였을지도 모른다. 응급실에서 깎여 나가는 나의 시간, 감정, 건강을 '숫자'로라도 치환해야만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월급이 주는 안도감만으로 버티기엔, 작년부터 시작된 현실의 통증이 마취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기 시작했다.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전공의 파업 사태. 나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업무. 의사도 아니고 일반 간호사도 아닌 진료지원간호사(PA)라는 업무. 응급 초진과 동의서 설명, 여러 술기 등. 업무 투입 전 교육은 알아서 익혀야 했다. 물론 중환자실과 응급실 경력이 큰 도움이 됐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기존 전공의와 인턴 업무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열심히 환자를 위한 일을 해도 법적으로 보호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간호법이 제정된 것에 대한 안도감. 아직 제대로 된 판례가 없기에 소송 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찝찝함이 존재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업무 능력은 자리를 잡았다. 전공의도 인턴도 조금씩 돌아왔다. 문제는 업무 범위에 대한 갈등이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이건 너네 업무다. 너네가 해야 한다.' 이런 소란은 계속되었다. 누구 하나 시원하게 해결할 수 없었다.
진료지원간호사(PA)는 의사와 간호사 중간에 속해 어디에도 끼워주지 않았다. 최근 간호 쪽에서 더 많이 신경을 써주긴 했다.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얼마 전 동기라는 녀석이 'PA는 간호사도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서로 업무는 달라져도 같은 응급실 밥 먹으며 고생하는 사이였다. 단순한 말실수를 넘어 내 직업적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은 개뿔.
계속 다투며 업무 범위를 조정해야 할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누군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가장 싫었다. 환자를 위해 일하는 건 좋았다. 애매한 업무 범위를 속 시원하게 따질 수도 없는 게 힘들었다. 하기 싫어도, 싫다고 말할 수 없는 내가 더 싫었다. 다시 한번 입고 있던 옷이 홀라당 벗겨진 느낌이었다. 그렇다. 수치스러웠다.
아침 8시,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이른 아침인데도 아내가 집에 있었다. 아내는 평소 8 to 5로 근무를 한다. 평소에 내가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돌아오면 얼굴을 못 볼 수밖에 없었다. '여보, 고생했어'라고 맞아주는 아내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다른 병원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준비 중이었다. 그녀는 간호사 7년 차의 익숙함을 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 학생 때부터 가고 싶었던 병원에 경력직으로 지원했는데 서류가 붙었다. 나는 면접도 무조건 붙을 거라 말했다. 아내는 갈지 안 갈지 마음이 반반이라고 했다. 정말 반반일까? 지금까지 열심히 면접 준비하고, 옷도 머리도 단정하게 꾸미는 것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다.
"여보, 마음이 진짜 반반이라면 사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반반이야. 시설 좋은 병원 구경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다녀와."
아내를 집 앞까지 배웅해 줬다. 겸사겸사 당근마켓으로 판매한 물품을 반값택배로 보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오전 9시, 바로 자기에는 내 개인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 아까웠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슈카월드를 틀었다. 분명 보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눈을 감았다.
티브이 옆에 달려있는 벽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티브이를 끄고 방안에 들어갔다. 암막커튼을 쳤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압도적인 암흑 상태가 되었다. 휴대폰을 켰는데 눈이 부셨다. 30분 전 아내가 면접에 들어간다는 연락이 와있었다.
'잘 보고 오겠지'
오후 1시, 번호키 눌리는 소리가 났다. 아내가 돌아왔나 보다. 나는 3교대를 하며 잠귀가 엄청 밝아졌다. 원래는 누가 잘 때 업어가도 몰랐는데 신기하다.
아내가 면접을 잘 보고 왔는지 궁금했다. 지금 거실로 나가면 아내가 '미안해' 할 거다. 하지만 면접 잘 보고 왔냐며 격려해주고 싶었다. 머리로는 고민을 했지만, 손은 이미 문고리를 잡고 앞으로 밀었다.
"여보, 고생했어!"
아내에게 면접 이야기를 들었다. 경력직이라 그런지 압박면접이 들어왔다고 했다. 면접관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거기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 게 상근직으로 알고 있어요. 여기 오면 3교대를 하는 거 알고 있죠? 저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가요. 왜 오려고 하는 거예요? 다들 상근직 하고 싶어서 난리인데. 아 그리고 여기 퇴사하는 사람 많은 거 알고 있죠? 주변에서 이야기 들었어요?"
아내는 가고 싶은 마음이 반반에서 3:7로 바뀌었다고 했다. 도대체 오라는 건지 오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면접이었다면서. 나도 격하게 공감했다.
"맞지. 3교대 힘들지. 많이 그만두지. 여보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여보가 지금 있는 곳에 있어도 좋아. 돈은 덜 벌어도 돼. 건강이 중요하잖아. 우리 이제 아이도 가져야 하는데, 여보 몸이 편해야 해."
나는 아내와 잠깐 이야기하고 다시 암흑이 가득한 방에 들어갔다. 지금 다시 자면 언제까지 잘 수 있을까. 최대한 많이 자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여러 번 뒤척거렸다. 오후 4시 30분 결국 이불을 정돈하고 거실로 나왔다. 어차피 더 자기에는 글렀다. 아내와 이야기나 더 하고 싶었다.
3교대는 수면 패턴이 정말 중요하다. 한 번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끝까지 못 잤다. 여러 번 중간에 뒤척인다. 나이트 끝난 후에 가장 빈도가 높다. 최근에는 윗집과 아랫집에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인테리어 하는 걸 막을 순 없다. 나도 이 집에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왔으니까. 집 안에서 '두두두두 둥!' 소리를 듣는 건 또 다르다. 마음으로는 이해하고 싶은데, 머리로는 자꾸만 화가 났다.
수면 시간이 망가지면 건강도 점점 망가진다. 일단 눈부터 퀭해진다. 뒷골도 당긴다. 운동을 해도 근육이 잘 안 붙는다. 오히려 근육이 줄어드는 것 같다. 오늘도 나이트 출근을 했다. 선배와 후배 간호사들이 보인다. 나랑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미소도 여유도 없다. 그때 마침 옆자리 선배가 말했다.
"아 집 가고 싶다."
벌써 머리가 무겁다. 아이스라테 한 잔을 다 먹었다. 나도 집에 가고 싶다. 침대에 눕고 싶다. 내가 3교대를 계속할 수 있을까. 병원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나가더라도 경력은 살리고 싶은데. 간호사는 병원에만 있어야 할까?
잠깐 검색을 해봤다. 내 경력이면 충분히 다른 걸 할 수 있겠다. 눈이 조금 떠졌다. 마취에서 깨고 있는 걸까.
[보험심사간호사, 법의간호사, 보건 교사, 산업간호사, 간호학과 교수, 간호직 공무원, 교정직 공무원, 소방 공무원, 연구간호사, 혈액원, 간호장교, 방문간호사]
방문 간호사? 궁금해졌다. 환자들과 라포(신뢰) 쌓는 것도,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것도 자신 있었다. 여러 곳들을 차로 이동하는 것도 매력 있었다. 지금처럼 한 공간에 박혀있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창업을 한다면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을 듣지 않을 수도 있다.
'뭔가 홈 헬스케어와 AI도 접목하면 좋은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나는 유튜버 ‘잇섭’처럼 테크 기계도 좋아하고, AI를 활용하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요즘 환자들은 되도록이면 집에서 케어받고 싶어 한다. 이쪽으로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만약 창업하면 밤에 잠은 잘 수 있겠지?'
오른쪽에 있는 벽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집에 가려면 10시간이나 더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