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던 걸까

마음 속 응어리가 풀려가는 과정

by 태섭

Q3. 근무 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싶다.

일할만큼 일하고, 쉴 만큼 쉬고, 밤에 일하는 스타일이면 한밤에 하고, 새벽에 일하는 것을 좋아하면 새벽에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마음대로 일 하고 싶다.-by 김승호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억울한 상황들이 생겼다. 일을 하는 사람만 계속해서 했다. 예를 들어 동맥혈 채혈을 빨리하고, 소변줄과 콧줄을 빨리 꼽고, 환자 초진을 한 명이라도 더 빨리 보고 오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일을 더 많이 하게 됐다. 내가 환자 다섯 명을 볼 때 겨우 한 명 보고 온 선배가 말했다.


“야 환자 계속 들어오는데 다른 사람 또 보러 안 가?“


선배는 아주 당당했다. 미안한 기색조차 없었다. 나는 그 태도에 질려버렸다.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했으면 본인 손이 느린 걸 이해라도 했을 텐데. 그 선배는 연차가 높다며 항상 대우받기를 원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을 때 해결을 완벽하게 해주거나,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었다.


병원에서 하는 일은 실력 좋은 사람이 칭찬을 받거나, 돈을 더 받는 구조가 아니다. 하나의 사소한 부품같다. 톱니바퀴 가장 앞에 있는 톱니처럼 가장 앞에 서있는 사람은 똑같은 에너지를 받아도 더 많이 돌아가는 구조다. 7년 차가 되는 동안 느끼고 있었지만, 새삼 더럽게 느껴졌다. 더러우면서도 계속 다니고 있는 나라서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내 얼굴에 침만 뱉는 일이겠지.


앞으로는 내가 하는 만큼 일이 빨리 끝나고, 보수를 더 받고, 스스로 능력을 더 키우게 되고, 보람 얻는 일을 하고 싶다. 물론 그만큼 꾸준하게 노력해야 될 거다. 힘은 들겠지만, 얼마나 재밌을까? 얼마나 설레는 순간들일까?


Q4. 내 직업에 관한 스스로의 가치를 갖고 있다.

남이 좋아하는 직업, 돈 버는 직업, 돋보이는 일보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가치를 느끼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고 싶다.-by 김승호


남을 도울 때 행복하다. 타인이 나로 인해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할 때 즐겁다. 그렇기에 불합리하거나, 억울하거나, 죽음을 수 없이 마주치는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응급실에 있다 보면 멀쩡한 환자가 갑작스레 숨이 넘어가곤 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띠-’하는 소리와 함께 심전도는 가로줄만 나온다. 나는 그 환자가 감염병이 있든 없든 일단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간다. 호흡, 맥박이 없다. 가슴압박을 시행한다. 갈비뼈가 우두둑하고 부러진다. 내 손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다. 2분만 지나도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다. 잠깐 손을 뗀다. 리듬을 확인한다. 심전도를 보면서 생각한다. 제발 살아라. 환자가 살아난다. 침대에서 내려온다. 그때 감염접촉주의 팻말이 보인다. 이후 처치는 동료들에게 맡기고 교수님에게 말한다.


"교수님 CPR 도중 Rib fracture 있었어요."

"네"


교수님은 건조하게 대답하며 보호자에게 설명한다.


"환자분은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났어요. 처치 도중에 갈비뼈 골절이 있었습니다."

"아니 사람 살리라고 병원에 왔더니 갈비뼈를 부러뜨리면 어떡해요."

"네 죄송합니다. 처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기록을 남긴다. 추후에 고소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손을 몇 번이고 씻는다. 세면대 앞에 거울을 쳐다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누구도 옆에 와서 나를 위로해주지 않는다. 누구도 고생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면 환호와 박수를 받는 건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일 같다. 현실에서, 병원에서 사람 살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끔씩 정말 가끔씩 진심으로 고마워해주는 환자와 보호자와 동료들이 있다. 그때가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정말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는다. 오직 그 순간만 내가 간호사인 게 자랑스럽다. 내 가치가 진심으로 증명되는 느낌이니까.


나는 작가도 되고 싶다.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게 너무 좋다. 내 마음속 응어리를 이렇게 글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공감된다, 응원한다, 좋은 영향을 받아 간다고 말할 때가 있다. 다시 한번 내 가치가 증명되는 느낌이다.


Q5. 가족들 부양하고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사업한다.

급여 생활자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며 내 노력을 무한대로 발휘해 막대한 부를 쌓은 부자로 살고 싶다.-by 김승호


돈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인생에 돈이 다가 아닌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살아내기 위한 기본적인 돈이 없으면 아주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돈 나올 구멍이 없을 때 느껴지는 그 비참함, 불안감, 슬픔은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훈련소에 있을 때 가장이신 아빠가 크게 다쳤다. 화장실 가다가 넘어지셨는데 경추에 큰 손상을 당했다. 당시 의사는 아빠가 하반신 마비라고 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재활치료를 했다. 병원비가 많이 나갔고, 보험금 받는 절차는 아주 까다로웠다.


우리 집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마는 아픈 아빠와 원래 아팠던 큰누나까지 간병해야 했다. 작은 누나는 간호학과로 재입학을 한 상태였다. 주변에 도와주는 친척 하나 없었다. 각자 살기 힘들다며 애써 무시하기 바빴다. 결국 돈 나올 구멍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소식을 훈련소 수료식 때 들었다. 암울했다. 당장이라도 군대 밖으로 나오고 싶었지만, 이미 모든 훈련을 마쳤기에 자대로 들어가야 했다. 그나마 작은 누나가 간호학과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투잡, 주말에는 쓰리잡까지 했다. 내가 군대에서 받는 월급은 고작 10만 원이었다. 훈련을 대비한 장비를 사고, 후임이 들어올 땐 간식을 사주기에도 벅찼다. 오히려 누나에게 용돈을 받기도 했다.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안에 박혀서 용돈이나 타가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1년 뒤 아빠 보험금이 조금씩 나왔다. 2년 뒤 나는 전역을 했다. 복학 전까지 공장에서 2교대로 일했다. 아빠도 재활에 성공해서 다시 복직을 하셨다. 그렇게 우리 집은 다시 살아남았다.


군대에 있을 때 일과를 끝내면 잠깐 전화를 시간이 주어졌다. '아빠 몸 좀 괜찮으세요? 엄마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제가 전역하면 정말 효도할게요. 우리 집 꼭 먹여 살릴게요.' 나는 전화할 때마다 그 말을 반복했다. 똑같은 말을 들어도 항상 너부터 몸 건강 챙기라고 말씀해 주시는 부모님에게 감사했다.


그때부터 다짐을 했다. 부자가 될 거라고.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에게 아픔을 주지 않을 거라고. 안정감 있는 가정을 만들 거라고. 다시는 그렇게 되는 일은 없게 할 거라고.


어느덧 아빠가 다친 신지 10년이 지났다. 다짐했던 것처럼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 다만, 안정감은 다시 살아났다. 비옥한 토지 위에는 씨앗이 하나 떨어지면 시간이 지나 나무가 된다. 거기서 열매가 떨어지면, 다시 새로운 나무가 생겨난다. 결국 그곳은 울창한 숲이 되어간다. 나는 지금 숲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나 보다.


"집안에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다니는 간호사가 두 명이나 있네! 이제 우리 아프면 너희에게 말하면 되겠구나!“


가족을 무시했던 친척들이 이런 말을 했다.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속에서 뜨거운 게 끓어올랐지만 참았다. 바로 터뜨리지 않은 이유가 있다. 원래 희망을 갖고 있다가 없어지면 더 무서운 법이니까. 나중에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똑같이 해주려고.


Q6. 내 열정과 아이디어가 언젠가 보상받을 것을 기대한다.


종교는 없지만 존경하는 스님이 있다. 법륜스님은 말한다. 요즘은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다 인사받으려고만 하고, 사랑받으려고만 하고, 이해받으려고만 하고, 도움 받으려고만 한다고. 그러다 보니 항상 객꾼으로 떠도는 거라고. 떠돌이 신세로 늘 헐떡거리면서 사는 거라고. 먼저 주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말씀하셨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만큼 몰입이 되나 보다. 내 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로 다시 한번 보면서 다짐하게도 된다.


나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고 내가 쓴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까지 좋은 영향력을 받을 수 있는 게 글인 것 같다. 나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내 열정과 아이디어를 통해서도 좋은 영향력을 넓히고 싶다. 항상 나의 아웃풋이 다른 사람의 긍정적인 인풋이 되기를 바란다.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도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던 순간들을 고백하려 합니다. 김승호 회장님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한낱 평범한 직장인인 저를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Q7~Q12 그 남은 이야기를 다음 회차들에서 들려드릴게요.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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