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참 좋은 관찰의 결과로 기억되고 싶다

양자역학 어렵다. 영화 왕사남 잘 봤다.

by 태섭

Q7) 내 회사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개선하고 싶다.

사업은 나의 이상을 실현하는 하나의 도구다. 사업적 성공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이 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감을 느껴보고 싶다.-by 김승호


양자역학은 정말이지 어렵다. 아무리 책을 보고 영상을 뒤져봐도, 심지어 과학에 미친 의사 형한테 매달려봐도 도통 감이 안 왔다. 사실 전문가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라 말하니 차라리 다행이다. 휴, 나는 정상이었다. 그 막막한 양자역학 중에서 내가 꼭 알아보고 싶었던 한 줄은 이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미시 세계의 입자들은 양자역학이라는 기묘한 법칙을 따른다. (벌써부터 머리가 흔들거린다. 최대한 쉽게 가자.)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단위인 양자들은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을지 모를 '확률'로만 존재한다. 여기 있을 수도 있고, 저기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는 거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이 된다고 한다. 최대한 쉽게 가자.) 그러다 누군가 '관측'을 하는 순간, 비로소 일정한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누군가의 관찰로 인해 증명되는 것, 그것이 양자이고 원자이며 물질이고, 곧 사람이다.


나는 이 차가운 물리 법칙을 조금 더 따뜻하게 이해해보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증명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죽기 전까지 제 이름을 남기려 애쓰는 게 아닐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땅속에 묻히거나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진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다만, 나를 기억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기억 속에는 존재할 수 있다. 코펜하겐 해석은 "관측되지 않는 것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의 '관찰'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이 된다.


어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일명 왕사남)'를 보고 왔다. 조선의 어렸던 왕, 단종을 그렸다. 그는 몇 백 년 전의 인물이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유배당했던, 그가 묻혔던 강원도 영월에는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영화 또한 700만 명이라는 관객이 선택했다. 그가 아직 이 세상에 있는 것만 같다. 이승에 있는 수백만 명의 '관찰'이 그를 다시 입자로 굳어지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단종(이홍위)은 역사적 추억이라는 렌즈로 자신을 관찰해 주는 사람들을 통해, 육신은 없을지라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반대로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세조) 역시 세상에 자주 나타나곤 한다. 그 둘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관찰되는 결과는 각자 어떻게 될까?


나는 언제나 좋은 결과로 관찰되고 싶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선한 행동을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마음. 그리하여 누군가의 우주 속에서 가장 빛나는 '좋은 양자'로 관찰되고 싶은 본능. 그것이 우리가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내 일을 통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뀐다면, 나는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나는 행복하게,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잠들지 않는 '참 좋은 관찰의 결과'로 기억되고 싶다.


Q8)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나는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빚을 지거나 호의를 받으면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살고 싶다.-by 김승호


직장 동료들을 위해 커피를 사 가곤 한다. 내가 마시고 싶기도 하지만, 치열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다 같이 시원하게 한 잔씩 마시면 일의 능률도, 기분도 좋아질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 종류의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초록(가명)'이다. 내가 열 번을 사도 본인은 한 번도 사지 않는 전형적인 테이커(Taker)다. 심지어 점심시간 혼자 달랑 커피를 사 들고 온다. 물론 내가 사달라고 한 적이 없고, 본인도 사달라고 한 적이 없었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에서 묘한 뜨거움이 느껴진다. 그냥 다른 사람에게 얻었겠거니 생각하는 편이 좋다. 굳이 따지면 뭐하나, 어차피 모른다.


두 번째는 '주황(가명)'이다. 내가 사면 본인도 꼭 사고, 못해도 절반은 되갚으려 애쓰는 매처(Matcher)다. 가장 흔하고 합리적인 동료들이다.


마지막은 ‘하주(가명)’이다. 커피 한 잔도 못 받아도 10잔 이상을 기꺼이 내놓는 기버(Giver). 통계에 따르면 세상의 가장 성공한 자와 가장 빈곤한 자 모두 이 기버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차이는 단 하나다. 테이커의 표적이 되어 에너지를 다 뺏기느냐, 아니면 '선택적'으로 선의를 베푸느냐.


이제 나는 커피를 사 가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초록이 몫'만 사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무례함에 내 선의가 난도질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내 호의가 누군가의 당연한 권리가 되어 나를 망치게 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일이다.


Q9) 지루한 것을 절대 못 참는다

반복된 일을 하는 것을 너무너무 어려워하고 그런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 사업체를 운영하면 같은 날을 두 번 경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by 김승호


응급실은 매 순간 다양한 환자가 몰려드는 곳이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도 처치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반복된다. 초진을 보고, 드레싱을 하고, 주사를 잡고, 검사를 보내고, 동의서를 받고, 협진이 진행되고, 입원 혹은 퇴원을 시키는 일들. 케이스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시스템 안에서 나의 행동은 정해진 매뉴얼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자, 역설적이게도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루틴 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빨리 처치할까?', '어떻게 해야 환자를 더 빨리 뺄까?' 같은 효율성에만 매몰되다 보니, "간호사로서 어떤 케어를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소음 속에 묻혔다. 점점 스스로에게 묻지 않게 되었다. 병원은 매끄럽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 거대한 기계의 닳아가는 톱니바퀴가 되고 있는 기분이다.


그때부터 지루함이 찾아왔다. 흥미가 없다. 빨리 마치고 싶다. 일하는 내내 시계 쳐다보는 날이 늘어났다. 그저 이 닫힌 순환 속에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간절함.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매일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같은 날을 두 번 경험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고되고 치열하겠지만 적어도 시계를 볼 틈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순간처럼.


'나'라는 존재에 오롯이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만드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도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던 순간들을 고백하려 합니다. 김승호 회장님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한낱 평범한 직장인인 저를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Q10~Q12 그 남은 이야기를 다음 회차에서 마지막으로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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