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이제 퇴사해도 괜찮아
사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이런 사회적 리더들과 친분과 우정을 나눌 위치를 확보해 준다.-by 김승호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이틀만 지나도 몸이 근질거린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시. 시(市)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인 '인구 10만 명' 선은 이미 무너졌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도시. 아니, 이제 도시라는 이름조차 무색하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구수한 소똥 냄새가 '촌동네'라는 투박한 별칭을 정겹게, 혹은 씁쓸하게 불러오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방 소멸의 파도를 막기 위해 연일 대책을 쏟아낸다. 지자체들도 '각자도생'은 끝났다며 서로 손을 맞잡는다. 대구와 경북이 합쳐 '대구경북특별시'를 꿈꾸고, 대전과 충청권은 '충청광역연합'을, 부산과 경남, 광주와 전남도 그들만의 메가시티를 원한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서울과 수도권에 대응할 수 있는 '인구 500만 이상의 경제권'을 만들어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2026년 1월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 인구는 약 2,600만 명이다. 대한민국 전체 국토의 단 11.8%에 불과한 이 좁은 땅덩어리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51%가 기를 쓰고 모여 산다. 한반도 전체 면적으로 따지면 고작 5% 남짓한 공간에 절반의 삶이 엉켜 있는 셈이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모여 살고 싶어 할까.
우선 나부터 그렇다. 내 고향의 여유를 뒤로하고 이 미어터지는 틈바구니 속으로 뛰어들었으니까. 겉으로는 '직장이 서울에 있어서'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서울에 있는 직장을 갖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다는 게 맞다. 촌동네에 머물러서는 내 성장의 한계가 명확히 보였기 때문이다.
간호학과 시절, 서울과 지방으로 실습을 나가며 그 차이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서울의 병원에는 지방에선 평생 한 번 보기 힘든 희귀 케이스가 넘쳐났고, 선배들의 연봉은 지방보다 1.5배 이상 높았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시스템이었다. 잡무를 최소화하고 오직 '간호'에만 집중할 수 있게 설계된 환경은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했다.
병원 문 밖의 풍경은 더 매력적이었다. 한강과 핫플레이스가 즐비한 인프라도 좋았지만, 내가 가장 만족했던 건 '적당한 무관심'이었다. 한 다리 건너면 온갖 소문이 퍼지는 좁은 지방과 달리, 서울은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 익명성 속에서 나는 더 다양한 사람들과 편견 없이 어울리며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그때 확신했다. 고향에 남는다면 수입도, 경험도, 시야도 딱 그만큼의 크기에 갇힐 것이라는 사실을. 훗날 내 아이에게 보여줄 세상의 크기가 고작 그만할 것이라는 공포가 나를 움직였다. 부모님 곁을 지키는 효도도 소중하지만, 조금 덜 뵙더라도 한 번 갈 때 두둑한 용돈을 챙겨드리는 '능력 있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서울에서 간호사로 산 지도 벌써 6년이 넘었다. 이곳에서 나는 '사람'이라는 가장 큰 자산을 얻었다. 부동산의 맥을 짚어주는 선배, 엄청난 실행력으로 앞서 나가는 동료,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교수님, 그리고 축의대를 맡길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친구들까지. 병원이라는 거대한 사회는 나에게 뛰어난 스승이자 동료들을 선물해 주었다.
지방 지자체들이 몸집을 불리려는 이유도 결국 '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이 모이는 토양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나 역시 지난 6년 동안 이 비옥한 땅에서 충분히 배우고 자랐다. 하지만 이제는 이 풍경조차 익숙해졌다. 성장이 멈추고 정체가 시작되는 시기. 고인 물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떠나기 마련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나를 던지려 한다. 이제 병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의 리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싶다.
내 마음에 들고 나에게 힘이 되고 나의 성장을 바라는 사람들로 주변을 가득 채우기를 희망한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by 김승호
내가 다니는 병원에는 '직장 내 괴롭힘'은 없지만, '직장 내 이상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대놓고 해를 끼치지는 않아도 유독 시기하고 질투하며, 은근한 정치질로 분위기를 흐리는 이들.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과 좁은 스테이션 안에서 업무 시간 내내 숨 쉬어야 한다는 건 가히 고문에 가깝다. 그 에너지의 반경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느껴지는 피로도는 배가 된다. 물론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결이 맞지 않는 이들과의 강제적인 동행은 여전히 버겁다.
내가 진정으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성장의 가능성을 건져 올리는 사람'이다.
응급실에는 유독 핏줄이 보이지 않는 소아 환자들이 온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옆에서 보호자도 따라 운다. 그 순간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식은땀 젖은 손으로 얇디얇은 주삿바늘을 잡는 순간은 간호사에게도 고역이다. 간신히 처치를 끝낸 후, 누군가는 "애들은 이래서 힘들다니까. 보호자는 또 왜 저렇게 예민해?"라며 상황 탓만 하며 주변의 진을 뺀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동료는 땀을 닦으며 이렇게 말한다.
"와, 진짜 난코스였네요. 그래도 오늘 아기 혈관 잡고 나니까, 성인 환자 혈관은 8차선 왕복 도로처럼 보이는걸요?"
나는 이런 사람들과만 일하고 싶다. 힘든 상황을 비관하기보다 그 경험을 자신의 실력으로 환전할 줄 아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 김승호 회장님이 말한 '사람을 내보낼 권리'는 단순히 권력을 휘두르는 갑질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 삶의 소중한 시간을 누구와 공유할지 결정하는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주권'이다.
병원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는 동료를 선택할 수 없지만, 내 사업을 하게 된다면 가능하다. 내 마음에 들고, 서로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들로 내 주변을 가득 채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병원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밖으로 나가려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 하나다.
그래서 어떤 고통도 재밌고 견딜만하다. 장애물이 나오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궁금해하고 위축되지 않는다.-by 김승호
길을 걷다 보면 신문을 나눠주시는 아주머니를 마주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애써 시선을 피하며 지나가려는데, 아주머니는 굳이 내 팔을 붙잡으며 신문 한 뭉치를 슥 건네셨다. 거절하기 미안해 받아 들었지만, 몇 걸음 못 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강요된 친절'이 사실은 불편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꿉꿉한 신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순간, 아까 버린 신문지가 간절하게 떠올랐다.
'아, 그냥 들고 올걸.'
다음 날, 나는 전날과 같은 길을 일부러 찾아갔다. 멀리서 신문을 든 아주머니가 보였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다가가 팔을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신문을 건네주셨고, 나 역시 기분 좋게 받아 들었다. 집에 돌아와 그 신문을 구겨 신발 속에 쑤셔 넣었다. 묘하게 안정감을 주는 신문지 향이 났다. 어제는 버리고 싶던 '쓰레기'가 오늘은 너무나 만족스러운 '디퓨저'가 된 것이다.
마케팅의 본질은 물건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선택했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데 있다고 한다. 똑같은 신문지 한 장이라도 타의에 의해 쥐어질 때는 '짐'이 되지만, 나의 필요에 의해 선택할 때는 '기쁨'이자 소소한 '행복'이 된다.
내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도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작은 장애물 앞에서도 금방 지치고 남 탓을 하게 되겠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한 도전이라면 그 과정의 고통조차 즐거운 게임의 일부가 된다. 때로는 힘들겠지만,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보상을 발견하는 '달달한 퀘스트'라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나만의 선택으로 가득 찬, 자유로운 일터를 만들고 싶다. 장애물을 만날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기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 볼까?'라며 눈을 반짝이는 삶. 그런 주체적인 삶을 위해 나는 오늘도 병원 밖의 세상을 기분 좋게 상상해 본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으시는 교수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교수님은 그 바쁘신 와중에 어떻게 일 년에 200권이나 읽으세요?"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요. 대신 짬나는 시간을 조각조각 모아 활용하면 금방 읽게 되죠."
"저도 짬날 때 숏폼 대신 책을 좀 펴야겠네요. 교수님이 읽으신 것 중 가장 좋았던 책 추천해 주시겠어요?"
"음... 좋은 책이란 사람마다 달라서요."
"왜 그런가요?"
"각자가 통과해 온 경험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독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쓰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 기준에서 본다면, 김승호 회장의 [사장학개론]은 내게 최고의 책이다. 이미 네 번이나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롭다. 내 경험의 부피가 달라질 때마다 책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도, 그에 대한 나의 대답도 매번 모양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12가지 질문에 대한 자문자답이 끝났다. 질문은 외부에서 왔지만, 대답은 줄곧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그 대답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동안 비로소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이제 나에게 '사장'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직함이 아니다. 내 삶의 주권을 완전히 되찾겠다는 단단한 선언이다.
"음... 한 번 해봐. 오빠는 누구 밑에서 일하는 거, 정말 안 어울리긴 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냐고? 오빠가 쓴 글 보니까 아주 나가고 싶어서 난리가 났더라고. 소원이라는데 들어줘야지. 막상 하면 또 잘할 것 같아. 나는 오빠를 믿으니까."
이 브런치북을 읽은 아내의 마음이 움직였다. "퇴사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듣고 나니, 역설적으로 당장 그만두고 싶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낄 때 비로소 만족하는 존재들이니까.
이제 나는 진정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더 치열해지기로 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기꺼이 도움을 청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내 좁은 견해를 부수고 바꿔 나갈 것이다. 매일 0.1%씩이라도 기어코 성장할 것이다.
나는 주도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고, 그 결과까지 온전히 책임질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어 하며, 내 일에 확고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부양하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기꺼이 땀 흘리며, 내 열정과 아이디어가 정당하게 보상받기를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내 일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개선하고 싶어 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지루함만큼은 죽어도 못 참는 사람이었다.
뛰어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고, 함께 일할 동료를 직접 선택하며, 내 인생의 도전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자는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도움을 청하고, 질문을 하고, 견해를 바꾸는 일이다. 사장의 하루는 매번 다른 하루이기에 매일 새로운 용기를 내야 한다. 이 책이 당신에게 용기를 주기 바란다.-by 김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