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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Feb 22. 2022

혼자 있을 때 더 눈부셔야 한다

혼자는 자기 성장을 위한 서스펜스 넘치는 자유다.

신기율 작가 <은둔의 즐거움>에서 난연한 문장을 만났다. “섬처럼 고독하고, 호수처럼 고요하며, 바람처럼 고결하게 스스로에게 반하는 사람이 되려면 혼자 있을 때 눈부셔야 한다” 이건 나의 로망이다.


세상의 이치(理致)는 뭉치고, 속해 있어야 한다, 분리되면 도태된다고 말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자연선택론’을 주장했다. 포식자보다 피식자가 무리 지어 산다.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죽지 않기 위해 속해야 했다. 뭉치면 살았고 흩어지면 죽었다. 이건 본능이다.


혼자는 외로움, 고립, 불안함 같은 부정적 느낌이 강하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못 견디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혼자 밥 먹으면서도 휴대폰을 보지 않으면 불안하다. 혼자인데 혼자인 것을 피하려 한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1533~1592)는 혼자 사는 즐거움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한테 묶어 놓은 속박에서 느슨히 풀어놓으세요. 진정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합시다. 아주 만족스럽게” 스위스 철학자 게오르그 치머만(1728~1795)은 <고독에 관하여>에서 개인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자기 회복과 자유롭게 하는 경향’으로 정의했다. 세월이 지나도 포도주가 모두 시큼해지지 않듯이 혼자가 늘 외로운 것만 아닐 것이다.


‘혼자’는 외로움이 아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가끔은 격 하게 외로워야 한다고 했다. 더 외로워야, 덜 외로워진다고” 역설적으로 말했다. 혼자는 낭만적 은둔이다. 은둔은 자발적으로 나에게 몰입하는 것이다. 몰입하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자.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 하루 종일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혼자지만 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그런 공간 말이다. 독일에서는 이것을 ‘슈필 라움’이라고 한다.


 김훈 작가는 자신의 서재를 ‘막장’으로 표현했다. 김훈 다운 표현이다.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이다. 광부는 ‘곡괭이’을 휘둘러 석탄을 캐며 막다른 길을 헤쳐 간다. 광부의 장비가 곡괭이와 삽이듯 김훈은 자신의 서재를 책을 쓰는 장비가 모여있는 창고라고 얘기했다. 혼자 책을 읽고 세상의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막힌 내 삶의 갱도를 뚫고 나아가는 완벽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지하철 삼각지역에서 내려 한강 다리를 지나 노들길 따라 걸어서 여의도로 출근한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2시간 남짓 되는 거리다. 퇴근도 마찬 가지다. 직장동료들이 힘들지 않냐고 묻지만 그 시간은 오롯이 직장과 집을 이어주는 나만의 변신의 공간이자 은둔의 시간이다. 생각도 정리하고, 글의 주제도 생각한다. 혼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물리적 공간일 필요는 없다. 내게 출·퇴근시간은 혼자지만 외롭지 않은 몰입과 충만함이 있는 시간이다.

삼각지,신용산, 한강다리, 노들길, 63빌딩으로 이어지는 출ㆍ퇴근길

‘혼자’는 불안함이 아니다. 혼자란 익숙함을 버리고 낯섦을 받아들이는 거다. 50대 남자에게 명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불안한 것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기를 원한다. 못 알아봐 주니까 명함을 내미는 거다.  명함이 사라지는 것은 이삼십 년 동안 지탱해온 내 존재와 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한 거다.

 

오래전 금융, 부동산, 재테크 서적만 죽어라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익숙해서다. 한 선배가 내게 말했다. “네가 만나는 고객은 그런 내용이 궁금한 것이 아니냐”라고 내게 충고했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고객과 얘기를 나누면서 10분이 채 안돼서 나의 밑천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익숙함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즈음 책의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낯선 분야의 서적을 찾아 읽는다. 나는 강연과 글쓰기 그리고  상담에서 주제와 대화 내용이 달라지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혼자라는 것은 익숙함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거다. 불안하면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나를 제대로 보려면 진짜 혼자 있어 봐야 한다.


‘혼자’는 고립이 아니다. 고립은 무기력하게 혼자가 되는 것이다. 혼자 자기 성장을 위한 서스펜스 넘치는 자유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인이  들판을 혼자 거닐면 그것이 곧 문학이 되었다.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1812~1870)는 지도에도 없는 런던 구석구석을 산책하면서 하층민의 삶을 담은 위대한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집필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은 길을 아껴 걸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여행지에서 혼자가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여행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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