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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Feb 11. 2022

나이 듦과 청춘은 포개져 있는 것이다

늙지 않으려 애쓰지 말자

아내가 거울을 본다. 조물주가 창조한 연약한 피조로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을 깨고 있는 걸까? 멈춰버린 시간처럼 아내가 영원히 늙지 않는다면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불로 불사(不老不死)의 꿈을 가졌다. 그러나 수명을 단축한 원인이기도 했다. 이집트인들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죽은 사람의 몸을 보관할 수 있는 ‘미라’라는 절묘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늙은 철학자 ‘파우스트’는 젊은 ‘마르그리트’ 얻기 위해 악마 ‘메피시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 오로지 젊음을 달라고. 장수(長壽)의 꿈은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고 본능이다.


영화 <인 타임>은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인류는 노화의 비밀을 밝혀낸다.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팔뚝에 새겨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의 유예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음식을 사고, 집세도 내고 버스도 탄다. 모든 재화와 용역의 거래는 시간으로만 가능하다. 일한 대가도 시간으로 받는다. 시간의 양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나는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52세, 평균수명을 산다고 가정하면 대략 30년일 텐데,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26만 시간이다. 산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영화처럼 나의 시간(수명)을 늘리는 방법이 없을까 상상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장수의 비밀은 유전자의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의 과정으로 설명했지만, 나는 조상으로부터 어떤 유전자를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혹자는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에 대해서 유전자를 속여서 자신이 들어있는 몸을 실제 연령보다 젊다고 생각하도록 하면 장수에 유해한 유전자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하지만 내 몸속 화학적 변화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과거 평균수명이 50세를 조금 웃돌았던 1960년에 50대는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였다. 대략 반세기여 만에 50대는 두 번째 청춘이라며, 인생 황금기의 주인공으로 완벽한 신분세탁이 이루어졌다. 김형석 교수는 <백 년을 살아보니> 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 ”라고 말했다. 백 년을 살았지만 늙지 않는 노인,  김형석 교수의 올해 나이는 103세다. 성장하면 늙지 않는다, 라는 老교수 말의 철학적 의미를 알지 못한다. 다만 겨울, 날 선 바람처럼 정신번쩍 들게 다.


나는 어떻게 성장해왔는가? 생각했다.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라는 구호로 IMF,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겼다. 아니 버텼다. 이십여 년간 죽어라 뭘 하기는 한 것 같은데 남은 건 없고, 성장이란 단어에 성장이 보이지 않았으며, 밥벌이에 평생 목이 메어 이것을 벌기 위한 몸부림만이 내게 남은 건 솔직한 고백이다. 50대는 ‘이기적 성장’이 필요하다. 이기적이라는 말이 불편한가? 그동안 곤죽이 되도록 이타적인 삶을 살았다. 그만하면 된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기적이란 다른 이의 자원을 이용해서 자기 복제를 늘리는 행위, 반대로 이타적이라는 것은 나의 자원을 사용해서 다른 이의 자기 복제를 늘리는 행위라고 했다. 진화론의 자연선택에 따르면 이타적 유전자는 사멸되는 것이다.  조금은 이제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또 한 편의 영화 <아델라인>이다. 우연한 사고로 노화가 멈춘 아델라인은 107세다. 영원히 늙지 않는 자신을 수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피해 10년마다 신분과 거주지를 바꾸고, 29세의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자신의 딸과 함께 늙어 가지 못하는 엄마,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늙지 않으면 행복할까? 생각했다. 불로장생의 꿈을 가졌던 진시황제가 영원히 늙지 않았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짐, 낯선 환경에서 외로움, 가족을 먼저 보내야 하는 인간적 고통은 축복이 될 수 없다. <아델라인>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그녀는 파티에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에 ‘흰 머리카락’ 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매우 기뻐한다.


반백 년(半百年) 살았다. 세월은 굽은 비포장도로처럼 얼굴을 밟고 지나간다. 나의 길은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모습일 것이다. 태어남 안에 죽음과 병듦이 포함되어 있듯이, 늙지 않으려 애쓰지 말자. 숲 냄새를 머금은 바람처럼 나이 듦과 청춘은 그렇게 그냥 포개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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