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ielraum Feb 11. 2022

아카데미 영화 수상작과 시니어 라이프

"행복은 적금처럼 만기에 찾아 쓰는 것이 아니다"

남자가 눈물이 많다고 욕할지 모르겠다. 반백년을 살다 보니 웃고 울어야 할 자리 구분하는 것쯤이야. 근데 가끔은 통제가 안 된다. 50대 눈물은 원초적 본능이다. 이 눈물은 강퍅했던 젊은 날 마음 달래고 위로해주는 중년의 빛나는 보석상자다. 이 상자에 무엇이 있을까? 아쉬움, 부족함, 미안함, 고마움, 자랑스러움 등 감추어진 마음들이 자라 넘쳐 버린 것은 아닐. 중년에는 울어야 건강하다.

반백년 넘게 살아왔다. 하늘의 뜻을 알기에 여전히 부족하다. 임인년(壬寅年), 건강한 삶의 가치를 반추할 수 있는 영화 두 편으로 시작해 본다.


가슴 움켜쥐며 울었던 영화 ‘스틸 앨리스’다. 줄리안 무어는 이 작품으로 2015년 오스카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아내, 존경받는 교수로서 부러울 것 없는 주인공 앨리 스(줄리안 무어)는 자신이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학 강단에서 늘 사용하던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고, 조깅하던 공원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면서 그녀는 가 과의 행복했던 추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잊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시작한다. 그녀의 나이 불과 50세 생일날에 말이다. 앨 스는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끝이 정해져 있는 삶이지만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끝까지 자신을 지켜  로 한다. 그녀의 노력 중에 인상 깊은 두 장면이 있다.


 알츠하이머협회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나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단지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 제목이 ‘Still Alice(스틸 앨리스)’다. 또 하나의 장면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막내딸이 책을 읽어 주면서, 무 슨 이야기 같냐고 하자. 앨리스는 조용히 어렵게 말을 한다. “Love(사랑)”라고. 그녀가 마지막까지 기 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단어는 가족과 사랑이었던 모양이다.


이 영화는 노인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를 가족과 함께 극복해 나가는 가족 얘기다. 앞만 보고 달려온 중장 년세대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이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다. ‘대팽  부과 강 채, 고회 부처 아녀 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가장 훌륭한 요리는 두부 ·오이 ·생강·채소이고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 ·자식 ·손자녀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에서 앨 리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생애 끝이 보이는 날, 당 의 ‘스틸 앨리스’, 예전의 나는 어떤 모습을 기억하고 싶을까?


지난해(2021년) 오스카 남우주연상은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가 수상했다. 이 영화는 배우 이름 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 스러져가는 기억을 붙잡으며, 점점 낯선 기억으로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영화로, 한편으로는 자신의 기 과 홀로 싸우는 한 노인의 이야기다. 영화는 치매에 걸린 앤서니(아버지)의 입장에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어떤 것이 진실일까. 영화를 보는 줄곧 혼란에 빠진다. 앤서니는 자신의 딸 앤에 대한 기억이 어느 순간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딸인 앤이 진짜이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그냥 앤이 되어 나타난다. 안소니는 갑자기 도둑처럼 다 온 현실이 무서워진다. 매일매일 낯선 상황들이 안소니를 괴롭힌다. 결국 안소니는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만다. 내 모든 기억들이 점점 낮 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안소니는 “남아있는 낙엽 (leaves)들을 다 잃어버린 것 같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노년에 가장 무서운 질병을 말할 때 이구동성으로 ‘치매’를 꼽는다. 치매는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10대 사망원인에도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치매를 가장 두려운 질병으로 생각할까? 그것은 아마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소위 영혼을 갉아먹는 질병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치매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적 있다. 참석자 중에는 치매가족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에는 남의 일 같던 치매가 막상 내 가족과 부모에게 닥치다 보니 ‘간병 부담’은 물론 ‘나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라는 두려움이 더 커진다고 했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몇 해 전 찬바람이 날카롭게 불던 12월 마지막 날, 아버지는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셨다. 영화 속 안소 니처럼, 마지막 남은 당신의 낙엽들을 붙들기에 역부족이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간절히 붙들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돈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 원 없이 가보지 못한 원망과 후회였을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중장년 세대에게 고(告)하고 싶다. “행복은 저축해서 나중에 꺼내어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금 행복해져야 한다”라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 듦과 청춘은 포개져 있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