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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Feb 10. 2022

회사에서 짐 싸기 전 다짐. 읽자, 쓰자, 놀자, 살자

50대 두 번째 청춘 위한 4 계명

 오십 넘은 지 몇  되었다. 반백 년. 놀랍지 않은가? 지나온 삶을 반추해보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는 그저 놀랍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죽어라 공부해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삼시세끼 밥 먹은 기억밖에 없다. 지난 20여 년간 직장생활 죽어라 뭘 하긴 한 거 같은데 남는 게 없는 것은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며칠 전 퇴사한 선배님의 소식을 들었다. 한때 회사에서 승승장구하셨던 분이다. 최근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지방 상가 건물을 관리하게 되었다며 좋아하셨다. 월수입 250만 원, 지방에서 근무해 야 하니 월세와 생활비를 공제하고 나면 얼마 안돼  수입이지만 처음 시작하는 일에 들뜬 기분이셨 고, 행복해 보이셨다. 최근 직장을 잃은 친구는 요 음 ‘50대 맛집 여행’이라는 유튜버로 수익을 쏠 쏠 하게 올리고 있다. 지난해 공인중개사시험 응시해서 합격했다는 선후배들의 소식도 들려온다. 응시 인원 40만 명, 과연 아저씨들의 ‘수능’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더욱 축하해주고 싶다. 이처럼 인생 에는 그 시간에 이르러야만 깨닫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20대가 내게 첫 번째 청춘이었다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조금 빗겨있고 돈과 시간적으로 조금 자유로운 50대는 ‘두 번째 청춘’인 셈이다. 인생의 부피를 넓혀가는 두 번째 청춘을 위한 4자를 살펴봤다.  


첫째, 읽자. “독서를 이기는 건 없다”, 최고의 투자수익률을 기록 기업인 워런 버핏의 인생 조언이다.  필자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책 읽기를 시작했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모든 분야의 지식이나 교양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어느 작가의 팩폭에 부끄러웠다. 교양과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안다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것과 타인의 인정과 존중을 받는 즐거움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인정 욕구 ’는 본능이다. 깨닫는 즐거움을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그건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두 번째 청춘을 위해 독서만큼 강력한 준비는 없다. 책을 읽는 것은 청춘을 회복하고, 멋지게 늙어가는 행복한 여행이라는 것도.


둘째, ‘쓰자’. 누구나 퇴직과 은퇴는 한다. 50대는 은퇴를 기다리며 출근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왕이면 매일매일 은퇴를 기다리는 마음과 일상을 글로 옮겨 보면 어떨까? 요즈음 일부러 글쓰기 수업을 배우러 다니는 50대 중년이 많다. 필자는 SNS (소셜네 워크)를 글쓰기 연습장으로 활용한다. 읽은 책을 요약하고 생각을 공유한다. 책 저자들의 간결한 문장을 흉내 하기도 하고, 좋은 문장은 내 것으로 만들려고 애를 쓴다. 잘 쓴다는 것은, 잘 느끼는 것이고, 잘 생각하는 것이며, 잘 말하는 것이다. 은퇴시점에 모아둔 일상의 글을 출판해도 괜찮다. 짧은 글이라도 오늘부터 쓰자. 두 번째 청춘을 책 강연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아! 기대되고 멋진 일이 아닌가”


셋째, ‘놀자’.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그래서 잘 노는 놈이 성공한단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 말이다.  필자도 노는 것에 익숙지 못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놀고 쉬는 방법을 가르쳐준 적도 없고 배워본 적이 없다. "뭘 노는 것을 배우냐"라고 물을  모르겠다. "다른 거 다 가르쳐 놓고 왜 쉬는걸 가  주지 않았느냐?" 골프여왕 박세리가 선수 시절 부진에 빠지자 아버지에게 항의한 말이다.  50대, 중장년 세대는 일+성공=행복이라는 공식으 로 살아왔다. 그러나 대부분 성실한 한국 남성들은 퇴직이 임박하면서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우울감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불안감'과 '번아웃' 때문이다. 막연했던 퇴직이 눈앞에 현실이 되면서 오히려 일들이 지루해지고, 사소한 일에 감정이 격해지기도 한다. 이런 '번아웃'을 예방하려면 잘 놀아야 한다.


왜? 우리는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니까.


넷째, ‘살자’.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살 자다. 두 번째 청춘을 계획하면서 막연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나면 “그래도 자식이 모른 체하지 않겠지”, 그동안 내가 열심히 가장 역할을 했으니 “내 배우자는 다른 배우자와 다르 겠지” 하는 거다. 솔직히 이런 오해가, 오해가 아닌 진실이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부모님을 부양하기로 약속하고 재산을 이전했지만 넘겨받은 자식 이 갑자기 살기 어려워지면 본의 아니게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다 효자지” 셰익스피어 <리어왕>에 나오는 이야기다. 때로는 자식에게 치사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결국 자식을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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