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굿바이(good bye)

이 영화가 감동이었던 이유 3가지

by spielraum

영화의 원제목은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다. ‘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화에서는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납관사'들을 말한다. 납관사라는 전문 직업이 따로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납관사는 시신을 깨끗이 닦고(씻는다기보다는 닦는다는 것이 더 정확하지 싶다) 관에 옮기는 과정만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직업이다. 한국에서는 상조회사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지만 일본에서는 장의사(장례지도사)들이 납관사들에게 시신을 닦고 관에 옮기는 업무만 를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경찰도 시신 처리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틈새시장인 셈이다.


첼로 연주자인 주인공 '다이고', 소속된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해체된다. 1억 5천만 원 주고 전문가용 첼로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고향으로 내려가 일자리를 알아보는 도중 신문에 "고수익 보장, 초보 환영"이라는 여행도우미 모집광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즉석에서 합격통지를 받는다. 하지만 광고문에서 여행이란 단어 앞에 영원한이란 수식어가 빠져있었다는 사장의 말에 당황하고, 결국 망자들의 '영원한 여행'을 돕는 납관사로 일을 하게 되는 한 남성의 따뜻한 이야기다.


변사체로 발견된 독거노인, 부모 속을 썩이던 트랜스젠더 남학생, 평생 고생만 하다 떠난 아내, 딸과 아내의 즐거운(?) 배웅을 받고 떠나는 아버지. 생전에 어떻게 살았던 마지막 이승을 떠나는 길은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 영화가 내게 큰 감동이 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망자의 시신을 닦고, 맨살이 보이지 않으며 옷을 갈아입히는 납관사의 절도 있는 손길에 깊은 감동이 느껴졌다. 첼로를 연주하던 품격 있는 손은, 망자의 시신을 만지는 손길로 변했지만, 그 손길은 망자와 가족에게 번뇌와 고통을 사라지게 했고, 슬픔은 안도와 평안으로 바뀌게 했다. 죽음의 손이 아니라, 생명의 손이었던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있게냐마는 아내 '미카'는 이 일에 적극 반대했다. 하지만 망자의 가는 길을 배웅하는 남편의 손과 일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은 아내를 변하게 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 미카는 남편이 기억도 없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제 남편은 전문 납관사거든요" 하는 장면은 잔잔한 감동이었다.


둘째,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이다. 목욕탕 주인이었던 친구가 죽자, 화장터 문지기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문이야, 죽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야, 죽음을 통과해서, 다음 세상을 향하는 거지. 그래서 문이야. 난 화장터 문지기로서 많은 사람을 배웅했지. '잘 가세요. 또 만납시다' "


헤어짐의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망자와 가족의 염원과 사랑이 담겨 있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음 세상을 여는 또 다른 시작이라는 죽음에 대한 가치관은 종교를 떠나서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떠나보내거나 내가 배웅을 받는 입장에서 큰 위로가 됐다.


셋째,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죽음을 배웅하는 장면에서 첼로의 묵직하고 장엄한 음률은 장면 장면을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음악이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곡 중에서도 마지막 아버지를 염습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Memory'는 영화의 백미고, 가장 심금을 울렸다. 음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히사이시 조가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개봉 당시 영화 제목은 굿바이 Good Bye)다. 그런데 영 어원제는 departure로 떠남 그리고 출발이라는 의미다.


누구나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또는 먼저 떠나기도 한다. 삶의 궁극은 죽음이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기에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을 앞두고 오히려 만남의 인사를 하자고 한다.


"Good, Bye(좋아, 안녕히)"

"다시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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