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위험을 무릅쓴 적 있을까? 온실에서 위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박완서 선생님은 어느 인터뷰에서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라 했다. 삶은 산다가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면 위험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하는 그 무엇은 아닐까?
<내가 죽기 전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큰 웃음은 아니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다. 영화는 은퇴한 광고회사 전 대표, 해리엇(80 세)이라는 인물에 관한 얘기다. 해리엇은 완벽주의 탓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곁을 떠나고 외로운 노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사망기 사를 보고 자신의 완벽한 사망기사를 컨펌하기 위해 사망기사 전문기자 '앤'을 찾아간 다. 하지만 해리엇의 까칠하고 완벽주의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한 인상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앤'은 '해리엇'에게 완벽 한 사망기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고인은 동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하고, 가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며, 누군가에게 우연히 영향을 끼쳐야 하고, 자신만의 와일드카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해리엇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위험은 극복하고 무릅써야 한다고 했다. 왜?라는 질문에 "나의 잠재력을 감추고 살 수 없었다" 고 했다. 자문해봤다. 감출 수 없는 나의 잠재력이란 무엇이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하면서 말이다. 나는 세상의 경쟁의 줄자 위에서 자기 회의에 빠져 도망치거나 후퇴했거나 머물러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해리엇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실수를 만드는 게 아냐, 실수가 너를 만드는 거냐" 꿈은 자기 회의 때문에 무너진다. 나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꿰뚫어 보기로 했다.
누구나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것, 그것은 아마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헤리엇은 '자신의 삶'을 살았다. 나도 나만의 삶을 찾으려 몸무림치고 있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장례식 후. 어린 '브렌다'에게 보낸 편지에는 "네가 이끌어라 그들이 따라올 것이다"라고 했다. 리더 다운 말이다
'앤'에게는 늘 꿈꾸기만 했던 안달루시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보냈다. 그리고 앤은 신문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편지 한 통을 남긴다.
"이건 제 사직서가 아니라, 제 사망기사입니다
지난 7년간 이곳에서 일했던 젊은 여성은 죽었습니다. 그녀는 주저와 망설임 그리고 두려움을 뒤로하고 떠납니다. 그녀를 슬퍼하거나 애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짜로 살았던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살았던 적이 없기 때문", 이라는 대사가 긴 여운을 남겼다. 인생이 길다고 하고. 짧다고도 한다. 무엇인 진짜 인생인지는 자신만의 몫이다.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와일드카드를 가진 사람은 인생이 그리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