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다는 사색, 검색이 독서를 대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8월 여름의 비린냄새가 가고, 9월 습기 빠진 바람이 가을을 불러냈습니다. “가을에는 바람의 소리가 구석구석 들린다. 귀가 밝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라고 김훈작가는 얘기하더군요. 어쩌면 가을은 ‘책’이 오매불망 불러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가을은 ‘눈’이 바빠지는 계절입니다.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지만, 책 읽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40대 평균 독서율(지난 1년간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은 49.9%, 50대는 35.7%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보이더군요. 특히 50대는 10명중 6명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얘기로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더구나 최근 2년 사이 50대의 독서율은 9.2% 포인트나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면에 미국은 40대 독서율이 77%, 50대는 71%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약 2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특히 미국의 노인은 대학생들보다 2~3배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70대 노인이 대학생보다 작가이름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독서를 ‘눈이 하는 정신나간 짓’이라고도 했지만 독서는 그 이상의 함의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작가도 아닌 제가 ‘나는 왜 책을 읽는가(Why I Read)’ 라는 주제로 글 쓰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 모르지만 용기 내어 몇 자 적습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본격적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모르겠습니다만, 매일의 삶이 핍진(乏盡)할 때(50대 남자가 겪는 우울증, 갱년기 일수도 있습니다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이 가끔 온다고 하더군요) 책은 저에게 얼어붙은 대지에 찬란한 봄 햇빛으로 흘러내리는 흙처럼 따뜻한 생명이었습니다.
‘책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책은 생명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담아내서 다시 그 생각과 행동을 키워내는 한 권의 책 이야말로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한권의 책을 만들고 읽음으로써, 한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으로 존재 발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이 둘 숨과 날 숨으로 이어져 굳은 땅에 물이 고이듯 생기가 올라옵니다. 하나의 어휘는 또 다른 문장을 불러내고 글은 그렇게 생명을 이어갑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라는 광화문 현판의 문구처럼 책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자기복제를 통해 생명의 명백을 이어온 DNA처럼 생명의 근원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어제보다는 좀더 확장된 자아를 만들고 인생의 부피를 넓혀 진보된 나를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바꾸었다’의 저자 장석주시인의 컬럼을 읽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 책과 함께한 삶이라고 했는데요. 인생의 가장 큰 위기였을 때 벗들은 떠나고 생계대책이 막막할 때 삶의 벗은 유일한 ‘책’이었다는 말이 제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뼈가 약하고 살이 연할 때 나를 단련한 것은 책이고, 인생의 위기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도 책이다. 스스로 낙오자가 되어 시골로 내려와 쓸쓸한 살림을 꾸릴 때 힘과 용기를 준 것도 책이다. 평생을 책을 벗삼아 살았으니, 내가 읽은 책이 곧 내 우주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내게 다정함과 너그러움, 취향의 깨끗함, 미적 감수성, 올곧은 일에 늠름할 수 있는 용기가 손톱만큼 있다면, 그건 다 책에서 얻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인생에서 옳음과 그름의 도덕적감각과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있는 삶의 통찰이 남보다 더 효율적으로 뇌의 세포망을 통해 신경회로에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동규 ‘두줄 컬럼’ 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도 있더군요.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코를 박고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검색의 고수들이 넘쳐난다. 이것은 엄청남 기술적 혁명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뇌를 아웃소싱 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무뇌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너도 나도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만, 진짜 스마트한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검색보다는 사색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 검색이 독서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요.
그럼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최재천 교수는 “독서는 빡 세게 해야 하고 일이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은 모르는 분야를 객관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처음에 책은 잘 읽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분야의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책장이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책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분야 지식의 영토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니까요.
쇼펜하우어는 ‘문장론’에서 “독서는 모래에 남겨진 발자국과 같다. 그 발자국의 주인은 그 길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무엇이 보이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고 했습니다.
독서는 객관적인 앎입니다. 사유와 사색을 통한 나의 주관적인 깨달음이 동반될 때 ‘독서’가 내 삶의 부피를 넓히고 진보된 나를 만들어갈 것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