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만남의 '기회'가 아닌 만남의 '기준'
직장 후배중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몇년 간 남자를 쉽게 만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왜 좀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아?"
"지금 제 기준에 맞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 때 속으로 생각하기로는 저렇게 눈이 높아서
시간이 지난다고 과연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을 가장한 오지랖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장기연애중이었기 때문에
솔로로 보내는 시간들은 만남의 기회비용인데
후배가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더 지나서 나도 예고없는 이별을 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해 많은 기회를 찾아
시간과 노력, 몸과 마음을 집중하려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계속되는 시행착오 뿐이었다.
나는 당시에 이렇게 생각을 했다.
'내가 재수가 없었거나 올해 운이 안좋은거야'
'난 진심을 다했는데 상대 마음이 부족했어'
그런데 정말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해져서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난 뒤 잠자리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 후배의 연애를 정수기에 비유해보자면
엄청 깐깐한 5중 여과필터가 장착된 정수기.
반면 나의 연애는? 필터 기준이 많지 않았다.
육안으로 봤을 때 투명하고 이물질만 없으면
일단 마셔보고 판단하는 것이 내 기준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편견, 선입견 없이 만나겠다는
선한 의지로 시작한 나의 연애에서 남은 것은
수 많은 구토, 복통, 설사 뿐이었던 것이다.
그 때 생각했다. 연애는 깐깐한 기준이 필요하다.
대신 깐깐한 기준이란, 지나친 눈높이가 아닌
내가 상처받고 다치치 않을 최소한의 기준이다.
만날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만나지 않을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당장 갈증난다고 아무 물이나 벌컥 마셨다간
몸과 마음의 병치레로 내 컨디션만 잃게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시작할 기회비용도 잃는다.
지금 갈증나도 의심하고 안마시는 것이 낫다.
특히 외모, 순간의 이끌림, 설레임, 호기심으로
만남을 결정한 경우 대부분 후회만이 남았다.
원초적 감정에 의존해 아니다 싶은 점을 눈감고
맞지 않는 부분은 맞추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려했던 점은 늘 현실이 됐다.
그 우려란 살면서 수 많은 사람을 만나며 축적된
내 본능적인 감과 경험이자 직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가진 기준이 미약했기 때문에
내 자신을 믿기보다 타인을 믿었었던 것이다.
흔히 직장문화에서 우스갯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상사와 리더십은 어떠한 특별한 기준보다
최악의 상사로부터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반면교사를 기준점으로 삼으라는 말이 있다.
외모, 성격, 언행에서 믿고 걸러야할 항목에 대한
나름의 시행착오, 경험, 통계치와 기준이 생기면
아무리 끌리고 매력적이어도 선택하지 않게된다.
만날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만나지 않을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반복되는 잘못된 만남에는
시작과 과정, 결말에 내가 깊숙이 관여되어있다.
나도 이를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내 안목이 부족했고, 내 기준이 불명확했기에
힘든 시간과 후회를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다시 정리하지만 연애에서의 깐깐한 기준이란
이성의 수준과 등급을 규정하고 차별함이 아닌
기본 이하의 사람을 거르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내 안목과 기준이 명확하다면 흔들리지 않는다.
일단 누구라도 만나보자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아무것도 안했을 때 손실되는 기회비용보다
잘못된 선택으로 상실되는 기회비용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