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서부터 오는 '절실한 마음'이 필요한 지금
나는 지금 절실한가?
오늘의 내 모습은 과거의 결핍이 만들어냈다.
꿈과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나는 절실했다.
늘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을 안고 살았다.
그래서 뒤에서 더 노력했고 절대 자만하지 않았다.
20대 십년동안을 통틀어 일을 쉬었던 기간 6개월.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 못가보고 그렇게 살았다.
그렇다고 지금 떼부자가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고픔과 서러움, 결핍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어느 순간 궤도에 올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막연히 갈망했었던 수준과 위치에 있었다.
나는 언제나 저 맨 뒤에서 앞만 좇아가고 있었는데
어느덧 또래들과 나란히 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
시행착오를 거쳐 직업적인 전문성을 가지게 되고
직업적 역량만큼 경제적으로도 조금씩 안정되고
삶의 좋은 시간들을 함께 만들어준 소중한 사람들.
잠시, 좋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갑작스럽게 매우 불행해졌다.
모든 것이 좋았지만 딱 하나 나에게서 사라진 것.
바로 '결핍'에서부터 오는 '절실한 마음'이었다.
세상에 지껄이던 글도 조금씩 쓸 내용이 없어지고
더 이상 스스로 나아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각몽처럼 내 상태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업으로 삼는 광고/마케팅 수명은 매우 짧기에.
이 바닥에서 최고 전문가를 목표로 임원까지 하던지
은퇴 후 다른 쪽으로 전환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나름 열심히 살고 잠깐 좋았지만
앞으로 맞이할 내일은 이전처럼 치열히 살아야 했다.
오늘의 현실이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어딘가 묻은
삶의 길과 마음 속의 소리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정진하면서 '사는 것'이 아닌 '지내거나 보내' 버리면
지금 이 시간들은 반드시 후회로 돌아올 것이라는걸.
그래도 지나온 시간들을 자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더 의미있게 살고자 적극적인 노력은 아니지만
일상을 살아가면서 최소한의 낭비들은 막고자 했다.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게임을 5년 정도 하지 않았다.
술, 담배, 성 같은 본능적 쾌락의 이면을 두려워하고
3년간 매일 하루 목표를 어플로 체크하면서 살았다.
그 마음과 노력한 시간들이 가상하지만, 부족하다.
삶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수준의 태도였을 뿐
삶을 개선하기 위한 능동적 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을 바꾸려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 무릎꿇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겨
또 나의 정신력과 게으름이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한동안 그렇게 안정된 현실 속에서만 갇힌 듯 살았다.
그러나 현실이 누르는 무게보다 정신이 더 강해야한다.
나는 20살 한겨울의 새벽 자전거로 10km를 왕복했고
22살 퇴사율이 가장 높은 콜센터의 전국 1등을 했으며
23살 늦깍이로 입대한 군대 안에서 책 200권을 읽었고
25살 내 첫 월급 106만원으로 2년의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이십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5~6년여의 시간동안
과거와 같은 경제적, 정신적인 어려움은 비록 적었지만
내 과거의 영광들을 스스로를 이겨내야하는 챌린지에서
나는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도전을 택했다.
과정은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하고 치욕스럽고 더러웠다.
하지만 똥물 가득한 똥통에 있는 건 결국 내 자신 아닌가.
삶이란 결국 나의 그릇이 부족하기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애초에 공정하지 않기에 바로잡으려는 만큼 괴로웠다.
하지만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잘했다가 아닌
남들이 포기할 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나은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가족과 내 주위에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외롭고 고통스럽고 서럽지만 내 진짜 할일을 해야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