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환경이 중요하다 -
어떻게 살다 보니 전공과는 무관하게 항공기와 인연이 닿았다. 잠시 스쳐 갈 줄 알았던 인연은 그렇게 평생의 업이 되었다. 돌아보니 선택의 연속이었다기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고 버틴 시간의 축적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법칙’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항공분야가 처음엔 전혀 생소한 영역이었지만. 보고, 듣고, 만지고, 묻고,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쌓이자 어느새 반(半) 전문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여기까지 와 있었다.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이는 분명히 들었는데, 여전히 배우고 익히는 일에 목마르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에 자화자찬도 해본다.
세상에는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어느 책 제목처럼,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자각이 아직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항공기 엔진 전문회사 GE가 미국 보스턴 인근에 있어 업무 출장으로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다. 보스턴은 교육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으며, 반경 10km 안에 하버드, MIT, 보스턴대 등 세계적인 대학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좁은 공간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반면, 그곳의 대학들은 울타리가 없다. 땅이 넓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열린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사철 푸른 널찍한 잔디광장들, 그 사이를 오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공부란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숨 쉬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교정에서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그런 상상도 해봤다. 그러나 이내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삶의 다른 자리에서 배움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하버드 교정 안에는 창립자 하버드의 동상이 있는데,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동상의 구두코를 만지면 자녀가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하버드 교정은 오래전부터 유명한 관광 코스였다고 한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기념품 매장에는 태극기도 걸려있고 노랑머리 청년들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다.
나도 하버드 할아버지 동상에 구두코에 슬쩍 손을 얹어 보았다. 자식 잘되길 바라는 아비 마음이야 다 비슷하지 않겠는가. 특별한 의미를 기대했다기보다는, 그저 마음 한구석의 바람을 얹어 두고 싶었을 뿐이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며 잘 자라 주었다. 그날의 투박한 손길이 아주 헛된 제스처는 아니었던 셈이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마음들이 결국 아이들에게 전해진다는 걸 알게 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유년 시절에는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마중지봉(麻中之蓬)’이라는 말도 이럴 때 떠오른다.
삼밭에 난 쑥은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 키 크고 곧은 삼에 둘러싸여 있으니, 자연스레 그 방향을 닮아 가는 것이다. 굽어질 겨를도 없이...
결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공간에 몸을 두느냐가 생각의 높이를 결정한다.
하버드 도서관 벽에는 이런 문구도 회자된다고 한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이 말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는다.
젊을 때만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아직 남은 시간이 있다. 살아온 날만큼이나
살아갈 날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어항을 더 단단히 만든다.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더는 자라지 않아도 된다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고기는 어항을 깨야 망망대해로 나가 더 크게 자란다고 한다.
배움도 마찬가지다. 환경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스스로를 다시 배움의 자리로 옮길 때 비로소 성장한다. 늘 푸르게 살고 싶으면 오늘도 어항 하나쯤은 깨뜨릴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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